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일 년, 어떻게 보내게 될까
▲ 제주 월정리 해변에 취재하고 있는 필자
2016년 4월, 일주일 동안 제주를 돌아본 경험이 있다. 당시 제주공항에서 일하던 친구네 놀러 가서 사흘, 영화제가 열린다는 강정마을에서 이틀, 그리고 결혼 후 제주시 구좌읍에 이주해 사는 친구네서 다시 이틀. 나는 뚜벅이 여행자였지만 친구들이 나를 태우고 애월의 카페와 흑돼지 맛집으로, 서귀포의 게스트하우스로, 그리고 함덕 해수욕장과 어마어마한 곁들이 반찬이 나오는 횟집 등으로 데리고 다니며 제주를 구경시켜 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예쁜 푸른빛이었던 협재해수욕장과 축축하면서도 상쾌했던 비자림이다. 작년 10월에는 1박 2일의 짧은 출장으로 제주에 와서 새별 오름도 오르고 사려니 숲길도 걸었다. 여기에다 중고등학교 때의 수학여행까지 더한다면 관광객으로는 적지 않은 경험을 가진 것 아닐까?
여행자에게 즐거움만을 선물한 땅으로 기억되는 제주에서 ‘노동자’이자‘ 이주민’으로 살게 되다니! 순환근무 지역으로 제주를 선택한 것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환경과 생태 이슈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지역 이슈들은 내가 촬영기자로 일하기 전 시민단체 회원으로 활동을 하며 관심을 가진 것들과 관련이 있다. 인구 유입과 관광객 증가에 따른 문제들, 제2공항 설립과 쓰레기 처리 문제, 젠트리피케이션, 환경파괴 등.이것들은 사랑받는 관광지 제주의 이면이다.
오름과 바다, 숲길 등 제주의 아름다운 곳을 다닐 수 있는 기회도 제주를 선택한 이유다. 지난 첫 일주일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취재로 제주 시내를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내가 기대한 제주 풍경을 자주 만나게 되길 바라고 있다.
그 외에도 따뜻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20년 넘게 경기도 파주에서 살았는데 겨울이면 매일 아침 날씨 뉴스에서 파주 기온이 얼마나 낮은지 알려줄 정도로 추웠다. 며칠 전엔 파주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였는데 웬걸? 같은 날 제주는 영상 3도였다. 지난 1월 한 달간 제주지역 평균기온 은 9.2도였다고 하니 제주에서 보내는 첫 달(2020년 2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겨울이지 않을까? 제주총국 보도국 선배들과 동기들이 맛집 이야기를 하면 나는 재빨리 지도 어플을 켜고 별표를 친다. '도민 맛집'과 '도민 명소'를 정리해 지인들 의전에 활용하는 게 올해 해야 할 큰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일 년 살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의 주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막내를 남한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보내게 되었다며 잠시 우울해하던 엄마는 일 년 동안 몇 번이나 주말을 이용해 제주에 놀러 갈 수 있는지 계산을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 대학 동기들은 여름에 제주에서 엠티를 해야겠다고 한다. 올해 결혼 계획이 있는 한 친구는 한라산 정상까지 함께 올라야만 청첩장을 주겠다는 말로 제주 방문 의지를 보여줬다. 지금은 각각 원주와 거제에 사는 대학교 선배들은 내 지역 근무를 기회로 삼아 제주 모임을 기획 중 이다. 그리고 제주도 생활 열흘 만에 한 친구가 제주를 방문하겠다며 연락을 해 왔다. 나도 아직은 제주 생활이 얼떨떨하고 고기 국수라고 쓰인 간판을 발견하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제주 방언을 들어야 내가 제주에 있음을 점차 실감하는 처지인데. 이들 모두가 나보다도 제주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 한라산 등반, 서핑, 맛집 투어, 올레길 트래킹 등 하고싶은 액티비티도 제각각이다. 이들 덕분에 나도 제주에서 이전에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일 년을 채우게 생겼다.
송혜성 / KBS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