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2 15:05

그림을 그리자

조회 수 39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그림을 그리자

 

 

 

 (중략) 점점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원류를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이나 그 기록의 힘과 속기 성을 따라갈 매체가 아직 없지만 대상을 관찰해서 특성을 파악해 다시 재현한다는 관점, 즉 재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사진과 영상은 분명 그림에 뒤쳐진다. 굳이 사진과 영상에서 재해석의 과정을 찾자면 극도의 클로즈업이나, 왜곡, 리터칭, 편집 정도일 텐데 뭔가 허무하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재해석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다. 그래서 예술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 같다. (과거 어느 시점에 SNS에 올렸던 글 中 일부 발췌)
 

 그림 그리기. 어느 날 우연히 석양을 보고 저 석양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나의 취미입니다. 나는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스스로 미술을 공부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어떤 깨달음을 느낄 수 있기에 미술이 제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림 그리기는 나를‘ 반복적인’ 관찰의 길로 이끈다.

 

 영상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관찰일 것이다. 관찰이 끝나면 비로소 카메라에 기록을 시작한다. 영상기자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은 그렇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왜 우리는 가장 먼저 대상을 관찰하게 될까?

 

  우연일지는 몰라도 그림의 첫 번째 과정 역시‘ 대상에 대한 관찰’이다. 하지만 영상기자의 관찰과 화가의 관찰 사이에는 차이가 한가지 있다. 전자가 기록(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의 기록)을 위한 첫 번째 과정에 국한된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단순히 하나의 과정으로 끝나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에서 관찰은 기록과 함께 무한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장미꽃을 영상으로 기록한다고 하자. 일반적으로는 빛의 색과 세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이즈, 앵글로 촬영을 한다. 그 장미는 촬영되는 순간의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록된다. 하지만 이 장미라는 동일 대상을 그림으로 기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가의 손으로 종이 위에 표현되는 장미는 카메라를 통해 한순간 박제되는 영상기록과는 완전히 다른 물성을 지니게 된다.

 

 

noname01.jpg

드로잉 연습1

 

noname02.jpg

드로잉 연습2

 

 화가가 장미를 종이 위에 그릴 때 그것은 순간의 기록이 아니라 의미의 기록으로 확장된다. 장미와 인간의 눈(EYE) 사이에는 렌즈가 없다.
 

 화가는 렌즈를 거치지 않고 수시로 장미와 눈을 마주친다. 그 시선의 마주침은 한 번에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완성될때까지 반복된다. 그러므로 그림 속 장미는 순간포착의 결과물이 아니라 켜켜이 쌓이는 과정의 산물에 가깝다. 장미를 완성하는 긴 과정 속에서 화가는 지속적으로 대상에 시선을 던지게 되고 장미는 자기의 겉만이 아니라 안까지도 화가에게 내어준다. 화가는 반복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비로소 장미의 복잡한 내면과 장미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림의 장미는 오랜 과정의 결과, 긴 시간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다. 전자의 장미보다는 후자의 장미가 나(화가)에게 더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 순간에 흘러가버린 관찰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진 관찰이 만든 힘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는 재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영상기록이든 그림이든, 문제는 그 장미가 어떤 장미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장미가‘ 애인에게 선물할 5월에만 피는 독특한 향기의 특수한 품종’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상기록에서는 편집과 자막, 내레이션 등 부가정보(과정)가 동원된다. 순간의 연속적 기록물인 영상만으로는‘ 5월에만 핀다’, ‘독특한 향기’‘, 특수한 품종’ 등의 심층 의미, 복합적 의미를 전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 장미에 대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물론 다층적, 복합적 의미를 지닌 장미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전자에 비해서 더욱 까다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켜켜이 쌓이고 무한 반복되는 그림 제작의 특성은 한 사물이 지닌 역사, 내면, 복합성 등을 표현해 낼 때 마법을 발휘한다. 화가는 그 마법을 위해 장미를 보고 또 본다. 냄새를 맡고 머릿속으로 그 장미를 수십번, 수백 번 재창조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화가 개인의 주관성이 예술과 결합하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화폭 속의 장미 한 송이가 창조될 수 있다.
 

 

그림 그리기는 휴식을 준다.


 그림은 나의 취미였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그리고 싶을 때만 그림을 그려 왔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것이 내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명제였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도 나는 되도록 그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주로 심상을 색을 통해 면 위에 표현하는 그림(추상화)을 그렸다. 이것은 작업 자체가 추상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어 (어찌보면) 난해하지만 오직 그 작업을 통해 나는 큰 위로와 안정감, 그리고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속에서 나아가 완성된 그림을 스스로 감상하면서도 말이다.

 

 

noname03.jpg

종이에 유채 아크릴 혼합

 

noname04.jpg

<파란하늘 푸른바다> 나무합판에 유채

 

 

 그러나 그림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휴식이 아닌가 싶다. (물론 영상을 다뤄야 하는 나에게 직업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그림이 주는 또 다른 프리미엄이다.) 여러분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눈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 뭐든지 시작이 어려운 법이죠.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혹시 마음 속으로만,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일단 한번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떤지 권유해 본다. 아주 심플하게 드로잉(Drawing)부터 말이다.

 

 

 

유병철 / OBS    유병철 사진.jpg

 

 


  1. 방송환경의 변화에 영상기자들의 변화

    방송사 입사하기 전에 방송사 취업을 준비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대학에서는 방송과 다른 학과를 전공했고 주위에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입사준비를 하긴 쉽지 않았다. 당시 입사 시험에 참고할 자료가 부족해서 그나마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Date2018.01.10 Views757
    Read More
  2. 다가오는 '본격' 지방자치시대 지역방송사,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위해 ‘연방제’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정부내 이를 실현시킬 구체적 법과 제도를 강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의 의존도를 낮추고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
    Date2018.01.10 Views686
    Read More
  3. 특별기고 한반도 주변 불안정과 달러 위기의 연관성

    한반도 주변 불안정과 달러 위기의 연관성 1999년 유로화 탄생 이후 국제정세 불안정의 이면에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기와 연관성이 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미국의 달러 패권을 둘러싼...
    Date2018.03.15 Views739
    Read More
  4. 조용필 평양공연 지켜지지 않은 합의서

    조용필 평양공연 지켜지지 않은 합의서 1달러짜리 커피의 맛 2005년 8월 18일 오후 2시 55분, ‘조용필공연’ 선발대 69명이 드디어 평양 땅을 밟았다. 평양 순안비행장에는 이미 가을을 재촉하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선발대는 서둘러 숙고인 고려호텔로 달...
    Date2018.04.05 Views628
    Read More
  5. ‘제31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시상식’ 축사

    존경하는 방송카메라기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박원순 서울시장입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창립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귀한 자리의 주인공이신 제31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상 수상자 여러분께도 천만 서울시민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
    Date2018.04.05 Views568
    Read More
  6.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조용필 평양공연 제작기 3>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기립박수 공연시간이 30분 전으로 다가왔다. 무대 뒤 대기 석에서는 최종점검 회의가 열렸다. 수많은 무대에 선 조용필이지만 오늘만은 긴장된 모습이었다. 다 시 한번 순서를 확인하고 가볍게 몸을 ...
    Date2018.04.27 Views1335
    Read More
  7. 공정보도와 보도영상조직의 역할

    공정보도와 보도영상조직의 역할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방송보도는 암흑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이 그러했으며 뉴스전문 채널 YTN은 지금도 투쟁중이다. MBC는 파업 참여에 대한 보복조치로 영상조직이 해체되는 시련을 겪었고 조직이...
    Date2018.04.27 Views704
    Read More
  8. 이미지와 권력 Image and Power

    <줌인> 이미지와 권력 Image and Power 유사 이래 이미지와 권력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지에 재현된 인물의 크기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라졌고,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역시 아우라나, 구도, 혹은 원근법 등을 통해 이미지의 중...
    Date2018.04.27 Views905
    Read More
  9. 인류는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이미지와 문자를 사용해 왔다

    인류는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이미지와 문자를 사용해 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다’. 그리고 보는 것과 언어를 연결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지적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우리의 시각은 사물의 형상과 언어라는 개념을 매개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따...
    Date2018.07.04 Views780
    Read More
  10. 북⋅미정상회담 이후 예상 시나리오

    북⋅미정상회담 이후 예상 시나리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담에 대한 희망적 관측과 더불어 과거 정권교체 대상이었던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Date2018.07.04 Views487
    Read More
  11. 북한이미지의 올바름에 관하여

    북한이미지의 올바름에 관하여 전 세계의 이목이 남북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잡고 가상의 선에 불과한 국경선을 넘나드는 장면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놀랍고도 어지러운 반전’이라고 표현한 뉴욕타임즈의 논평처럼 ...
    Date2018.07.04 Views2666
    Read More
  12. 영상 저널리즘의 위기와 기회

    영상 저널리즘의 위기와 기회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생존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베인즈 뉴스 픽쳐스(Bain’s News Picture)를 통해 공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사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생존자 중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었고, 그...
    Date2018.10.19 Views553
    Read More
  13. 낯익은 길, 하지만 아직 걸어보지 못한 길

    낯익은 길, 하지만 아직 걸어보지 못한 길 6·12 북미 정상회담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각국에서 싱가포르로 파견한 취재진만 최소 3000명에 달했다고 전해질만큼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이 와중에 우리는 적잖이 불편한 사건 하...
    Date2018.10.19 Views395
    Read More
  14. 군국 일본의 언론통제

    군국 일본의 언론통제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 여론지도”라는 미명 하에 국민을 국내와 세계가 돌아가는 정보로부터 고립시키고 나아가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써 언론통제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군사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
    Date2018.10.19 Views668
    Read More
  15. 미디어의 속도와 책무감에 대해서

    미디어의 속도와 책무감에 대해서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는 인류의 역사를 기록한 최초의 흔적이다. 이와 동시에 동굴 벽화라는 미디어가 발생했다. 아마 구석기에서 신석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사용한 역사 기록 미디어는‘ 동굴 벽’을 벗...
    Date2018.12.19 Views580
    Read More
  16. 채널2의 사회학

    채널2의 사회학 모두가 알다시피 채널 2는 현장음을 수신하는 채널이다. 기자의 의도가 확실히 담겨 특정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채널1과 달리 채널 2는 의도되지 않는 현장의 소리가 담긴다. 이런 채널의 속성을 매체와 사회의 관계 문제로 가져가게 되면 두 채...
    Date2018.12.19 Views432
    Read More
  17. 그림을 그리자

    그림을 그리자 (중략) 점점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원류를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이나 그 기록의 힘과 속기 성을 따라갈 매체가 아직 없지만 대상을 관찰해서 특성을 파악해 다시 재현한다는 관점, 즉 재해석의 관점에서 ...
    Date2019.01.02 Views398
    Read More
  18. [2019년 각오] ‘왜 하필’의 가치를 고민하는 시간

    ‘왜 하필’의 가치를 고민하는 시간 “왜 하필?”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12월 4일, 백석역에서 온수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파 주의보가 발령된 평소보다 추운 날이었다. 온수와 난방 작동이 멈춘 몇몇 가정을 방문해 취재...
    Date2019.01.02 Views408
    Read More
  19. 새해를 맞아 다짐하는 세 가지

    새해를 맞아 다짐하는 세 가지 다사다망(多事多忙). 2018년 직장인들 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일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쁨’을 뜻한다. 보름도 채 남지 않은 나의 2018년을 되돌아봤 다. 1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4.27 남북정상회담,...
    Date2019.01.03 Views443
    Read More
  20. 2018년을 돌아보며

    2018년을 돌아보며 퇴근길에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김장할 정신도 없을 것 같아서 이모가 해 놓았으니 시간 될 때 찾아가라는 내용이 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보 니, 올해도 저물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부 캡을 맡은 지도 1...
    Date2019.01.03 Views398
    Read More
  21. 52시간 근무제를 바라보는 지역방송사 현실

    52시간 근무제를 바라보는 지역방송사 현실 오늘도 시간 외 근무를 신청했다. 아무 리 발버둥을 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봐도 시간 외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 었다. 하루에 리포트 두 개를 제작하고, 틈나는 대로 미세먼지 날씨 스케치를 해 야 하고, 편...
    Date2019.01.03 Views43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