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3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차량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jpg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3월 11일,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은 전두환 씨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벽부터 연희동 사저의 취재 열기는 극에 달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그를 따라가며 취재할 이른바 ‘추격조’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전두환 씨의 차를 쉽게 따라붙을 수 있을지 위치와 간격, 경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카메라 기자라면 이런 추격 임무가 낯설지 않다. 15년 차인 내 기억에도 전임 대통령의 신상에 주요한 변화가 생겼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추격조가 편성됐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도로 위 차량(혹은 오토바이) 팔로우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반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카메라 기자의 안전 문제(때로 이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취재 윤리, 법 위반 등의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날 내 취재 차량은 타사 차량에 추돌을 당했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복기해 보면, 내가 탄 차량은 연희동을 나와 강변북로, 경부고속도로를 연이어 달렸다. 그리고 천안 - 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쳐 광주에 도착했다. 도로 위 팔로우 경쟁은 연희동을 떠나는 순간부터 불붙었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신문사에 이르기까지 10대가 넘는 차량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위험한 질주를 벌였다. 전두환 씨의 차량 역시 취재진 차량을 피해 거침없이 달렸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서 머무르려고 하다 포기하고 다시 백수십 킬로의 시속으로 곧장 달아나기도 했다.

 

 사달은 광주 시내에서 일어났다. 법원 근처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있는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며 추돌이 벌어졌다. 탑승자 전원이 매우 강한 충격을 느꼈다. 문제는, 그런 사고 상황에서도 한가롭게 차를 세우고 사고 수습을 할 형편이 못됐다는 데 있다. 협회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중 누가 한가롭게 사고 수습을 하고 있을까? 전 씨의 법원 출두 현장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에야 추돌 가해자, 피해자 양측이 만났다.

 

 그날의 피해자는 우리 차량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언제든 가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현재까지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사실은 도로 위 위험한 질주를 해야 하는 한 우리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들이다. 서글픈 일이다.
 

 나중에 차를 세우고 보니 우리 차에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수십여 차례 브레이크를 밟아 패드가 타 버린 것이다. 실제로 광주에 도착할 무렵 제동하려고 할 때 차가 밀리는 현상이 지속됐다.

 

 차량 추적에는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선루프를 열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고 찍을 때 혹여나 브레이크를 밟거나 요철 구간에서 차량이 흔들리면 허리에 강한 충격을 직접 받는다. 규정 속도를 무시한 질주 경쟁은 어느 누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사고는 이제껏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 회사 내에서만 해도 차량 추적으로 인한 사고가 이미 두 차례 있었다. 사고를 당한 후배 기자들은 입원을 했다. 후유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보다, 모두가 간과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런 추격전에서 가장 극도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한 사람, 바로 운전기사다. 우리가 흔히‘ 형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기 일이란 이유 때문에 위험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거의 강제에 가깝게.) 취재 차량들의 선두 경쟁 질주 속에서 급제동, 급가속이 수시로 일어난다. 영상기자가 좋은 앵글을 잡고, 돌발상황을 포착하는 데 충실한 조력자가 되려 이들이 싫든 좋든 과격한 방식의 운전을 하고 있다.

 

 영상취재 자체가 우리 일이고 우리 중 누구도 어느 현장, 어느 상황에서든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험한 차량 추적, 도로 위 팔로윙을 사명감이나 의무감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쯤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무책임하며 비도덕적이다.

 

 이번 전 씨 차량 팔로윙 과정에서 내가 탄 차량의 추돌 사고가 각사에서 꽤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고 점점 더 취재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목숨을 건 외줄타기는 멈춰져야 한다. 사람이 하나 불구가 되거나 죽어야 멈추겠는가? 적어도 우리 협회원사들만이라도 도로 위 불법 추적 취재는 금지하자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언론사 차량의 사고가 일반시민 차량의 2차, 혹은 3차 피해를 부를 수도 있다. 언론사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취재 방식은 하루 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각사의 논의와 합의가 절실하다. 협회원들의 중지, 과감한 결단을 제안 드린다. 

 

 

양두원 / SBS    양두원 증명사진.jpg

 

 


  1. 아시안게임 취재기 - 우당탕탕 Jakarta

    <아시안게임 취재기> 우당탕탕 Jakarta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는 필자 인도네시안 타임 도착하자마자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아시안게임 델리게이트 레인으로 입국심사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끝났지만, 위탁 수하물을 찾을 때부터 ‘인...
    Date2018.10.19 Views484
    Read More
  2. 아시안게임 취재기 -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 취재기>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 혼잡 “어이쿠, 저렇게 껴들면 사고 안 나요?” 8월 13일 밤,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
    Date2018.10.19 Views428
    Read More
  3.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드론 영상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드론 영상 2018년 10월 7일, 점심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 오는 길에 가을이 왔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청명하고 파란 하늘 사이로 시커먼 기둥의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검색을 해보 니 고양시에 있는 저유소...
    Date2018.12.19 Views425
    Read More
  4.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Date2018.12.19 Views331
    Read More
  5.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세기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북정상이 11만에 다시 한자리에 섰다. 그때의 두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때만큼 뜻 깊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그들의 특별한 만남을 가까이서 지...
    Date2018.12.19 Views452
    Read More
  6.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2018 평양' 그 새로운 여정

    '2018 평양' 그 새로운 여정 지난 9월 15일은 30여 년 가까이 영상기자로 언론사에 몸담고 취재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날이었다.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선발대로 자동차를 이용한 육로로 개성에서 평양까지 가볼 수 있는 ...
    Date2018.12.19 Views377
    Read More
  7. 태풍 콩레이 영덕 강구면을 할퀴고 가다

    태풍 콩레이 영덕 강구면을 할퀴고 가다 지난 10월 6일 강력한 태풍 콩레이가 한반도에 도착한 후 경남 통영을 지나 경북 영덕에 상륙을 했다. 태풍의 이동 속도가 빨라 짧은 시간에 지나갈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경북 영덕 강구면에는 큰 피해...
    Date2018.12.20 Views455
    Read More
  8. ‘만족합니다’

    ‘만족합니다’ ‘제가 누른 리코딩 버튼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세상을 바꾸는 영상기자가 되겠습니다’. 내가 입사 면접에서 이야기한 자기소개의 한 문장이다. 지난여름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의 이른바‘ 황제 보석’을 ...
    Date2019.01.02 Views678
    Read More
  9. 우리가 아는 ‘팀킴’은 김경두의‘ 킴’이었다

    우리가 아는 ‘팀킴’은 김경두의 ‘킴’이었다 지난 11월 8일, 대구의 한 세미나실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평창 동계 올림픽의 스타‘ 팀킴’이 있었다. 그들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눈물을 흘렸다. 아마 평창에서 이들을 취재...
    Date2019.01.02 Views503
    Read More
  10. 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데스크가 내게 취재 일정을 부여하며 던진 한 마디, “내일 2분 분량 정도로 변기를 찍는대… OOO 취재기자 하고 상의해봐”, “네? 변기 촬영만으로’ 2분 리포트를요?&...
    Date2019.03.12 Views533
    Read More
  11. 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지난 1월 11일, 영상취재팀 캡으로부터 해외출장 준비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 재난·재해도 없던 때라 출장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알게 된 취재...
    Date2019.03.12 Views497
    Read More
  12.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
    Date2019.05.08 Views434
    Read More
  13.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에 서는 날. 기자 생활 14년 동안 수없이 자료화면을 통해 보고 편집하며 만나온 그의 ‘실물’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
    Date2019.05.08 Views389
    Read More
  14.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 할롱베이 크루즈 투어 나서기 직전 크르주 안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북한 리수 용 노동당부위원장. ▶ 할롱베이 투어를 떠나는 북측고위급대표단. 북측대표단이 할롱베이를 찾았다는 것 은 북한이 관광산업단...
    Date2019.05.08 Views491
    Read More
  15. 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호텔, 양국 정상의 잠자리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2주가량 이르게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취재는 정상들의 유력 숙소지, 회담 장소 등이었다. 멜리아, jw메리어트, 메트로폴 하노이, ...
    Date2019.05.08 Views462
    Read More
  16. 해양 탐사선 ‘이사부 호’ 동승 취재기

    해양 탐사선 ‘이사부 호’ 동승 취재기 ▲ 남태평양 항해 중인 이사부호(사진) 미국령 괌에 가는 출장이 갑작스럽게 잡혔다. 경남 거제항에서부터 북위 6도 부근 적도 해역까지 항해하며 연구 활동을 한 대양 탐사선 ‘이사부 호’의 전 ...
    Date2019.07.01 Views590
    Read More
  17. [고성 산불 취재기] 고성 산불 그 후

    고성 산불 그 후 ▲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집을 떠나지 못한 피해주민이 망연자실하고 있다(사진). ▲ 그을린 나무와 잿더미를 뚫고 대나무 죽순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사진). 산림 2천832ha를 잿더미로 만들고, 1천289명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동해안 산불. 현장...
    Date2019.07.01 Views544
    Read More
  18. [고성 산불 취재기] 화마와의 사투

    화마와의 사투 ▲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사진) 그동안 수많은 화재현장을 취재해 봤지만 이처럼 빠르게 번지고 피해지역이 광범위한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인제에서 실화로 산불이 발발했고, 고성군에서 다른 산불이 또 붙었다. 고온 ...
    Date2019.07.01 Views549
    Read More
  19.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 일부 이재민들이 에어컨 고장으로 선풍기에만 의존해서 여름 나기 하고 있다<사진>. ▲ 이재민들을 위해 조립식 임시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강원도 속초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지역 순환근무...
    Date2019.09.09 Views347
    Read More
  20.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 군ㆍ경찰이 조은누리양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 지난 7월 23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실종됐다가 열 흘 만에 구조됐던 조은누리 양이 충북대병원으로 이송 되고 있...
    Date2019.09.09 Views455
    Read More
  21.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튀어나오고, 깨지고... 전주 풍남문 ‘안전 우려’ 전주 풍남문 일부 성벽이 돌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고 현장에 가 보았다. 성벽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었다. 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
    Date2019.09.09 Views37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