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15 00:12

엘리베이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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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설 때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옆집 아이가 유치원 가방을 메고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참이다.

그들을 보고 나는 자연스럽게 ‘안녕’이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남자 유치원생의 머리카락은 무스를 발라 아침햇살에 머리가 더욱 빤작였다.

아래위의 옷매무새는 단정하고 발랄한 느낌을 받았다.

등에는 노란색의 유치원 가방이 앙증맞게 달려있다.

 

남자 유치원생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작별인사를 나누자마자 쏜살같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간다.

 

엄마 손을 붙들고 있는 여동생은 혼자서 대견스럽게 유치원을 가는 오빠를 부러운 듯이 지켜보고 있다.

 

나는 남자 유치원아이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유치원 가는 길이니?” 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대답대신 나한테 잔뜩 경계심을 품은 눈초리를 하고서

단지 고개만 까닥일 뿐이다.

 

나는 아이가 혹시 내가 한말을 잘 알아듣질 못해서 그러나싶어 재차 물었다.

“어느 유치원 다니니?”

 

역시 아이는 고개만 까닥일 뿐이다.

나는 순간 아이가 벙어리가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조금 전 이 아이는 엄마와 동생에게 활기찬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던 것을 생각하자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는 우진, 예슬 양 사건, 그리고 일산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속에서 어린이 폭행사건이 뉴스 화면처럼 흘러지나간다.

 

최근 학교와 학원 등에서는 빈발하는 각종 어린이 성 폭력사건을 대비하기위해

낯선 사람이 질문을 하면 대꾸를 하지 말라고 교육을 시킨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세대에는 어른이 질문을 하면 반드시 또박또박한 말로서 분명히 자기의사를 표현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고 한데 섞여 살아가야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까지 우리는 주변의 학우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친구를 통해서 배우고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자기의 인격을 형성해간다.

 

그런데 요즈음 자라는 세대들을 보면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둘째고

컴퓨터 게임과 오락실이란 자기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 속에 빠져 자신이 어디를 향해가는 것조차 모르고 진지하게 자기의 미래에 대해 알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자신의 성에 갇힌 청소년이 일으킨 사건이 다름 아닌 작년 미국 서부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발생한 조승희 학생 총기 사건이다.

 

그런 청소년들은 주변의 충고나 조언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한다.

그들은 귀가 있을지언정 들을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기모순에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그들은 항상 타인에 대해 적대의 칼날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아이들의 성장기는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화선지와 같다.

 

주위의 모든 사물과 행동, 언어 등이 그들의 자양분이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큰 밑거름으로 남게 된다.

 

나는 이제야 그 아이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속에서 내가 충고를 하였다면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학교에서의 가르침과 나의 충고라는 상반된 논리에 아이의 머릿속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낯선 사람이 질문하면 대꾸를 하지 말라고 했을 터인데 나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런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내렸을 때는 아이의 순간 정신적 안정을 위해 약간의 도움은 되었겠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보물섬>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1865년)은 자식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였다고 한다.

 

“인생의 비밀은 단 한 가지, 네가 세상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도 너를 대한다는 것이다.

네가 세상을 향해 웃으면 세상은 더욱 활짝 웃을 것이요,

네가 찡그리면 세상은 더욱 찌푸릴 것이다” 라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지난 3월에 입주를 하였다.

벌써 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옆집과 서너 번 복도에서 마주친 적 밖에 없다.

나도 이제 좀 더 옆집과 마음의 빗장을 열고 더 친근하게 다가서야겠다.

 

2008년 7월 14일 일산드림센터에서..

문화방송 보도국 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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