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7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튀어나오고, 깨지고... 전주 풍남문 ‘안전 우려’

 
 

성벽.png

 

 전주 풍남문 일부 성벽이 돌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고 현장에 가 보았다. 성벽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었다. 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튀어나온 성벽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였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돌이 쪼개져 손이 들어갈 정도 틈이 생긴 데도 있었다. 성벽은 그야말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30cm 플라스틱 자를 가져와 튀어나온 길이를 측정했고, 손을 흔들거나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 가림막이 설치된 성벽의 전경을 담았다. 이렇게 풍남문 성벽 돌출 기사를 내보냈다.
 
 뉴스가 나간 다음 날 선배가 찾아왔다. ‘어제 리포트에서 클로즈업 샷이 부족했다. 타사 리포트는 봤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선배가 말한 타사 리포트에는 성벽 클로즈업이 11컷이 사용된 반면 내 리포트엔 3컷이 전부. 물론 단순히 클로즈업이 정답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현장에 갔을 때 그날 핵심 주제를 화면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또 한번 느껴야 했다.
 
 “소리와 자막 가리고 영상만으로도 이해가 돼야 한다.”
 
 영상기자들이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을 실천하고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현장을 떠나고 리포트를 제작하고 나면 찾아온다는 것. 왜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누군가 소리는 없이 화면만으로 내 리포트를 봤다면? ‘그래서 풍남문에 뭐가 문제라는 건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날 이후로 머릿속이 복잡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취재 현장에 서는 것이 다시 두려춰졌다. 단순히 리포트 잘 만들고 못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문제였다.
 
 이전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적었던 메모를 다시 꺼냈다. 당시 나는 꽤나 불안했나 보다. 선배들이 한 말을 자세하게 적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리포트를 찾아 모든 장면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려고 이미지를 캡처하기도 했다. 촬영하고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불안이 지속되는 상태였다.
 
 ‘뉴스 시간 내에 못 만들면 어쩌지?’
 ‘실수해서 방송사고 나진 않을까?’
 
 제작을 끝내고 방송 테이프를 넘겨야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메모는 지난 5월 이후로는 더 이상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때쯤 혼자서 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 그 이후 촬영, 편집이 힘들다고는 해도 조금씩 나태해졌던 건지도 모른다.
 
 메모를 보다 보니 웬만큼 답이 찾아지는 듯했다. 안도감. 나는 무언가 놓쳤던 게 아니라 불안에 나 자신이 나름의 대응책을 찾아냈던 것이다. ‘적당히 이 정도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이 쌓이고 쌓여, 방치되고 또 방치돼 성벽이 갈라졌듯이, 업무에 있어 나 자신의 문제 역시 작은 안일함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순간의 방심은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사고보다 더 큰 문제는 보도의 완성도. 영상은 고민과 취재, 생각의 최종 표현물이다. 그런 만큼 더 노력하고 한발 더 뛰며 새어나가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좌절을 찾아 사람을 만난다. 왜냐하면 그 좌절이야말로 성장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좌절이 또 찾아오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성수 / KBS전주총국    KBS전주총국 정성수 증명사진.jpg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의 숙제 2005.06.13 7890
학부모 찬조금에 대한 단상 2005.06.13 8040
양양 산불 현장에서 2005.05.11 7493
씻겨나가 평평해진 도시 - 반다 아체 2005.03.24 8237
기아자동차 채용비리에 대한 취재방해 행위를 바라보면서.... 2005.03.24 8055
故 김선일씨를 취재하고… 2004.08.09 8105
해파리의 침공 제작기 2004.02.25 8611
르포 2003” 취재기/그곳에 “북한 가려면... 2003.07.15 7264
전통다큐멘터리의 톱을 지킨다 2003.07.08 8121
방북 촬영장비 준비 2003.07.08 7353
방북취재를 위한 국내의 서류절차들 2003.07.08 7377
북한관련 프로그램의 기획요령과 2003.07.08 7068
고이즈미 내각의 신 탈아입구(脫亞入毆)론 2003.07.08 8211
특집 EBS자연타큐멘터리 2부작 -개미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 2003.07.08 9152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2003.07.08 8727
EBS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 2003.07.08 7113
NAB의 SONY 2003.07.08 7061
NAB 2001 참관기 2003.07.08 7361
뛰면서 꿈꾸는 이들이 모여 있는 일당백의 ‘막강 2003.07.08 6990
뇌성마비 어린이들의 잔치 2003.07.08 7098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2003.07.02 7120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