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99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좌충우돌 ‘교수’ 적응기
<베테랑 영상기자에서 새내기교수로>



좌충우돌 교수 적응기2.jpg


 때는 바야흐로 다니던 회사의 명퇴 신청이 막 마감됐고 최악의 대학 신입생 충원율을 기록하게 될 2021년 봄, 나는 이직을 했다. 

장면 #1
 “학교 홍보차 나왔습니다. 3학년 주임 선생님과는 통화했습니다.” “이건 학교 홍보 책자고요.” / “저기다 놓고 가요.” 경비원은 말을 끊었다. “먹고 사는 게 참 힘들어.” 그의 혼잣말이 등에 꽂혀 따라왔다. 얼마 전 다친 발목은 더욱 욱신거렸다. ‘그렇구나. 학교를 홍보할 때 절룩거리니 슬프구나.’ 

장면 #2
 국립대 교수인 지인과 통화. “채교수, 임용 축하해! (중략)이 바닥에 들어왔으니 하는 말인데…. 대한민국 대부분의 교수 다 비정규직이야. 근데 쉽게 자르지는 못해.” 서로 측은했지만, 안위(安危)의 바람도 불었다. “그래? 고마워” (중략) “근데 이런 얘기 왜 미리 안 해줬어?” / “야~ 이런 말 외부인에게 어떻게 해. 교수 모양(가오) 떨어지게.” “앞으로 무시 안 당하려면 자네 몸집부터 키워!” 
‘그렇구나. 교수는 다 자란 어른도 더 커져야 하는구나.’ 

장면 #3 
 야간 실습을 마친 학생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후각만으로 메뉴를 전광석화처럼 찾아냈다. 다행히 무한리필집이다. 식당은 코로나 시대 첫 대통령 순방 소식에 TV 모니터가 시끌시끌하다. 몇 달 전까지 청와대 출입 기자였고 그 기자단의 간사였던 나는 지금 교수가 되어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짐승처럼 굶주린 가여운 자취생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 프로의 실력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주고 있다. 

“애들아! 맛이 어떠냐?” / “맛이 최곱니다!” 
‘그렇구나. 폭탄주는 교수도 춤추게 하는구나.’

 교수로 앞으로의 멋진 꿈이나 포부 정도를 기대했을 선후배들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신파극’과 같은 마중의 글로 시작해 송구스럽다. 하지만 다른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동안 밖에서 무엇을 했든 이곳에 온 이상 나는 막내 초보 교수니까.
올해 2월 28일 OBS에서 퇴직했고 3월 1일 세종시에 있는 ‘한국영상대’ 촬영조명과 전임교수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전임교수이긴 하지만 조교수 신분이고 산학협력단 소속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영상대’는 전임교수 사이에 큰 차별을 두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다. 지난 학기에 나는 3학년들에는 ‘보도 다큐멘터리’를, 4학년들엔 ‘ENG 심화 과정’을 가르쳤다. 

 누구의 말처럼 사랑이나 시(詩)나 음악처럼 ‘과정’이 ‘목적’인 것들이 있다. 한 학기 동안 내 ‘연구실’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결국 아는 것이라고는 ‘나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나’’라는 허위의 ‘나‘를 발견하는 성찰의 ‘실험실’이 되었다. 글 쓰다 보니 진짜 교수가 돼야 할 분들께 염치없이 미안해진다.

 아무튼 반년의 몸앓이 끝에 나는 나의 시간을 살기로 다짐하게 됐다. 학교에 처음 가기로 정했을 때의 초심은 ‘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묵묵히 해야 할 것들을 찾다 보면 오히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림이 되든 안 되든 역사의 현장에서 늘 목도되는 영상 기자들의 ‘뻗치기’처럼 말이다.




채종윤 / 한국영상대학교 교수(前OBS영상기자)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대담> 카메라기자존, 어떻게 할 것인가? 2008.02.16 7275
<대담> 풀 해체 이후 카메라기자의 일과 영상 2006.11.22 7265
뉴스타파 권석재 기자를 만나다 file 2012.02.22 7148
<대담> 올림픽 취재, 이대로 좋은가? 2008.09.26 6950
KBS 전한옥 국장 - 방송인생을 돌아보며 file 2013.12.16 6302
전쟁을 싫어한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전 - 전시기획자 조대연 교수 인터뷰 file 2013.10.07 6273
<릴레이 인터뷰> 포항MBC 최병철 기자 2009.07.14 6115
한국방송대상 카메라기자상 김용모 기자를 만나다 file 2013.10.02 6055
42회 한국방송대상 수상자 이종혁 인터뷰 file 2015.11.21 5748
영예상 수상자 최기홍 전 KBS디지털뉴스혁신팀장 인터뷰 file 2018.03.19 2400
“영상에 스토리 붙이고 내레이션도…취재기자와의 경계 흐려질 것” [인터뷰]심석태 SBS 뉴미디어국장 file 2017.05.23 2315
‘은퇴와 정년 없는 세상이 올까?’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file 2017.05.23 2147
제 31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상 대상 수상자 OBS 기경호 기자 인터뷰 file 2018.03.19 1792
영상 부문 콘트롤타워 재건... '기본'으로 돌아가 공정하게 보여줄 것 1 file 2018.01.11 1759
<특별 인터뷰> 4⋅27 남북정상회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 file 2018.05.04 1481
“영어로 된 ‘진짜 뉴스’를 원한다면 아리랑TV를 보세요" file 2020.05.11 1310
“취재부터 자막 구성까지 영상기자가 전담… <현장 36.5>는 계속돼야 한다” file 2019.03.11 1310
좌충우돌 ‘교수’ 적응기 file 2021.09.24 995
“현장 의견과 규범의 변화를 조화롭게 담아낸 개정판이 계속 나오길” file 2020.01.10 886
2021 굿뉴스메이커상 수상자 손정환 공군소장 (공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인터뷰 file 2022.03.08 549
[인터뷰] 최병한 부산MBC 사장…“이임식 때 박수 받는 선배 되겠다” file 2023.04.26 54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