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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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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11일, 영상취재팀 캡으로부터 해외출장 준비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 재난·재해도 없던 때라 출장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알게 된 취재목적, ‘필리핀 쓰레기산’.

 

 포털사이트에 걸려있던 관련 기사를 몇 줄 읽어본 게 전부라, 우선 상황에 대한 예습 이 필요했다. 내용인즉슨, 한국의 수출업체가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으로 허위 신고해 필리핀에 상당량의 폐기물을 보냈는데 실제론 기저귀, 의료폐기물, 배터리 등이 온통 뒤섞인 혼합 쓰레기였다는 것. 이 쓰레기들을 지난 7월 필리핀 세관이 적발했고,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항의에 결국 한국으로 돌려보내게 됐다고 한다. 취재팀은 쓰레기 선적 전날인 12일 새벽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도 마닐라에서 700km가량 떨어진 민다나오섬의 ‘카가얀데 오로’항에 도착하니 숨 이 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줄지어 서있는 커다란 컨테이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 다. 현지 관계자는 필리핀으로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 6,300톤 중 1,200톤 분량이 컨테 이너 51개에 담겨 화물선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항구에는 쓰레기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나온 많은 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에서 온 취재진은 우리뿐이었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취재 내내 느껴졌다. 주민들은 왜 불법 쓰레기를 필리핀에 보냈는지를 우리에게 물으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고, 한국에서 멀리까지 취재 와줘서 고맙다고 하기도 했다. 선적에 앞서 관계자들이 일부 컨테이너를 개봉해 어떤 쓰레기들 이 한국에서 왔는지 설명했다.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은 거의 없고 대부분 처치곤란의 혼합 쓰레기들이 한데 뒤섞여있었다.

 

 ‘소주팩‘’, 순면 기저귀’등 악취를 풍기는 한국산 쓰레기들을 손으로 뒤적이며 분노하는 그들을 보니 애써 준비해 간 마스크와 장갑은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미안하고 또 민망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우리의 반응 을 카메라에 담고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는 현지 언론들도 많았기에, 최대한 흐트러 짐 없이 취재에만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컨테이너가 화물선에 선적되는 모습까지 취재를 마치고, 나머지 쓰레기 5,200톤이 쌓 여있다고 하는 인근 마을로 향했다. 그린피스 관계자를 통해 마을 이름만 전달받았기 때문에 비포장도로의 숲길을 한 시간 가까이 헤맨 끝에 축구장 6개 넓이의 쓰레기 야적 장을 찾을 수 있었다. 키보다도 훨씬 높은 펜스가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겉보기엔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악취가 심해져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내부에 방치돼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감 촬영을 할 만한 장소가 주변에 없고 펜스에 시야가 가려 야적장 내부는 드론을 이용해 취재했다. 지상에서 문 틈 사이로 본 것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현장 관리자는 드론을 향해 나가라고 손짓하거나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 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주민들이 사는 마을과 쓰레기장이 불과 몇십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주민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코를 찌르는 악취가 온 마을에 퍼진다고 하며, 빨리 이 쓰레기들이 마을에서 사라 졌으면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적장 취재까지 마치고 송출을 위해 숙소로 돌아와 보니, 우리의 신발은 오물에 다 젖었고 몸에는 쓰레기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8시 뉴스에 맞추려면 시간적인 여유 가 없었기 때문에 씻을 틈도 없이 MNG와 현지 인터넷을 이용해 촬영본을 모두 한국으 로 송출했고 무사히 당일 리포트로 보도할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이 마을 잔치까지 벌일 정도로 자축하며 손 흔들어 떠나보낸 한국산 쓰레기 1,200톤은 3주 동안 태평양을 건너 지난 2월 3일 평택항으로 돌아왔다.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씁쓸한 귀향이었다. 환경부와 평택시는 ‘폐기물 소각’ 방침을 밝혔지만,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한다. 불법 수출로 문제를 일으킨 해당 업체가 이 쓰레기에 대 한 ‘재산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소각했다가는 역으로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있어 적어도 7월까지는 그대로 방치하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이른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시작으로 재활용 쓰레기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됐고, 이번 필리핀 불법 쓰레기 수출건까지 이어지면서 정부는 2월 중 폐 기물 수출 컨테이너 전수조사, 현장 점검 강화 등의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폐기물에 대한 수출길은 더 좁아질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규제도 중요하지만 쓰레기 배출 자체를 줄일 중장기 대책과 국민들의 노력 없이는 근본적 해법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최대웅 / SBS    사진 SBS  최대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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