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기형적 풀단 구성, 반드시 사라져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동안 풀(pool)이라는 명목아래 국회나 국방부, 스포츠 등 몇몇 출입처에서 기형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왔던 해외출장의 풀단구성이 급기야 카메라기자는 가지 않고 취재기자만 출장을 가기에 까지 이르렀다.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희생된 故윤장호하사의 시신을 국내로 운구하기위해 그 다음날 윤하사의 부모님들이 쿠웨이트로 가게 되었다. 문제는 국방부에서 비행기좌석의 여건상 방송을 위해 4자리만 허가한 것이다. 당연히 이 사건이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에서 시신 국내 운구라는 중요한 현장을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4사가 현장에 취재진을 급파했다는 것을 내세우기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취재기자의 얼굴을 방송에 내기위해서 현장의 영상을 취재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을 포기한 것이다. 방송뉴스는 신문뉴스가 아니다. 방송뉴스는 영상취재와 취재기자의 오디오로 이루어지는 멀티미디어뉴스이다. 이런 당연한 상식을 포기하고 영상은 현지크루나 국군방송에게 얻으면 되고 취재기자의 스탠드업만 방송에 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더 이상 언론이기를 포기한 행동이다.
방송국들은 얄팍한 자사이기주의 때문에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침해했다. 그날 방송된 화면을 보면 윤하사 부모님의 인터뷰나 윤하사 부모님들이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은 어느 방송뉴스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이것들은 분명히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고 뉴스화면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화면들임에 틀림없었다. 이러한 현장을 취재하지 못함으로써 애초의 취재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국군방송은 언론사가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의 영상취재에 있어 언론사가 아닌 국군홍보기관의 영상취재에 의존한다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것은 뉴스영상은 아무나 찍어도 된다는 생각이 그 근저에 있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마다 차별화된 뉴스를 내세우면서도 영상을 통해 차별화를 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영상은 단지 뉴스에서 기자의 오디오를 뒷받침하는 그림에 불과하다는 80년대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UCC가 인터넷업계나 방송계에서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 왜 UCC가 지금 그토록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보는가? 그것은 신선하고 차별화된 한 컷의 영상이야말로 지금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진정으로 차별화되고 시청자를 위한 취재를 원한다면 더 이상 기형적인 풀제도는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번사안처럼 어쩔 수 없이 모든 방송사가 취재진을 파견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코리안 풀이라는 공정하고 명확한 기준에 의해서 풀단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이란 바로 시청자를 위해서 어떻게 풀단을 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남북장관급회담의 경우가 그렇다. 남북장관급회담이 북한에서 열릴 경우 방송의 취재인원이 4명으로 제한된다. 이 경우 1명의 취재기자와 3명의 카메라기자가 국내의 방송을 대표해서 풀단을 구성한다. 3명이나 되는 카메라기자가 풀단에 들어가는 것은 최소한 그 정도의 인원이라야만 회담을 온전히 영상 취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청자를 위한 풀단 구성인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기존에 관행처럼 이루어져 온 기형적인 풀단구성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