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8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광주MBC_이정현 원고 전두환 사진.jpg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에 서는 날. 기자 생활 14년 동안 수없이 자료화면을 통해 보고 편집하며 만나온 그의 ‘실물’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재판이지만, 오전 일찌감치 광주법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법원은 이미 경찰들과 전 씨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 생중계 소리들이 뒤엉켜 귀가 따가웠다.

 

 오후 12시가 막 넘었을 무렵, 전 씨가 탄 차가 광주 IC를 지나 10분 후면 광주법원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다. 현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광주지방법원 법정동 후문에 도착했다. 차량이 보이는 순간부터 나는 뷰파인더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의 동선을 따라 팔로우 했다. 인파에 둘러싸인 차량 문이 열리고 드디어 전두환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취재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공간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압력과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음들 속에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전 씨의 음성이 이어폰을 통해 내 귀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거 왜 이래?”

 

 짜증 섞인 그 한 마디. 그는 그 말 한 토막을 남기고 법정동으로 다급히 들어가 버렸다. 시민들의 외침, 울부짖는 소리가 내 가슴 한 구석을 무너뜨렸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법정 내부에서 방청객들이 하나 둘 나왔다.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재판 분위기를 전했다. 일관되게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한 전 씨 측의 대응이 전해지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자리에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 씨가 타고 온 차량에 시동이 걸리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차량으로 움직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전 씨 차량을 따라 법정동 정문 쪽으로 향했다. 정문 주변은 이미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경찰들 뒤로 분노한 시민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거대한 그물망을 친 듯한 풍경.

 

 법정동 정문에 전두환, 이순자의 모습이 나타나 자, 시민들은 울부짖는 목소리로 외쳐댔다.

 

 “전두환 살인마!”

 “전두환을 처벌하라!”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들은 전 씨가 탄 차량에 물병을 던지고 몸으로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 꽤 한참 동안 격렬한 대치가 이어졌다. 나의 뷰파인더 안에서 시민들이 탄식하고 울부짖고 있었다. 표정들을 담는데 정신이 없었다.

 

 30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전 씨의 차량은 법원 밖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 역시 뷰파인더에 묻었던 눈길을 거두었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 허탈감은 나 자신을 넘어 그 공간 전체를 배회했다.

 

 39년 만에 이뤄진 전두환의 광주 방문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번에는 사과를 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어온 광주시민들의 가슴에는 다시 대못을 박혔다.

 

 역사는 한 시대가 저문 뒤에도 여전히 마감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매듭은 언제나 그렇듯 단지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매달리고 해결하려 할 때 풀릴 것이다. 그날이 속히 오길 희망한다.

 

 

이정현 / 광주MBC    광주MBC_이정현 증명사진.jpg

 

 


  1. 아시안게임 취재기 - 우당탕탕 Jakarta

    <아시안게임 취재기> 우당탕탕 Jakarta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는 필자 인도네시안 타임 도착하자마자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아시안게임 델리게이트 레인으로 입국심사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끝났지만, 위탁 수하물을 찾을 때부터 ‘인...
    Date2018.10.19 Views484
    Read More
  2. 아시안게임 취재기 -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 취재기>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 혼잡 “어이쿠, 저렇게 껴들면 사고 안 나요?” 8월 13일 밤,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
    Date2018.10.19 Views428
    Read More
  3.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드론 영상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드론 영상 2018년 10월 7일, 점심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 오는 길에 가을이 왔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청명하고 파란 하늘 사이로 시커먼 기둥의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검색을 해보 니 고양시에 있는 저유소...
    Date2018.12.19 Views425
    Read More
  4.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Date2018.12.19 Views331
    Read More
  5.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세기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북정상이 11만에 다시 한자리에 섰다. 그때의 두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때만큼 뜻 깊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그들의 특별한 만남을 가까이서 지...
    Date2018.12.19 Views452
    Read More
  6.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2018 평양' 그 새로운 여정

    '2018 평양' 그 새로운 여정 지난 9월 15일은 30여 년 가까이 영상기자로 언론사에 몸담고 취재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날이었다.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선발대로 자동차를 이용한 육로로 개성에서 평양까지 가볼 수 있는 ...
    Date2018.12.19 Views377
    Read More
  7. 태풍 콩레이 영덕 강구면을 할퀴고 가다

    태풍 콩레이 영덕 강구면을 할퀴고 가다 지난 10월 6일 강력한 태풍 콩레이가 한반도에 도착한 후 경남 통영을 지나 경북 영덕에 상륙을 했다. 태풍의 이동 속도가 빨라 짧은 시간에 지나갈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경북 영덕 강구면에는 큰 피해...
    Date2018.12.20 Views455
    Read More
  8. ‘만족합니다’

    ‘만족합니다’ ‘제가 누른 리코딩 버튼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세상을 바꾸는 영상기자가 되겠습니다’. 내가 입사 면접에서 이야기한 자기소개의 한 문장이다. 지난여름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의 이른바‘ 황제 보석’을 ...
    Date2019.01.02 Views678
    Read More
  9. 우리가 아는 ‘팀킴’은 김경두의‘ 킴’이었다

    우리가 아는 ‘팀킴’은 김경두의 ‘킴’이었다 지난 11월 8일, 대구의 한 세미나실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평창 동계 올림픽의 스타‘ 팀킴’이 있었다. 그들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눈물을 흘렸다. 아마 평창에서 이들을 취재...
    Date2019.01.02 Views503
    Read More
  10. 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데스크가 내게 취재 일정을 부여하며 던진 한 마디, “내일 2분 분량 정도로 변기를 찍는대… OOO 취재기자 하고 상의해봐”, “네? 변기 촬영만으로’ 2분 리포트를요?&...
    Date2019.03.12 Views533
    Read More
  11. 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지난 1월 11일, 영상취재팀 캡으로부터 해외출장 준비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 재난·재해도 없던 때라 출장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알게 된 취재...
    Date2019.03.12 Views497
    Read More
  12.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
    Date2019.05.08 Views434
    Read More
  13.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에 서는 날. 기자 생활 14년 동안 수없이 자료화면을 통해 보고 편집하며 만나온 그의 ‘실물’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
    Date2019.05.08 Views389
    Read More
  14.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 할롱베이 크루즈 투어 나서기 직전 크르주 안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북한 리수 용 노동당부위원장. ▶ 할롱베이 투어를 떠나는 북측고위급대표단. 북측대표단이 할롱베이를 찾았다는 것 은 북한이 관광산업단...
    Date2019.05.08 Views491
    Read More
  15. 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호텔, 양국 정상의 잠자리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2주가량 이르게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취재는 정상들의 유력 숙소지, 회담 장소 등이었다. 멜리아, jw메리어트, 메트로폴 하노이, ...
    Date2019.05.08 Views462
    Read More
  16. 해양 탐사선 ‘이사부 호’ 동승 취재기

    해양 탐사선 ‘이사부 호’ 동승 취재기 ▲ 남태평양 항해 중인 이사부호(사진) 미국령 괌에 가는 출장이 갑작스럽게 잡혔다. 경남 거제항에서부터 북위 6도 부근 적도 해역까지 항해하며 연구 활동을 한 대양 탐사선 ‘이사부 호’의 전 ...
    Date2019.07.01 Views590
    Read More
  17. [고성 산불 취재기] 고성 산불 그 후

    고성 산불 그 후 ▲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집을 떠나지 못한 피해주민이 망연자실하고 있다(사진). ▲ 그을린 나무와 잿더미를 뚫고 대나무 죽순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사진). 산림 2천832ha를 잿더미로 만들고, 1천289명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동해안 산불. 현장...
    Date2019.07.01 Views544
    Read More
  18. [고성 산불 취재기] 화마와의 사투

    화마와의 사투 ▲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사진) 그동안 수많은 화재현장을 취재해 봤지만 이처럼 빠르게 번지고 피해지역이 광범위한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인제에서 실화로 산불이 발발했고, 고성군에서 다른 산불이 또 붙었다. 고온 ...
    Date2019.07.01 Views549
    Read More
  19.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 일부 이재민들이 에어컨 고장으로 선풍기에만 의존해서 여름 나기 하고 있다<사진>. ▲ 이재민들을 위해 조립식 임시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강원도 속초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지역 순환근무...
    Date2019.09.09 Views347
    Read More
  20.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 군ㆍ경찰이 조은누리양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 지난 7월 23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실종됐다가 열 흘 만에 구조됐던 조은누리 양이 충북대병원으로 이송 되고 있...
    Date2019.09.09 Views455
    Read More
  21.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튀어나오고, 깨지고... 전주 풍남문 ‘안전 우려’ 전주 풍남문 일부 성벽이 돌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고 현장에 가 보았다. 성벽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었다. 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
    Date2019.09.09 Views37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