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2023년 11월 29일 새벽 6시, 해경 부두에 정박한 3,000t급 대형 함정의 모습은 조금은 겁먹었던 나에게 든든한 위로를 주었다. 비로소 안심하며 생애 처음으로 EEZ(Exclusive economic zone, 배타적경제수역)까지 해경 함정을 타고 취재를 출발했다.
목포에서 EEZ에 도착하기까진 쉬지 않고 약 7시간의 시간이 소요됐다. 안에서 내부 시설물도 파악하고, 취재기자와 어떤 방식으로 취재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큰 고민은 불법 조업 어선의 유무였다. 불법 조업 어선이 발견될 때까지 단속을 하겠다는 해경의 의지는 대단했지만, 정해진 일정 동안 실제 발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론은 모든 단속을 전부 취재하는 것.
이후 7시간이 지나 EEZ에 도착했단 방송이 나왔다. ENG를 들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바다 위로 꽤 많은 취재를 다녀봤지만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온 사방을 둘러봐도 작은 섬이나 육지는 보이지 않고 끝없는 바다만 보였다. 무언가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공포가 다가왔다. 쉬지 않고 시작된 불법 조업 어선의 단속. 3,000t급의 대형 함정을 뒤로하고 10명이 탈 수 있는 단속정 위에 ENG와 몸을 실었다. 흔들림 없는 편안한 에이O 침대에서 혹한기 야전 침낭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파도의 높이는 내 키를 넘었고 우리는 가감 없이 그 파도를 느껴야만 했다. 장비에는 쉼 없이 물이 쏟아져 흠뻑 젖었다. 핸드헬드의 파인더 안쪽은 파도보다 더 거세게 흔들렸다. 중국 어선에 탑승하는 일은 담력 테스트였다. 단속정의 뱃머리를 어선 옆에 부딪히면 줄을 거는 것도 없이 순식간에 올라타야 했다. 흔들리는 단속정과 다른 높낮이의 어선,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밑바닥, 빠지면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한 장비, 이 모든 것들이 내 발을 더 얼어붙게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올라 본 배 위의 모습은 정말 더러웠고 좁았다. 배를 건조하는 스타일이 다른 건지 관리가 안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어선과 중국의 어선은 많이 달랐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생선과 잡기들 사이로 다시 맡고 싶지 않은 악취가 풍겨왔다. 좁은 어선 위에서 10명의 해경과 10명의 중국 선원들 사이에서 취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앵글이 한정적이었고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았다.
4번의 단속이 끝나고 저녁 10시, 함정 안의 4인 숙소의 침대에 노곤한 몸을 눕혔다. 드디어 오늘 하루가 끝났구나. 스르르 감기는 눈에 정신도 블랙아웃하려는 순간, 쾅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뭐지? 암초에 부딪혔나? 아니었다. 파도가 함정의 옆면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거기에 더해 1분에 한번씩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높은 파도를 넘는 배가 하늘로 날았다가 바다에 착지하는 느낌을 소리와 내 감각으로 느꼈다.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웃기게도 멀미가 나를 잠 들 수 있게 해줬다. 시간마다 파도 소리에 깨고, 술에 취한 것 같은 정신으로 잠에서 깨는 이 느낌이 이번 취재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귀밑이든 코밑이든 어디에 붙이든 멀미약은 소용없었다. 그냥 술에 취한 것 같은 정신과 걸음걸이를 취재를 해야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내야 했다.
취재가 끝나고 육지에 올랐을 때, 글로만 읽었던 육지 멀미를 체험했다. 다시는 풍랑주의보에 바다를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취재를 겪으며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ENG가 아닌 컴팩트한 장비를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내 육체를 너무 맹신했고, ENG의 조작성이 컴팩트함 보다 더 큰 효율을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더 많은 앵글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은 경험하기 어려운 취재지만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장비를 챙겨가면 좋을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읽은 뒤 바다에 취재 나가는 동료분들이 계시다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다. 바다에서의 취재는 안전보다 중요한 요소는 없다. 항상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란다.
KBS광주 이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