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방송출연
나는 어릴 때 퀴즈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일요일 아침마다 하던 ‘장학퀴즈’, 일요일 오후에는 대학생들이 출연한 ‘퀴즈 아카데미’, 혹은‘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매주 챙겨봤다. 처음에는 어렵다가 나중에는 비슷비슷한 질문이 많아 적당히 유추하면 정답을 2/3 정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도전 골든벨’도 초창기 많이 시청했었다. 이들 프로그램 중에‘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를 제외하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출연 자격이 되기에 더 챙겨 봤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일반인이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곡을 적은 엽서를 보내거나, 길가다 혹은 사건 당사자가 되어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모자이크 없이 인터뷰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학교별로 돌아다니던 퀴즈 프로그램 에 출연하거나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장학퀴즈’나 ‘도전 골든벨’은 학교의 추천이 없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자의로 출연하는 것에 제약이 있었다.
방송과 관련된 사람들만 출연하던 프로그램에 일반인들의 등장이 많아진 것은 1990년대 중반 케이블TV의 개국 이후일 것이다. 그전까지 지상파에서 방영됐던 프로그램 중에 오전이나 오후의 와이드 프로그램에서 지방 소개하는 코너에 시골의 어르신들이나 신동이 나오더라도 일회성이었다면, 이제 많아진 프로그램을 소화하기 위해 일반인들을 섭외하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지상파의 예능에서 일반인이 주인공이 되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게 되면서부터 추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시청자나 인터넷 언론의 관심은‘ 아기들’이지 어른 방송인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윤후나 이휘재의 쌍둥이는 좋아했지만 부모들은 그저 그런 예능인으로 취급됐고, ‘붕어빵’의 김구라 아들은 나중에 연예인이 되기도 했다. 대학생 또래의 딸을 둔 연예인이 나오거나, 고부 갈등의 소재를 들고 방송에 출연하고, 결혼 못한 노총각은 노모를 모시고 나와 고정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다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예전의 인기를 회복해 주말 예능의 강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운 우리 새끼’에 나온 노모들은 2017년 ‘SBS 연예대상’에서 일반인으로는 최초의 대상을 가져갔다.
한편으로 일반인들의 방송 출연에 대한 피로감도 동시에 생겨났다.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컨셉은 거의 ‘관찰’이거나‘ 체험’에 집중되었고, 당연히 각본에 의한 연출을 불편해하고, 혹은 지나친 미화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시청자들이 생겨났다.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부채를 가진 연예인이 방송에 출연해 나가면서 점차 빚을 갚는다는 소식에 ‘연예인 걱정은 안 하는 것’이라는 냉소가 생겼고, ‘부모 찬스’로 쉽게 연예계로 진출하는 케이스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그렇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옛 것을 우려먹는 연출진의 아이디어는 고갈되지 않아서 당분간 관찰 혹은 체험으로‘ 일반인’이 출연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키워드는 전문가인 일반인 ‘강형욱’과‘ 백종원’일 것 같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인지도를 알린 강형욱은 오로지 반려견 지도라는 장르로 월요일 시청률을 압도했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백주부’로 활약했던 백종원은‘ 3대천왕’과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만든 공로로 2019년 ‘SBS 연예대상’에서 무관이었지만 사실 상 ‘대상’이나 다름없는 인정을 받았다. 이 둘은 전공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연예인과 무관한 대중성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갔다. 비록 ‘소유진’과 결혼한 백종원의 경우 연예인 가족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지금은 오히려 부인이 종속 변수가 되었고, 강형욱은 이경규로부터 ‘강 선생’이라는 칭호로 예우를 받을 정도가 되었다. 이 둘은 관찰이나 체험이 아니고 자신의 지식과 연륜으로 예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일반인’ 들에게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들에게 진정성을 어필하면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40년 넘게 TV프로그램을 봐온 시청자 입장에서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전공 분야로 만들어내는 재미와 감동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마냥 좋지만 않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라면을 끓이면서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버티느라 수고했다”고. 연예인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기도 쉽지 않았고, 오랜 무명 시간을 지나 비로소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 인기를 증명했으니 대견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동시에 일반인 예능에 피곤했던 시청자들에게도 무엇인가 메시지가 되었을 것 같다.
방종혁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