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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메라기자 남편을 데리고 산다

딩동~

 문을 열었다. 옷이며 신발에 푸른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남편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일 있었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어보지만 사실 난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날 평택시위를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내 남편 이름 세 글자를 확인했으니까.

 내가 방송 카메라를 메고 사는 남편을 데리고 산 지 벌써 6년이다. 방송 카메라를 안고 사는 애인으로 함께 한 시간까지 합하면 10년에서 조금 빠지는 세월이다.

 내 남편은 ‘아스팔트 노동자’다. 그렇다. ‘아스팔트 노동자’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남들은 방송국 카메라기자라고 하면 폼 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곁에서 지켜볼 때에는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시청자의 눈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보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단다. 그렇게 영상 취재라는 것을 하다 보니 때론 시위대 속에서 페인트를 맞기도, 하고 경찰의 방패에 옷이 찢기기도 한다. 또 취재원들에게 떠밀리기도 하고, 험악한 상황에 말려들기도 한다.

 그런 남편의 삶이 녹아있어서인지 텔레비전 뉴스는 내게 특별하다. 남편이 만들어낸 그림 너머엔 남편의 눈이 있다. 또 남편의 팍팍한 삶이 묻어있다. 가끔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의 어깨가 한없이 힘겨워 보이는 날은 그날의 뉴스도 힘겹고, 그의 어깨가 환한 날은 그날의 뉴스도 환하다. 어쩌면 남편은 카메라 렌즈 너머의 삶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는 죽은 농민의 주검과, 또 하루는 내동댕이쳐진 포장마차 아줌마의 설움과, 또 하루는 정치인들의 가식적 웃음과도 말이다.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타 방송사 뉴스에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밤새며 취재원을 기다리며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우리 남편의 모습을... 그 모습을 보고 그간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말하길, 카메라렌즈에는 힘이 있단다. 그리고 그 힘을 알기에 조금 더 겸손하려고 하고, 조금 더 진실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대학시절 학교 앞 시위 현장이 담아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폭력시위가 될 수도 있고 평화시위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나?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카메라기자 마누라로 6년을 살다보니 이젠 조금 엇나간 화이트, 어색한 구도엔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전문가가  다 되었다며 비행기를 태우지만, 그것은 내가 전문가가 돼서가 아니라 남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증거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 그리고 그가 그의 관심이 집중된 것에 나도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오늘은 네 살 난 딸아이가 뉴스를 보다 말고, “엄마, 저 아저씨들 왜 싸워? 싸우면 안 돼!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한다. 우리 딸 말대로 ‘사람들이 싸우지 않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남편도 ‘행복한 뉴스’들로 말미암아 기쁘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남편 또 어딜 다녀왔나?’ 나는 오늘도 드라마를 보다가 뉴스로 채널을 돌린다.

조수진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권혁용 기자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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