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울진 산불 현장을 취재하며
거대한 산불의 화마 앞에 사람도 동물도 모두 아비규환
3월 4일, 동료 취재기자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울진에 산불이 났다는 소방본부 문자를 받았다. 곧이어 전화가 울리자마자 우리는 본능적으로 밥을 신속히 입에 밀어 넣었고, 전화를 끊자마자 회사로 출발했다. 회사가 있는 포항에서 울진 산불 현장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기 때문에 카메라와 LTE 장비, 조명, 안전모 등을 차에 실고 바삐 출발했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와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불이 붙어있었다. 앞집, 옆집, 뒷산 할 것 없이 모두 활활 타고 있었고, 길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은 흰색 털이 모두 누렇게 그을려 누렁이가 되어있었다. 현실감이 들지 않아 마치 재난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새까맣게 타서 무너져 내린 집 앞에서 우시는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감히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람도 동물도 현장은 모두 아비규환이었다.
현장에서 통신이 터지는 곳을 찾는 것도 문제였다. 이동 중에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회사로 보내려는데 통신 신호가 안 잡히는 거다. 알고 보니 전선이 불에 타 일부 지역의 통신망이 마비가 된 것이었다. 나와 취재기자는 동시에 패닉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5시 뉴스 생중계 연결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장 차를 타고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통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열악한 취재현장, 인력난 속 주120시간 근무를 꽉 채운 열악한 재해취재 근무상황
취재차량을 운전하는 오디오맨은 엑셀을 세게 밟았고 앞에 앉은 취재기자는 휴대폰으로 통신 신호가 터지는지 확인했다. 뒤에 앉은 나는 MNG송출장비를 켜서 제발 신호가 들어오길 기도하며 거의 절규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방송 5분 전에 겨우 통신 신호가 터지는 현장에 자리를 잡았고 생중계 연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저녁 뉴스 연결 전 리포트 제작을 위해 급히 자리를 옮겼다. 주민 임시 대피소로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현장을 스케치해서 LTE 장비로 회사에 영상을 보냈다. 이후 다시 화재 현장으로 돌아와 타오르는 불길 앞에 기자를 세워두고 현장 연결을 했다. 그렇게 새벽 특보까지 마감하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출발했다. 도로로 침범하는 불길을 뚫고 가면서 이 불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우리는 아침 뉴스 연결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현장으로 갔다.
영상기자들은 산불 취재기간 동안 적게는 주 80시간에서 많게는 주 120시간까지 근무를 했다. 인력난으로 인해 한 취재기자는 주 130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다. 오디오맨들 또한 하루 종일 취재에 동행하고 왕복 다섯 시간 거리를 운전해야했다. 또 다른 사고가 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더딘 피해복구, 모자란 피해주민 지원금
- 주민들 삶, 정상화 될 때까지 현장기자로서 꾸준한 관심 전하려
우려처럼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산불은 열흘간 이어졌고 서울 면적 1/3의 산림이 불탔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 진압된 뒤에도 취재는 이어졌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 송이 밭이 전부 탄 농민들, 불에 타 죽은 동물들 등 현장을 다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았다.
산불이 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피해복구는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전파된 주택들에 대한 지원금이 최대 9천만 원으로 책정되었지만 이재민들이 새 집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임시 조립 주택에 입주하지 못한 50여 세대의 주민들은 모텔이나 마을 회관을 전전하고 있다.
산림이 복구되고 주민들의 삶이 돌아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만큼 영상기자로서 울진 현장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꾸준히 전하겠다.
포항MBC / 박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