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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취재기>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jpg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

 

 

혼잡

 

 “어이쿠, 저렇게 껴들면 사고 안 나요?” 8월 13일 밤,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지자 현지 코디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진다. 도로에 차보다 많은 오토바이들이 이리저리 껴들고, 때론 차를 가로막고, 차 옆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간다. 차선이 무의미하다.

 

 이러다 사고 나는거 아니냐고 묻자 여기선 원래 알아서 잘 피해 간단다.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지 않고, 워낙 교통체증이 심해 오토바이가 자연스레 많아진 것이다. 30km밖에 되지 않는 거리가 때론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단다. 도로는 혼잡 그 자체였다.

 

 이러한 도로 사정 때문에 성화 봉송 때는 행진이 상당히 지연되기도 했다. 당시 릴레이 중간 지점에서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지나서야 멀리서 성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화가 가까이 다가오자 구경 나온 사람들이 길목을 계속 막아서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가까이서 촬영하기 위해선 인파를 계속 비집고 들어서야만 했다.

 

그때 한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성화 바로 앞 트럭 짐칸에 올라와서 촬영해도 된다며 손을 내밀었다. 트럭에 올라서자 성화를 중심으로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들이 한대 뒤섞인 혼잡의 풍경이 펼쳐졌다. 앞으로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일들이 생길 거라는 직감이들었다.

 

 

혼란

 

 “9번 게이트랍니다. 아니, 10번 게이트랍니다. 아니, 8번으로 가라는데요? 다시 9번 게이트로 가래요.” 평소엔 미디어 차량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했던, 아시안게임 단지로 들어가는 9번 게이트가 통제되고 있었다.

 

야구장을 취재해야 하는데 차 없이는 한참 걸어야만 하는 상황. 부통령이 방문한 상태라 미디어 차량을 보안상(?) 못 들어가게 막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게이트로 가면 들어갈 수 있다고 안내해 가보면 또 다른 게이트, 가보면 또 다른 게이트, 차는 막히고 시간만 계속 흘렀다.

 

부통령이 와 있다고 미디어가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게 막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안내하는 사람들도 다 말이 달라 혼란 그 자체였다.

 

아시안게임 취재진.jpg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취재진

 

 

 

 선수 인터뷰를 위한 믹스존 안내도 엉망이었다.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육상 경기가 있어 취재를 갔다. 방송사를 위한 믹스존이 어디냐고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처음엔 호스트 방송사 카메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들어가지 못했다.

 

 다시 한참 걷다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 따라갔더니 인터뷰는 할 수 있지만 촬영은 못한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신문 매체들만을 위한 믹스존이었다.

 

다시 한번 방송사임을 강조하면서 물으니 또 돌고 돌아 겨우 방송사를 위한 믹스존에 들어섰다. 5분만 더 늦었으면 우리가 원한 선수를 인터뷰하지 못 할 뻔했다. 이렇듯 조직위 내에서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됐고, 경기장 내 운영이 매우 미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혼합

 

 혼잡한 도시, 혼란한 경기 운영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은 혼합의 장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는 여러 인종과 종교가 뒤섞여 살아가는, 다양성이 넘치는 나라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듯 개막식 때는 다양한 민족의 특색 있는 전통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서민의 주요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연출도 계급 간의 오묘한 섞임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열렬한 환호 소리와 함께 남과 북측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 입장하는 모습도 이번 아시안게임이 혼합의 축제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아침부터 아시안게임 경기 단지로 가는 길은 여전히 혼잡하다. 서울 강남을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 숲 사이를 지나다 보면 때론 빈민촌이 나오기도 하고, 경기장에 가까워지면 다양한 인종의 아시아인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 자국의 선수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제각각의 로고가 달린 카메라와 마이크가 좁은 공간에 공존한다. 미디어존의 운영 미숙을 항의하는 언론사도 있고, 이런 취재 환경이 익숙한지 별말 없이 취재에만 집중하는 언론사도 함께 뒤섞여 있다. 누군가에겐 기준에 한참 떨어지는 국제행사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가장 즐거운 축제인 것이다.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 앞에 설치된 스크린 앞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대거 모여 국기인 배드민턴 경기를 응원한다. 규모는 훨씬 작긴 하지만 흡사 2002년 월드컵 응원을 위해 거리로 나온 우리나라 시민들을 보는 듯했다“. 인! 도! 네시! 아! 짝짝짝 짝짝” 응원 구호마저 비슷하다. 자국의 선수가 화면에 나오자 히잡을 쓴 여성과 쓰지 않은 여성이 나란히 앉아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이 뷰파인더를 통해 들어온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다양성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평화와 공존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용호 / KBS    조용호 기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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