조회 수 209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박근혜 전 대통령 첫 공판 취재기

 4면 박근혜2.jpg

 

지난23,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의 뇌물 혐의 첫 공판이 있던 아침. 법조 포토라인은 각각의 포인트마다 수십 명의 취재진들로 들썩였다. 서울구치소, 법무부 호송버스 하차 포인트, 417호 대법정으로 이어지는 중앙지법 출입구, 2분여 동안만 촬영이 허가된 법정 내부, 태극기 집회가 열리는 법원 철문입구 돌발 상황까지... 지난 3월의 검찰 출석과 구속영장 발부에 이어 또 한 번의 대규모 법조취재 풀단이 꾸려졌다.

 

 

TV로 방송되는 화면은 사안 핵심에 집중해 단정히 정리된 영상으로 채워지지만, 현장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겪게 된다. 단연코 지난 523,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당일 봉하마을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가장 핫한장소였을 것이다.

 

910분경, 남색 코트 차림에 1,660원 짜리 플라스틱 집게핀으로 올림머리 스타일을 고수한 전 대통령 박근혜 씨가 호송차에서 내리자 취재진은 놀라움에 웅성거렸다. 수감생활로 다소 초췌해진 착잡한 얼굴빛 말고는 구속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외양. 이날 법정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던 박 씨의 속마음이 복장과 스타일의 표출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믿고자 하는 전직 대통령, 죽은 권력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공명심을 전시하는 태세전환의 일부 언론, 법원로 삼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시청하며 실시간으로 흐느끼는 태극기 시민들, 역사적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긴 시간 줄서서 기다리는 진보적 시민들, 미리 가족 방청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에 무지해 발길을 돌려야 했던 동생 박근령 씨 내외, 법정 출입을 허해 달라 소란을 피우던 태극기 티셔츠 차림의 장애(본인 주장) 노인. 그곳은 그렇게나 다종 다기한 이질적 욕망의 주체들이 벌떼처럼 모여든 장소였다.

 

그토록 단단해보이던 정치권력의 하릴없는 몰락.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읊던 길재의 심상이 바로 호송 버스에 탄 옛 권력자의 심정 아니었을까. 수인번호 나대블츠 503배지는 얼핏 브로치마냥 박근혜 전 대통령의 푸른색 코트와 맞춤해보였다. 청와대가 바뀌고, 뜨거운 뉴스들 속에 몇 주간의 초현실적이던 나날은 박 전 대통령 1차 공판 취재를 하면서 내게 비로소 현실감각을 일깨워줬다.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 덕에 얼핏 우리 언론 지형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자·타의적으로 부역했던 방송은 내부적으로 얼마나 바뀌고 있는가.카메라기자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빠짐없이 찍고 기록해두려 애써왔다. 하지만 그것이 취사선택 되고 활용되는 과정의 책임에서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권력자와 재벌가가 처벌받게 된 지금에도, 마치 변검(變臉)처럼 제 민낯을 바꾸기 시작한 태세전환의 방송언론 적폐는 언제쯤이나 정돈할 수 있을까. 방송 내부 주체들 간의 또 다른 게임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초현실이 현실로 돌아왔다.

4면 박근혜3.jpg

 

지선호 / KBS 영상취재부

4면 박근혜3.jpg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류최악의 원전사고, ‘체르노빌원전사고’를 알린 네 명의 영상기자들 file 2023.11.20 71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Inside Russia: Putin’s War at Home)” file 2023.11.20 95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바흐무트 전투(The Battle of Bakhmut)” file 2023.11.20 100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러시아의 소프트파워 (Russian Soft Power in The CAR)” file 2023.11.20 117
모든 것이 특별했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file 2023.11.15 120
지역에서는 이미 불거진 문제, 아쉬움만 가득한 잼버리 조기퇴영 file 2023.08.31 129
2023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도 광주처럼] file 2023.12.18 140
저는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가에 나와 있습니다 file 2023.11.15 145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file 2022.11.01 179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file 2023.08.31 180
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file 2023.12.21 180
"기후위기 시대의 영상기자’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 file 2023.08.31 196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file 2022.12.28 197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file 2022.11.01 213
“후쿠시마 오염수, 서로 다른 체감온도” file 2023.08.31 213
[현장에서] ‘세계적 보편성’ 인정받은 ‘세계의 지역성’ …‘ATF2022’와 다큐멘터리 ‘화엄(華嚴)’ file 2023.03.03 241
[현장에서]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file 2022.07.01 244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발표 취재기 file 2023.12.21 248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현장 취재기] 월드컵 역사상 다신 없을 카타르 월드컵 file 2022.12.28 267
[현장에서] 카메라와 아이디어로 담아낸 현실의 부당함과 저항, 인간의 투쟁이 세상의 조명을 받도록 file 2022.07.01 270
외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시각의 전쟁 취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file 2023.12.21 28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