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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NAB Show에 다녀와서 Ⅱ>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을 겪고 나서

첫날!

너무도 힘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 게 없으니 아무것도 안보이고 답답하고 스스로 한심한 생각만 들었다. 내용을 모르니 재미도 없고, 컨벤션 센터는 너무 넓어 다리만 아프고… 괜히 Sony랑 Panasonic만 들어가서는 이것 저것 사진 찍고 자료 찾고… 사실 그 부스에 있는 것들은 서울에서도 자주 보는 것들이고 그래서 대부분 너무 익숙한 것들이었다. 굳이 라스베가스까지 가서 봐야 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없으니 그렇게 조금이라도 익숙한 곳으로 숨어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나 보다. 바보 같은 날이었다. 같이 다닌 선배는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 지, 난 회사 이름도 처음 듣는데 그 선배는 각 회사의 특징 및 대표 브랜드까지 다 꿰고 있다. 자괴감, 피로감, 열등감 3감의 하루였다.

다음날.

일단 마음을 비웠다.

부담도 지우고, 놀 생각도 지우고, 그냥 느끼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들 그냥 궁금해 보이는 것들에 다가가기로 했다. 아직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무선으로 찍은 영상이 바로 전송되는 무선 카메라, 필터 없이 색 온도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라이트, 현장에서 취재한 데이터를 다양한 포맷으로 현장에서 저장하는 소형 필드 레코더, 헬리콥터를 닮은 플라잉 캠과 로보트와 카메라를 접목한 Cambotics, Ultra 3D HD TV 등 많은 것들이 하나 둘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워질수록 사람들은 친절해졌다.  

“Hi… I’m a Korean video journalist… Wow… this is great! Could you explain more detail…” 안 되는 영어로 천천히 관심을 보이면 반응은 하나같다. “Sure, come on… this is…” 하면서 이리 저리 보여주면서 아주 신이 난다. 그 사람도 나도 모두 말이다.  

난 라스베가스 NAB에 견학 온 대한민국 방송국에서 일하는 6년 차 카메라기자다. 내가 무슨 IPTV의 미래나 HD 방송의 Total Solution을 이해하고 방송 기술의 첨병으로 한국 방송 발전에 큰 몫을 하려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소박하고 성실하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이렇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준 협회 회원들에게 내가 느낀 것을 함께 나누면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씩 컨벤션 센터를 돌아다니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번 컨벤션의 주제는 “Where content comes to life” 였다.

“컨텐츠가 삶이 되는 곳”이라..

아마도 이번 컨벤션에서 선보인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 같다. 즉 우리 삶에 아주 가깝고 편리하게 이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미래 기술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발전한 기술을 삶과 접목하느냐가 화두였던 것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Day Light 필터가 필요 없이 색 온도가 조절되는 LED 라이트나 지금은 너무도 큰 라이트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소형 배터리… 혹은 가벼운 스테디 캠이나 미니 크레인 등등 우리가 취재 현장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을 상상하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문제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평가하는 소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연수는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처음 협회에서 라스베가스 연수를 가라는 말에 얼마나 들뜨고 기뻤던지 하지만 회사에서는 과거와 달리 놀지 말고 공부하는 연수를 해보라고 부담을 주기 시작 했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그 커다란 컨벤션 홀에서 혼자 버려진 듯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현장에 문을 두드리면서 새로운 세상의 문이 조금은 열린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연수를 다녀와 1주일 동안 무슨 고시공부 하는 학생처럼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 연수 보고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가나다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버리고 솔직하게 공부를 했다. 선배들에게 지겹도록 전화해서 묻고 또 묻고 1080p와 1080i에서 p는 뭐고 i는 뭔지 에서부터 자료에 나온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을 찾아 가면서 그렇게 1주일을 공부하고 연수 보고 발표를 했다. 물론 발표 내용은 연수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수준에 그쳤지만 그 준비 기간만큼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카메라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쓰고 있는 장비, 또 내가 앞으로 쓸 장비와 그 장비의 메커니즘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에 대한 반성. 장비 전시회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어려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에 오히려 귀 기울여주는 곳이라는 인식의 변화. 부끄러움에서 시작했지만 구석으로 숨어들어가지 않고 한번 도전해 본 2주일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거품 없이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 바로 그것이다.

정상보 기자 just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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