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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와’에서‘오월광주’를보다.


(TOP우측)김영미 PD기고글 1.jpg

▲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운집한 미얀마 몽유와의 시민들 (사진=Monywa Strike
Committee)



국내외 언론의 취재, 보도가 봉쇄되어 버린 미얀마
 3월 초, 양곤 기자들에게 우연히 들은 어느 지역의 저항 시위 이야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양곤보다 더 시위가 거센 지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장군의 고향‘바간’이라는 곳과 멀지 않은 ‘몽유와’라는 농촌 도시였다. 

 지도를 찾아보니 미얀마의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북쪽으로 차로 두세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양곤과도 먼 이곳에서 그것도 작은 농촌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미얀마에 쿠데타가 난 지난 2월 1일 이후, 전 세계 외신들은 그 누구도 미얀마 현지 취재를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국경이 닫혔고 양곤 공항에서 취재진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다. 작년 11월에 선거취재 갔다가 눌러앉았던 프리랜서 취재진 몇 명과 기존의 소수 특파원들이 미얀마에 외신기자로 있었지만, 그나마도 취재가 전면 통제 되었다. 시위현장에서 취재활동을 하다가는 체포되기 십상 이었다.

 미얀마 현지 언론은 더 최악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체가 군부의 표적이 되고 취재진이라는 이유로 체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CNN이 군부의 협조 하에 취재하러 들어갔다가 군인들의 감시와 인터뷰이들의 체포로 단 며칠도 취재하지 못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어서 몽유와의 시위 상황은 미얀마 사람들의 SNS 상에서만 회자되는 정도였다. 미얀마 기자들이 지방인 ‘몽유와’까지 취재하러 갈수없었다. 곳곳에 군인 검문소와 감시의 눈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몽유와 시위는 대단했다. 

 미얀마항쟁의 중심지, ‘몽유와’
 지난 2월 7일 몽유와 시내에 첫 저항 시위가 열렸다. 그 후 현재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몽유와 사람들 모두가 동참한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저항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미얀마’의 광주라 불릴만큼 몽유와는 미얀마 저항의 상징이 되어있었다.

 서울에 있는 나는 몽유와에 있는 그들과 어떻게 접촉할지 고민이었다. SNS를 뒤지고 양곤의 기자들과 합심하여 간신히 몽유와 파업위원회(Monywa Strike Community)의 학생 조직과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그들은 나를 경계했다. 미얀마 내부 기자도아니고 한국에 있는 기자가 자기들을 찾아낸 것을 의아해했다. 

 ‘몽유와’에서 날아온 문자- “THANKS”
 “우리는 우리끼리 알아서 저항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지만 우리가 당신을 도울 일은 없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왔다.

 저항 시위를 하며 군부의 감시와 수배로 경계가 심한듯했다. 나는 그 날부터 미얀마 시민들에게 보내는 한국인들의 연대 소식과 사진 그리고 우리 정부의 단호한 미얀마 군부와의 단절 조치 등을 담은 소식들을 보냈다. 

 그리고 “부디 안전하게 있기를 한국인의 한사람으로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면 읽기만 하고 답이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어느 날, 내가 보낸 한국의 미얀마 연대 소식에 처음으로 “Thanks”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들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진)분재전문기자 김영미PD 기고문 1.jpg
▲ 인터넷망이 끊겨 소식을 공유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시위의 시작을 알리는 오토바이 행렬 (사진=Monywa Strike Committee)


(중앙상단)분쟁전문기자 김영미PD 기고문 2.jpg
▲ 몽유와 파업위원회를 이끌다가 군부에 체포된 '판다' 웨이 모 나잉(26)씨가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던 당시의 모습  (사진=Monywa Strike Committee)


 미얀마 민주화투쟁의 젊은 리더, ‘몽유와’ 의 판다
 나는 나에 대한 소개, 미얀마 취재를 7번 다녀왔고 샤프란 혁명 때도 취재했으며 내 SNS를 알려주며 나의 얼굴 사진을 지금 올릴 테니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신원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 했고, 이윽고 조금씩 그들 나름대로 나를 언론인으로 판단하고 ‘몽유와’의 저항 소식을 공유해주었다. 이들은 아마도 버마어에서 영어를 통역해주는 번역기를 이용하는듯했다.  그러면서 이들 중 영어를 가장 잘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고 별명이 ‘판다’라고 했다.

 판다는 26살의 청년으로 ‘파업위원회’와 학생조직의 ‘리더’라고 했다. 농촌 도시의 청년치고 영어가 수준급이었다. 그는 대학생 때 영어를 전공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가 이끄는 ‘파업위원회’는 기존의 ‘몽유와’ 대학생조직과 시민들이 저항 시위를 함께 하며 새로 꾸려진 ‘몽유와’ 투쟁 조직이라고 했다. 

 몽유와’ 저항의 상징이 된 오토바이 행진
 -오토바이 소리가 시작되면 시민들의 시위도 시작 
 그들이 알려준 몽유와 저항 시위의 상징은 오토바이였다. 군부가 인터넷을 끊어서 비싼 돈을 주고 사야하는 사설 가설망(VPN)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엄두가 안 난다. 언제 시위가 시작하는지 알수  없는 시민들에게 시위 공지를 할 수 없어 착안한 아이디어가 오토바이이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고 몽유와 시내 한가운데 등장하면 사람들은 ‘아, 시위가 시작 되는구나“하며 집을 나와 시위대를 따랐다. 

 CDM(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몽유와’ 시민들은 아침부터 집에서 옷을 입고 차비를 하고 있다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소리를 쫓아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몽유와’ 시민들은 저항시위를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몽유와’의 윤상원, 판다를 만나다.
 내가 ”‘몽유와’ 시민들 몇 %가량이 시위에 참여하나? “라고 묻자,  판다는 ”거의 모두“라고 대답했다. 판다는 대단한 청년이었다. 시위에 연설을 하면 정말 뛰어난 언변과 자신의 신념이 찬 말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이 영상으로 보여주는 시위장면은 마치 광주 항쟁을 보는듯했다. 

 판다는 윤상원이고 시민들은 광주 시민 같았다. 농촌 도시라고 보기에는 너무 엄청난 장면들이었다. 군부는 이런 몽유와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진압작전을 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시민이고 시민이 시위대인 상황으로 똘똘 뭉쳐있는 몽유와의 시위를 막기에는 쉽지 않았다. 

 시위도중 사람이 죽어 나가도 다음 날 어김없이 오토바이들과 함께 시위대가 나타난다. 판다는 신출귀몰하며 명연설을 하고 치고 빠진다. 이 상황이 ‘몽유와’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양곤의 다른 기자들과 취재 화상 미팅을 하다가 판다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기자들은 ”판다랑 이야기했다고?“하며 놀라는 것이 아닌가? 판다는 이미 미얀마의 영웅이라고, 국부 아웅산 장군에 버금가는 미얀마 국민적 사랑을 받는 리더라는 것이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급하게 몽유와에 연락해 판다 측근들에게 판다에 대해 물었다. 

 그의 본명은 웨이 모 나잉. 미얀마 군부가 국영방송을 통해 지명 수배한 주요 수배자 20인에 드는 거물이었던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면 진작에 알았을 텐데, 원격 취재의 한계였다. 화상이나  메시지로만 서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취재의 취약점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제법 나와 친해진 판다 측근들은 판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판다는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무슬림이기 때문에 더 큰 고초를 겪을것이라고 했다. 그뒤로 나는 아침마다 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Are you okay?“ ”Is Panda okay?“로 시작했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그들의 운명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인 판다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판다와의 인터뷰는 딱히 인터뷰라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이슈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뤄졌다. 그가 저항하는 이유, 몽유와 시위 상황, 미얀마 사태에 대한 전망 등등. 그는 정말 똑똑했고 눈빛이 살아 있었다. 몽유와 저항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겨우 이십대 중반 청년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게 쿠데타는 미리 준비된 현실도 아니었을 텐데 이런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난 것은 미얀마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민주항쟁’의 끝은 어떻게 됩니까?
 미얀마 사람들에게도 광주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광주 영상을 본 사람들도 많다. 

 ‘몽유와’의 청년들이 내게 물었다. 광주민주화 항쟁 결말이 어떻게 되었냐고. 마치 자신들의 미래를 점쳐보듯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후 대한민국은 적어도 군인이 총들고 청와대 쳐들어가서 대통령을 감금하고 정권 찬탈하지 못합니다. 군인이 길거리에서 군사 작전을 하고 시민들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때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광주 민주화 항쟁 때부터 싸워서 오늘날 법으로 그렇게 만들었어요.“라고, 그들은 이런 이야기가 영화 같다고 했다. 

 몽유와 파업위원회 청년들이나 판다와의 대화는 2021년 서울에 있는 나를 타임머신 타고 1980년 광주로 데리고 갔다. 그때의 광주시민을 실시간 만나서 대화하는 것 같다. 빛바랜 사진의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을 입은 그 시절 광주 청년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매일 그들이 안전한지 확인하며 위성 지도로 몽유와를 보며 어느 시장 어느 거리의 지명을 익히고 매일 시위 상황을 전해 들었다. 

 어떤 날은 군인들에게 오토바이 2대를 빼앗겨서 억울해하고, 어떤 날은 파업 위원회 소속 활동가 2명이 체포되어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시위대 방어용 모래 주머니를 쌓고 ’폴리스‘ 대신 ’피플‘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방패를 만든 그들의 앳띈 모습의 사진을 받아보며 나도 시위대가 된 착각이 들었다.

 그러던 4월 15일, 오후, 급박한 메시지가 떴다. ’판다가 금방 잡혀갔다‘ 머리가 하얘지는 듯했다. 파업위원회와 판다 측근에게 연락해보니 판다가 잡혀가던 순간의 영상을 보내왔다. 사제차로 위장한 군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시위에 나가는 판다를 들이 받았다. 목격자들은 그가 군인들에 의해 구타당하며 머리에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체포당시 부상이 아주 심각해보였다. 판다 체포 뉴스는 순식간에 마얀마 사람들의 SNS를 타고 퍼져갔다. 판다의 체포를 걱정하는 글로 넘쳐났다. 판다가 누군지 모르던 외신들까지 그 분위기에 놀라 크게 보도했다. 판다는 민간인임에도 군 사령부로 끌려갔다. 군사 법정에 설 예정이고 경찰관 살해혐의를 받고 있어 최고 사형이 언도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당장 내가  체포되어도 더 많은 ‘판다’들이 있다!!
 그러나 판다는 체포 전에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판다의 의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판다는 일부러 해외 언론과 인터뷰해서 최소한 군부가 자신을 죽이지는 못하게 일종의 보험 같은 준비를 한 것 같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1988년 항쟁이후 가택 연금을 당할지언정 군부가 죽이지는 못한 이유가 아웅산 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해외에서 유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판다의 체포는 ‘몽유와’에도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가 체포된 날 ‘몽유와’에서 시위가 열리지 않을 줄 알았다. 워낙 큰 사건이 터졌기에 사람들이 숨거나 자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몽유와 사람들’이었다. 체포 직후에도 시민들은 모여서 시위를 시작했다. 단 하루도 저항을 멈출 수 없다는 ‘몽유와’ 시민들의 의지였다. 

 판다 체포 후 나와 그들의 대화는 ‘오늘이 판다 체포 후 O 일째’.. 라고 부른다. 고문의 흔적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체포 다음날 공개되고 다들 힘들어했다. 판다의 뒤를 이어 판웨이 표(26)가 파업위원회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도 판다와 똑같았다. 자기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판다가 없는 시위 현장에 그가 나서서 연설을 하고 시위를 이끌고 있다. 그는 ”더 많은 판다들이 ‘몽유와’에 있다. 판다와 나만 잡아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시위 때마다 이야기한다. 이 두려움을 모르는 청년들 앞에서 나는 그 날의 광주와 조국을 군부의 손에서 지켜내려던 젊은 청년들을 본다. 

 판다가 체포되기 전, 나는 그에게 ‘진짜 시위 때마다 체포가 무섭지 않냐?’고 질문했다. 그는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미얀마의 시민과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당신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김영미 분쟁전문PD,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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