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
방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공정성을 확보해야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찼던 땅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희망된 공간으로 바꾸어 달라는 온 국민의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드높습니다. 이중 사회적 소통의 근간이 되는 미디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민주적 가치의 실천과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과제입니다. 분열과 불통의 잔재와 작별하고 절차와 실천적 정의가 실현되는 건강한 공론의 장을 건설하는 민주정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그 실천을 위해 무엇보다도 새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낼 수 있는 방송정책을 펼쳐주시길 기대합니다. 최근 뉴미디어의 기술적 산업적 성장이 민주주의를 위한 공론의 장 수준 그 자체로 직역되는 경향이 우려됩니다. 많은 미디어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정보통신의 발전 자체가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고 최선의 의사결정 구조로 이어지는 숙의 민주주의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십 여 년 동안 정보통신의 기술 자체가 더 좋은 의사결정구조를 담보하지 못하며, 뉴스와 미디어의 산업적 셈법이 정보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공통된 가치를 배양하는 데 실패하는 광경을 수없이 목도했습니다.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카스텔즈(Castells)가 지적하듯,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툴로 각광받는 뉴미디어 네트워크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이너서클 상에서의 소통을 강화해 서로 다른 의견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역으로 발생하며, 좋은 의견조차 양으로 밀어버려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전락시키는 등 적지 않은 구조적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을 ‘우리’와 ‘그들’로 나뉘는 반목의 정치가 내면화된 미디어의 편향성과 타자화(Othering), 그리고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강압적 하향식 커뮤니케이션(Top-down commuication)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소통의 구조를 봉건화할 때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이미 뼈아프게 경험했습니다. 분열된 소통구조가 편향된 믿음을 양산해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분열의 댓글들이 사회를 찢어놓으며, 심층성을 잃은 저널리즘이 한 사회를 얼마나 절망시키는가를 우리는 날마다 지켜봤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제일 급선무는 방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특히 미디어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다양한 가치와 의견이 넘쳐나는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공영방송은 공동체의 공통된 가치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국가적 자산입니다. 소통이 자유로운 민주적 공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이는 결코 시장중심적 사고나 기술결정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과 결합한 시대착오적 일방적 구조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방송의 담론 안에 시장의 언어들만 존재할 때, 혹은 민주적 소통구조를 지탱하는 정책과 규제가 부재하거나 오용될 때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였는지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합니다.
특히 영상은 현대사회 커뮤니케이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지는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통의 정체성(identity)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많은 영상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커뮤니케이션은 정보의 흐름만큼이나 정서의 흐름도 중요해지고 있으며, 영상이 제공하는 사회적 상상력이 사회적 소속감의 수준과 밀접하고,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와 해석의 툴로 작용하는 경계화작업(Boundary work)의 초석이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도영상의 사회적 가치가 올바르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부가 올바른 영상문화의 토대를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방송제작의 대중화가 방송 민주화의 수준으로 교환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권력에 영향을 받는 방송은 그 자체로 사회적 해악이 될 것입니다. 부당하게 고통 받은 많은 언론인들이 원상회복을 바랍니다. 아울러 자유로운 취재환경의 보장과 함께 영상의 전문적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교육, 그리고 영상취재의 현장과 운용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요청 드립니다. 현재 초상권 논의 혹은 미디어 관련 전문 교육에서부터 현장의 운용과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실무적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영상기자들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제도적, 실무적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공영방송이 커버하는 영상과 그 아카이브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텍스트성을 넘어 우리사회의 집단기억과 정체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영상의 공공성의 문제나 미디어 윤리 등 영상 제작전반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는 셀 수 없는 영상이 교류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역설적으로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영상인력 채용과 노동의 질적 문제, 부서의 축소나 폐지 등 구조의 문제에서부터, 취재현장에서 공권력의 과도한 통제나 편향적 공보지상주의 같은 실무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적자산으로서의 보도영상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나라 같은 나라’라는 슬로건은 적어도 ‘방송 같은 방송’을 보는 날 완성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MBC 김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