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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나열 뉴스는 독재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특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뉴스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깊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언론)이 가진 특권을 잃는다. 역설적으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엔 무의미한 나열, 맹목적인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독재 사회에서는 뉴스도 영화도 단지 나열에 불과하다. 거기엔 깊이와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현대사회 대부분의 영화들은 스스로 나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빌리엘리어트에서 빌리는 흰 옷을 입은 소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청색 반바지를 입은 남자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빌리는 그 안에 등장하는 소녀들, 심지어 영화 속 다른 남자들과도 다르다. 영화 속에서 춤을 추는 다른 소녀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그녀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같은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들이 앵커의 얼굴, 목소리, 뉴스 세트, 정장의 색 등에 변화를 주지만 거기엔 다름이 없다. 다른 앵커, 다른 세트, 다른 옷은 이미 동어 반복의 우리 안에 갇혀 있다.

 

 그들의 열띤 나열에는 다름이 없다. 나열하는 뉴스에는 본디 시선과 시각, 주관성과 철학이 있을 수 없다. 개별자의 생각, 날카로운 시선이 결여되어 뉴스는 밍밍한 맛을 낼 뿐이다. 다름이란 치열한 자기 깎기의 결과물이다. 달라지기 위해 하나의 대상을 치열하게 깎고 또 깎아야 한다. 나열의 형식은 본디 개별자의 이러한 깎는 수고를 덜어준다. 나열은 깎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충실하게 더하는 일이다. 더함으로써 날카로움을 잃는 대신 안전함, 즉 위험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얻는다.

 

 나열 뉴스에서, 경쟁이란 무엇이 빠졌는가만을 말한다. 만약 다른 데는 AB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A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나는 왜 B를 가지지 못했는가? 기자들이 흔히 쓰는 물 먹었다는 표현은 자기 수중에 B가 없기에 오늘 충실한 나열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열의 게임에서 재미를 보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 바로 언론뿐이다. 내가 왜 이 채널을 보는가? 채널을 선택한 수용자(시청자)에게는 실익이 없다. 어느 채널이든 뉴스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악몽이다. 수용자들은 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풍경만이 펼쳐지는 끔찍한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서점은 다름의 천국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서점의 생명이다. 한 주제, 한 영역, 하나의 사건에 대해 보는 이마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기에 손님에게 선택의 재미가 생긴다. 대한민국 뉴스는 다름이 없기에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대한민국 뉴스엔 무엇보다 깊이가 결여돼 있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날카로운 것이다.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끝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뭉뚝한 것은 표면 위에서 깨지고 부서진다. 성역이란, 표면에서 깨어지고 부서질 뿐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다. 성역은 날카로움이 없는 공간, 즉 선진국보다는 후진국, 민주화가 덜 된 사회, 부패한 국가, 봉건적인 조직에 더 자유롭게 자리한다. 성역이란 언제나 날카로움이 없는 언론과 한 쌍이다. 성역이 굳건한 곳마다 반드시 창끝이 무딘 언론이 있기 마련이다. 언론의 창끝이 뭉뚝해서 그저 표면 위에서 적당히 깨지고 적당히 부서지기 때문에 성역은 유지된다.

 

  AB, C 중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가가 아니라 A1, A2, A3... 혹은 A’, A”, A’”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BC가 없어야 한다. BC는 더 깊이 들어가야만 하는 A를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열의 경쟁보다 훨씬 위험하다. 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수용자들은 즐거움과 행복을 되찾게 된다. 거기엔 다름이 있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 편집장    김정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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