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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precedented - 코로나 1년과 영상기자

 

 

 unprecedented : [형용사] 전례가 없는, 미증유의’

 MBC에 입사하기 전, 학생들에게 수능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자주 접했던 단어. 하지만 이 단어를 수능 시험지에서 본 횟수보다 지난 1년간 해외 언론의 기사에서 접한 횟수가 더 많을 만큼, 우리는 전례가 없는 시대, 미증유의 혼란과 싸우며 1년을 문자 그대로 ‘살아냈다.’

 

 영상기자들은 보이지 않는 적(바이러스)이 창궐한 세상에서 ‘살아내다’라는 문학적 관용 표현을 온 몸으로 체감했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 현장,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피로 속에 고통을 호소하는 의료진들, 광복절 집회의 인파 속에서 코로나에나 걸리라며 침을 뱉는 사람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처절한 생존 앞에서 울부짖는 자영업자들을 만났다. 예전이었으면 ‘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먼저 집중했을 현장에서, 언제부터인가 모든 이가 서로를 ‘잠재적 감염원’으로 의심하고 있는 현실이 슬펐다. 감염되는 순간 가해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마음 속 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나를 더 외롭게 했다. 1년 내내 ‘은근한 공포’와 함께한 일상이었다.

 

 마스크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 속에 보냈던 봄, 대규모 확산의 기로에서 ‘언제, 어디서 걸릴지 모르는’ 공포 속에 보냈던 여름, 방심하는 순간 밀접 접촉자로 자가 격리되면서 ‘걸렸으면 어쩌지’라는 공포 속에 보냈던 가을, 그리고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공포와 함께하는 겨울.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2주간의 자가 격리’는 마냥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의 시간이 반가웠지만, 이내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다. 영상기자랍시고 자가격리의 일상도 틈틈이 동영상으로 기록하며 유튜브 콘텐츠(#엎어컷, #카스테라)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울적한 일상의 무기력함이 원래 한 몸인 듯 나를 감쌌다. 그리고 그 무기력함은 지금도 쉬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즐겁다’라는 감정을 느낀 지 꽤 오래되었다.

 

 요즘은 출근해서 카메라를 들고 일을 할 때가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적어도 일을 할 때만큼은 ‘살아 숨 쉬고 있는’기분이 든다. 한 걸음 더 움직여 한 컷 한 컷 녹화 버튼을 누르며 살며시 미소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나는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코로나가 변화시킨 일상은 이런 기쁨도 방해한다. 얼굴을 잘 모르는 취재원을 포착해야 할 때, 마스크는 마치 Phantom의 가면처럼 여겨진다. 간혹 가까이에서 인터뷰하고 있던 취재원이 갑자기 마스크를 내릴 때, 티를 내지는 못 하지만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한다.

 

 ‘취재냐 안전이냐?’

 지난 1년간 끊임없이 현장에서 스스로에게 던졌을 질문일 터. 우리를 내보내야 하는 캡과 데스크들은 매번 ‘안전이 우선’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했지만, 솔직히 지난 1년간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취재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닌가. 여력이 된다면 영상기자협회 차원에서‘취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취재진이 운집한 현장에서의 대규모 감염 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한 번쯤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언제까지 운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뉴스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기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며칠 전, 코로나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자에 대한 사연을 접했다. 7세, 5세, 그리고 이제 겨우 5개월 된 세 자녀를 둔 그분은 아이들을 처가에 보낸 사이 목을 맸다. 그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는 그의 아이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 지면을 빌려 망자의 명복을 빈다. 코로나 1년, 오늘을 ‘살아내는 것’은 이토록 처절하고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져야 하고, 뉴스는 계속 제작되어야 한다. 이 ‘unprecedented’의 시대, 수많은 ‘unprecedented’를 기록하는 사관(史官) 역할을 묵묵히 수행 중인 영상기자들에게 존경의 마음과 함께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용기, 방역 수칙을 지키자는 당부, 그리고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동세/ MBC (사진) MBC 김동세 증명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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