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기고>
대기업 소유규제 완화와 공영방송의 위기
시장자유주의 방송정책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이명박 정부의 방송정책은 전통적인 공익적·공공적 가치보다 ‘시장자유주의’(market liberalism)를 중시하고 있다. 시장자유주의 방송정책의 목적은 지상파(공영방송) 방송제도 개편, 미디어 겸영규제 완화, 진입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경쟁의 활성화로 국가경제의 활력을 부여하고 글로벌 미디어그룹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는 대기업 소유규제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언론노조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2차의 공청회가 무산되었다. 지난 10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 회의에서 방송법 시행령안을 의결하려 하였으나 국정감사에서 국회 의견수렴 및 공청회를 거치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의결을 보류하였다.
IPTV법 시행령 제정에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방송의 대기업(집단) 소유규제는 신문방송 겸영 금지규정과 같은 취지로 만들어졌다. 여론독과점 기능을 방지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방송의 공익성, 공정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이익에 기울어 여론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송법 시행령 제4조 제1항에서 지상파방송사업과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채널 사업에 대해서는 상호출자제한제한기업집단중 자산총액이 3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참여(겸영 및 주식 지분 소유 금지)가 금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제정된 IPTV법 시행령은 자산총액 10억 이상인 대기업집단이 IPTV의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PP를 소유할 수 없도록 완화한 바 있다. 완화 근거는 지난 2월 구 방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고되고 부처 협의를 거쳐 방송통신위원회에 이관된 방송법 시행령안이었다. 사회적 논의과정도 거치지 않은 방송법 시행령안을 근거로 IPTV법 시행령이 제정된 희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7월에 방송법 시행령안이 입법예고되었다. 지상파방송, 보도·종합편성 채널사용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기업의 기준을 자산총액 기준 3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에서 10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으로 완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개정사유는 상위 30개 정도의 기업을 포함할 수 있도록 ‘자산총액 3조원’으로 정하였지만 최근 경제규모 확대로 자산총액 3조원 이상인 기업이 늘어나면서 방송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진입규제를 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여론형성과 관련된 보도를 포함한 방송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여론독점과 집중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대규모 기업집단’ 기준의 잔재인 ‘자산총액 30위’라는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단순히 방송의 공익성이나 공공성은 고려 없이 산업적 시각만이 강조된 접근이다.
대기업 소유규제 완화는 공영방송의 위기로
대기업(집단)의 지상파방송, 보도·종합편성 채널사업 진입 규제 완화는 여러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첫째, 대기업집단이 광고주로서 미디어의 편집권과 편성권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자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 더해서 소유규제까지 완화된다면 대기업의 복합적인 미디어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다.
둘째, 대기업 규제완화는 방송산업을 활성화 시킨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지만 그 타당성은 의심스럽다.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성장 정체 상태인 우리 방송시장의 규모가 확대될 수 있을지, 광고시장과 시청자 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글로벌 미디어기업을 육성할 수 있을 만큼 국내 시장, 해외 동일언어권시장, 문화콘텐츠를 갖고 있는지부터 검토되어야 한다. 대기업의 진입확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한류의 성장과 침체과정에서 있어 지상파 공영방송의 역할과 대기업의 역할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해답이 될 것이다.
셋째, 자산총액 10조 이내에 들어가는 대기업(집단)중에는 MPP이자 MSP인 방송사업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일반기업보다 규제완화의 폭이 넓은 배경이 이들 유료방송 시장 진출 대기업집단을 위한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유료시장의 과점사업자들이 지상파방송, 보도·종합편성 채널사업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국내 유무료 방송시장을 석권하는 거대 미디어기업의 등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론다양성(관점의 다양성)과 직결되는 보도 영역을 대기업이 장악하면서 민주주의에 위협적인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정부가 대기업집단 규제완화에 이어 일간신문 과점사업자들에게도 기회균등을 이유로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점신문과 대기업집단이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견제하는 측면도 있지만 짝을 맞춰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다.
다섯째, 지상파 공영방송 제도를 위협할 것이다. 사실상 ‘규제 없는 지상파방송’인 종합편성PP가 위협적일 것이다. 종편 PP는 전국을 단일 방송권역으로 하고 있고 시청가구의 85%가 가입되어 있는 유료방송의 의무전송 채널이다. 중간광고나 직접 광고영업도 가능하며 각종 규제도 약하다. 지상파방송과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규제가 거의 없는 것이다. 집중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 진입하면 종편 PP의 출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는 방송시장을 대기업중심으로 개편하고 지상파 공영방송을 약화시킬 것이다.
결국, 대기업 소유규제 완화는 보수적 과점신문을 위한 신문방송 겸영 허용의 전단계이며, 통제가 용이한 대기업 소유 방송을 통한 지상파 공영방송의 견제라는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정치적 맥락은 방송광고제도 개편과 방송시장개방을 경쟁 가열과 함께 공영방송의 위상을 크게 위협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시장자유주의가 권위주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단계적으로 접근하겠지만 대기업 소유규제와 신문방송 겸영 규제가 지향하는 최종적 목표가 지상파방송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영방송(K2와 MBC)은 민영화를 거세게 요구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용성 /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