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인권 감수성 부족”
비판에“ 오히려 잘 된 일” 지적도
방송사, 가이드라인 재정비·직원 교육 실시 등 재발 방지책 본격‘ 가동
▲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1일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열린 어머니 강한옥 여사의 장례 미사를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대통령 모친의 시신 운구 장면을 여과없이 방송한데 대해 방송사들은“ 편집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지만,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언론이 돌아가신 분과 유족에 대한 예우도 갖추지 못하고‘, 알 권리’를 남용한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은 언론계 안에서도 나온다. 한 방송사의 영상기자는“ 현장에서 취재하는 사람도, 안에서 편집하는 사람도, 그리고 이를 걸러내야 하는 데스크도 모두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보도 대상이 대통령 모친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언론이 사람의 주검을 취재할 때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보다 사망자와 유족에 대한 고려가 충분 한지, 뉴스를 보는 사람이 심리적인 충격이나 혐오감을 가지지는 않을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 준 사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데스크는 이번 방송통 신심의위원회의 제재 조치가“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그동안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사안에 대해 지적을 받음으로써 잘못된 부분을 고쳐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시작되자 방송사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방송사들은 관련 영상의 취재·편집·보도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데스킹을 강화하는 방향 으로 가닥을 잡았다.
KBS 김휴동 보도영상 주간은“ 해당 보도가 논란이 된 이후 기존의 영상·편집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며“ 부직포로 싸인 시신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촬영이나 노출을 금지하고, 부득이한 경우 원거리나 모자이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리 했다.”고 밝혔다. KBS는 개정된 가이드라인을 보도 게시판에 올려 모든 기자들이 볼 수 있도록 공유하는 한편 영상기자, 영상편집 직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마친 상태다.
김 주간은 “시신의 모습을 보도하는 부분에 대해 인식이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구체적인 문구를 삽입하고 해당 내용을 다시 한번 영상편집 직원들에게 각인 시키는 한편, 민감한 아이템에 대해서는 데스킹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MBC도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나준영 뉴스콘텐츠 편집부장은 “지난해 한국영상기자협회에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나왔을 때 영상 취재와 편집 등 관련 업무 종사가 110여 명이 모두 교육을 받았다.”며“ 올해도 영상을 취재하는 부서, 편집 부서의 업무 세칙에 취재 윤리나 영상보도 윤리와 관련한 부분을 명시했고, 관련 교육과 가이드라인 준수를 구체화하도록 업무 계획과 방향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나 부장은 이어“ 영상 편집자 입장에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기본으로 해서 우리가 좀 더 신경 쓰고 대처해야 할 부분에 대해 부원들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며“ 협회 가이드라인은 인권과 초상권 중심인데, 이 외에도 비상 상황 시 대처 요령이나 영상을 편집할 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 등 실제 MBC 영상 편집 환경에 맞게 간단하게나마 가이드북을 만들고, 가이드북이 나오면 부원들과 함께 교육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방통심의위 조치로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가 지난해 내놓은‘ 2020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시신의 촬영과 관련하여“ 시신이 직접 노출되는 방식이 아니라 풀샷에서 시신이 운송되는 장면, 앰뷸런스로 이송되는 장면 등에 대한 촬영은 가능하다. 그러나 촬영한 영상을 방송에 사용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재난 Q 4-8).
이에 대해‘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이승선 충남대 교수(언 론정보학과)는“ 어떤 상황이 되었건 시신이 방송에 노출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직접적 노출은 물론이고, 천으로 감싼 상황에서 시신을 운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장면이 방송에 나올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가이드라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클로즈업하는 건 문제지만 멀리에서 풀 샷 정도로 촬영하는 건 필요하다’ 는 현업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며 “이번 방통심의위의 결정으로 시신의 모습은 원칙적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기본 방침 아래 상황별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S 김휴동 주간도 “추상적인 표현은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와 닿지 않는다.”며 “지금보다 구체화된 문구들을 가이드라인에 삽입해야 현업 종사자들이 더 잘 인식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