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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뻗치기’가 남겨준 교훈


아무것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된 지 한 달 남짓 되지 않았던 3월 초,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집회 재판 당시 담당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보도된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같이 입사한 취재기자 동기와 함께 신영철 대법관의 아파트 앞에서 무작정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의 첫 ‘뻗치기’였다. 하지만 기자들이 집 앞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는지 6시 반쯤 퇴근했다던 신 대법관은 시간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하는 형사처럼 사무실에서 프린트해간 신 대법관의 사진을 계속 외우며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진을 보며 모자를 쓴 모습, 마스크를 쓰고 변장한 모습을 상상해보는 등 혼자서 별 쇼를 다한 것 같다. 밤을 새워서라도 단독 그림과 싱크를 확보하겠다는 수습정신으로 무장한 나는 전진무의탁 자세로 카메라의 손잡이를 붙잡고선 당장이라도 들이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정 무렵이 지나서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철수하라는 지시가 야근데스크로부터 내려왔다. 3월의 꽃샘추위에 얼었던 몸을 녹이며 회사로 도착, 그간의 상황을 보고하던 중에 황상욱 선배가 물었다. “그림은 뭐 찍어왔냐?”
아뿔싸... 상황이 없었기에 당연히 영상취재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나는 정말 아무런 그림도 담아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단 한 컷도!!
“신영철 대법관이 집에 오지 않았더라도 ‘어제 파문으로 인해 신 대법관은 귀가하지 않았다’고 뉴스가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러면 그 상황에서 네가 취재해온 그림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뉴스를 내보낼 거냐? 아무 일 없었던 것 자체도 뉴스가 될 수 있는 거야!”

혼쭐이 난 나는 패닉상태로 피곤에 지친 오디오맨과 차량부 형님을 다시 모시고 같은 길을 되돌아가 신 대법관의 아파트 외경과 분위기를 스케치하고 나서야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개념 없는 신입 카메라기자 때문에 고생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기만 하다. 정말 그 때 뉴스가 그리 나갔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비록 그 때 일로 외경이 필요 없는 아이템조차 무조건 외경을 찍고 보는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겨버렸지만 그 때 들려주셨던 황상욱 선배의 말은 안이한 생각으로 취재에 임했던 내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었던 귀한 보약이 되었고 취재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성재 / MBC 보도국 영상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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