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3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사진) 이날치 만나다.jpg

▲ 지난 10월 초, 파주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날치 밴드

 

 

 따랑 땅 따랑~ 따랑 땅 따랑~’
 

 댄스곡이 시작될 것 같은 130bpm의 흥겨운 베이스 리듬 뒤에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킬링 파트가 시작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뭔가 힙합 같기도, 디스코 같기도 해서 힙(Hip)한 것을 좇는 MZ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조회수 2억뷰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한 노래 이야기이다.
 

 사실 이 노래는 판소리였다. 북소리에 맞춰 “얼쑤~” 하며 갓 쓴 소리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가 아는 그 전통의 장르가 맞다. 다만 그 판소리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라는 그룹이 완전히 재해석한 곡이다. 베이스 두 명과 드럼 한 명, 네 명의 판소리 보컬로 구성된 이 밴드는 ‘이날치’라는 19세기의 명창의 이름을 따서 결성되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범 내려온다’는 거북이가 용왕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인 ‘수궁가’의 한 부분을 발췌했다. ‘범 내려온다’를 계속 듣다 보면 토끼전에서 갑자기 왜 범이 등장한 건지 궁금해지는데, 토끼를 찾으러 육지로 올라 온 거북이가 ‘토 선생’을 ‘호 선생’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호랑이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내려온다는 에피소드였다.


 이날치는 이런 엉뚱한 전개를 놓치지 않았고, 사실 전체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범의 등장을 과하다 싶을 만큼 반복했다. 그 결과 ‘판소리를 편곡했더니 수능 금지곡이 되네’, 라는 댓글 반응이 돌아왔다. 곡의 중독성이 워낙 강해서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한다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최근에는 1일 1범의 시대라는 댓글까지 등장했다. 분명 판소리 수궁가는 이날치를 통해 2020년 가장 힙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파주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날치’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다는 느낌이었다. 무대에서는 괴짜 같은 분위기에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뭔가 조용하고 진중한 분위기가 낮게 깔려 취재진도 긴장하며 카메라 세팅을 진행했다.
 

 인터뷰 자리를 배치하는데, 드러머인 이철희 씨가 가장 먼저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BTS와 콜라보를 하겠다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촬영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친근함을 느꼈다.
 

 인터뷰는 기존의 형식과는 달리 유튜브에 달린 댓글 중에 하나를 뽑아 읽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첫 번째 순서로 당첨된 이철희 씨가 댓글을 뽑았는데, 현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철희 씨가 취재진이 준비한 댓글의 글씨가 작아 읽지를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돋보기까지 동원했는데 힙하게만 보이던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뭔가 짠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도 10대가 공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존경의 마음도 들었다.
 

 이날치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직접 베이스도 담당하고 있는 장영규 씨는 수식어가 많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감독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고, 퓨전 국악그룹 ‘씽씽’을 결성해서 화제를 끈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장영규 씨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 많은 음악 중에 판소리 수궁가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는 무심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날 뷰파인더를 보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놀라웠던 말이다. 참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심청가로 춤을 출 순 없으니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판소리를 춤을 추기 위해 선택했다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범 내려온다’, ‘ 좌우나졸’, ‘어류도감’ 등 이날치 모든 곡이 수궁가에서 춤을 추기에 가장 적합한 구절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는 이날치의 음악을 국악과 같이 장르로 규정하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이철희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독특한 국악 같은 걸로 기억되는 밴드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는 편안한 노동요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국악의 현대화를 꿈꾸는 밴드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취재진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보컬의 수장 격인 소리꾼 안이호 씨는 요즘 갓보다 스냅백이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국악 무대가 많이 사라진 가운데 이런 흐름들로 기분이 좋은 한편,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치의 음악이 특이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그냥 듣기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
 

 촬영을 하는 도중에도 다음 스케줄 때문인지 작업실은 소란스러웠다. 예정에 있던 추가 스케치를 생략하고 자리를 비워 주었다. 촬영이 끝났다고 말하자마자 옆에서 기다리던 스탭들이 달려들어 이날치 멤버들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또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
 

 안이호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급변하는 음악 문화 속에서 이날치의 음악은 계속해서 롱런할 수 있을까?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는 이날치는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떼창하고 있는 이날치와 다시 한번 마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태 / SBS  (사진) 김승태 증명사진.jpg

 


  1. 체르노빌의 기자들을 잊지 않은 한국에 감사

    <키이우에서 온 편지> 체르노빌의 기자들을 잊지 않은 한국에 감사 ▲유리 볼다코프 ▲아나스타샤 리지나 (유리 볼다코프의 손녀)  친애하는 조직위원회와 여러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오월광주상 수상자이신 유리 볼다코프, 할아버지 ...
    Date2023.12.21 Views164
    Read More
  2. 취재를 잊은 언론, 진실을 숨긴 언론

    [뉴스VIEW] 취재를 잊은 언론, 진실을 숨긴 언론  #장면1. 11월 22일 우리 대통령이 영국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를 패스해 홀로 직진하는 장면이 생중계되었다. 현장 외신 기자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이거 다 촬영했지?”라며 웅성거렸다. 영국 언론...
    Date2023.12.21 Views189
    Read More
  3. 취재현장의 유튜버, 취재의 자유와 방해의 경계에서…

    취재현장의 유튜버, 취재의 자유와 방해의 경계에서… ▲ 유튜버들의 취재 방해를 다룬 MBC 온라인 채널 〈엎어컷〉 화면 갈무리 지난 8월13일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당일 이른 아침부터 검찰 기자단을 비롯한 각 사의 현장 취재진이 이재...
    Date2021.11.17 Views435
    Read More
  4. 코로나19, 대구에서

    코로나19, 대구에서 ▲ 청도노인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를 취재하고 있는 필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약 917만 명(2020년 6월 24 일 기준)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연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감염 확진자가...
    Date2020.07.16 Views286
    Read More
  5. 클라우드시대의 영상기자

    클라우드시대의 영상기자 보도영상 관련 기술은 계속 발전해왔다. 화질은 SD에서 HD로, 기록 매체는 테이프에서 메모리로 진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영상취재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영상기자의 역할까지 바꾼 것은 아니다. 하지만 MNG는 기존의 위성 장비를...
    Date2020.03.11 Views521
    Read More
  6. 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 그리고 셀프케어

    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 그리고 셀프케어 ▲ 필자가 지난 8월 27일 호주 멜버른 다트센터에서 방송기자연합회 연수 대상자 기자들에게 ‘트라우마를 경험한 지역사회 보도 사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해 일어난 부마항쟁이...
    Date2020.01.08 Views294
    Read More
  7. 특별기고 한반도 주변 불안정과 달러 위기의 연관성

    한반도 주변 불안정과 달러 위기의 연관성 1999년 유로화 탄생 이후 국제정세 불안정의 이면에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기와 연관성이 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미국의 달러 패권을 둘러싼...
    Date2018.03.15 Views737
    Read More
  8. 특별기고-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위해

    ‘한국형 모델’을 제시한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KBS, MBC 공영방송의 몰락은 결국 구성원들을 2017년 9월 또다시 파업으로 몰아갔다. 정치권은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특별다수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가 이것 역시 새로...
    Date2017.11.04 Views672
    Read More
  9.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순간이 라이브로 전파를 탔다. 이전 라이브 영상처럼 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TV 화면이 보는 이에...
    Date2019.09.09 Views271
    Read More
  10.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 지난 10월 초, 파주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날치 밴드 따랑 땅 따랑~ 따랑 땅 따랑~’ 댄스곡이 시작될 것 같은 130bpm의 흥겨운 베이스 리듬 뒤에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킬링...
    Date2020.11.17 Views330
    Read More
  11. 펭수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펭수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한 펭수 지난 10월 말, 우연히 EBS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했다. SBS 정복기라는 에피소드로 펭수가 스브스뉴스팀을 방문했을 때 (5초 정도?) 잠깐 출연 당한 것. 그 출연 후 주...
    Date2020.01.08 Views423
    Read More
  12. 평범한 일상과 업무 속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찾아가는 것의 중요성

    <2023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 국제교류행사 참여기> 평범한 일상과 업무 속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찾아가는 것의 중요성  누군가 ‘왜 기자가 되었는가?’라며 고리타분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한다면, 그래도 마음 한 편에 고이 모셔둔 ‘사회에 보탬이 되는...
    Date2023.12.21 Views163
    Read More
  13.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질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질서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18년에 발생하여 약 5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비교해 보면 코로...
    Date2020.07.17 Views283
    Read More
  14. 피의사실 공표 논란, '쉼표'가 될 기회

    피의사실 공표 논란, '쉼표'가 될 기회 ▲ 법원의 영장실징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피의자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반갑다. 그간 소원해진 것 같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던 시절은 지났다. 대전·충남 ...
    Date2020.07.17 Views310
    Read More
  15.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의 고뇌와 함의

    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의 고뇌와 함의 서울지방경찰청은 3월 24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을 공개했다. 4월 16일에는 조주빈의 공범으로 구속된 피의자 강훈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성명과 나이가 공개되었다. 얼굴은 다음 날 피의자를 송치할 ...
    Date2020.05.11 Views526
    Read More
  16. 필사는 창작의 왕도

    필사로 당대 최고 시인이 된 다산의 제자 황상 좋은 글을 베껴 써서 익히고 마음에 담는다는 ‘필사’의 열풍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서점에서는 필사책을 모아 놓은 특별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고,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필사’라는 단어를 넣어 보면 수백 권...
    Date2017.11.04 Views649
    Read More
  17. 한국 미디어가 주시해야 하는 ‘소리 없는 세계통화전쟁’

    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상황에 묻혀 한국 미디어가 의외로 무관심한 분야가 미국‧중국‧러시아‧이란‧카타르‧베네수엘라 등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리 없는 세계통화전쟁’이다. 통화전쟁은 실제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기 ...
    Date2017.11.04 Views635
    Read More
  18. 한국 영화 100年史 속 봉준호, 그리고 김기영

    한국 영화 100年史 속 봉준호, 그리고 김기영 -잊혀진 씨네아스트 김기영- ▲ 사진(MBN뉴스 갈무리) ▲ 김기영 기획전 포스터(사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과 칸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영화 역사상 이 둘을 동시 석권한 작품은 1945년...
    Date2020.05.07 Views364
    Read More
  19. 한국영상기자협회 입회에 즈음하여…

    한국영상기자협회 입회에 즈음하여… “‘제3의 눈’으로 한국 사회 발전 보도…협회 회원들과 유대 깊어지길” 우선 저희 외신기자단을 회원으로 받아 주신 전국의 모든 회원님들에게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에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원으로 가입한 외신영상기자...
    Date2021.09.24 Views373
    Read More
  20. 한국의 전략가들이 주시해야 하는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한국의 전략가들이 주시해야 하는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지난 6월 12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회담 이후 북미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정권 교체 대...
    Date2019.01.03 Views1587
    Read More
  21. 해외 사례로 ‘검찰 포토라인’ 철폐 톺아보기

    해외 사례로 ‘검찰 포토라인’ 철폐 톺아보기 검찰 뉴스의 익숙한 공식이 깨지고 있다. 법무부 훈령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피의자 소환을 비공개로 전환하면서 더 이상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의 모습을 뉴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얼마 전까지 당...
    Date2020.01.09 Views39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