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7.02 17:02

나의 금연 이야기

조회 수 6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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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아니, 끊었다고 하는게 정확한 설명이겠죠. 작년부터 불어닥친 금연 열풍에 담배 끊으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어렵게 담배를 끊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담배를 끊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제 몸 상태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게 했던 한가지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1999년 8월로 기억되는데 그 당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 질 때였습니다. 그 날 제 임무는 북측 가족이 롯데월드 민속관을 관람하는 것을 취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속관 안은 방송 4사(KBS, MBC, SBS, YTN)가 Pool로 취재하기 때문에 저는 북측 가족이 도착해서 민속관으로 들어가는 장면만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여유있게 출발한다고 출발했는데 차가 막혀서 도착 예정 시간에 빠듯하게 롯데월드에 도착했습니다. 호텔 현관 쪽에 차를 세우고 민속관을 찾아가려고 카메라를 들고 내리는데 저쪽에서 북측 가족을 태운 버스 서너대가 우리를 지나쳐 100M 전방에 차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미쳐 민속관 위치를 파악할 틈이 없었던 나는 버스가 선 곳이 입구인가 보다 싶어서 다급한 마음에 카메라를 매고 그쪽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버스가 있는 곳에 닿았다 싶었는데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우리 차로 가서 장비챙기고 차로 따라잡으려면 늦을 것 같아서 저는 오디오맨과 함께 버스를 쫓아 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가면 민속관 입구가 나오겠지 하는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버스는 멈출 기미를 안보이고 롯데월드와 호텔 건물을 크게 한바퀴 도는게 아닙니까? 계속해서 버스를 뒤쫓았습니다.

더운 여름, 땀은 비오듯 흐르고, 무거운 카메라에 어깨, 허리도 아프고 숨은 정말 목젖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는게 정말 내 몸이 내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서너대의 버스는 무정하게도 건물을 거의 한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고 나와 오디오맨은 거의 400M 정도를 뛰다가, 걷다가, 기다가 하면서 뒤쫓아 갔습니다.

노란 하늘을 보며 건물 코너를 도니 민속관 입구로 보이는 곳에 버스는 서있고 가족들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아슬아슬하게 북측 가족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촬영하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숨은 가쁘고 머리도 어지럽고, 하늘은 빙글빙글 도는게 구토 증상까지 느꼈습니다. 이거 정말 큰일났다.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구나. 이 정도 뛰고 이 모양이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평소에 건강에 대해서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겪게되니 정말 심각하게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입사 3년차에 몸이 망가지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내 몸을 다시 만들자. 첫 번째로 한 일이 담배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재떨이, 담배, 라이터 등을 없애고 아침엔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마다 냉수 한 컵과 함께 그때 악몽같았던 상황을 떠올리며 흡연 욕구를 사그라뜨렸습니다.

한 2주정도 지나니 잔 기침과 함께 묽은 가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몸 속에 있던 니코틴이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한달 반 정도 지나니까 몸이 가벼워지면서 아침에 일어나기도 수월해지고 달리기도 한결 나아졌습니다. 점점 달리는 거리도 늘리고, 회사 체육관에서 근력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3년이 지났는데 아직 담배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취재원들 만나면 취재원들이 담배를 먼저 권하고, 취재 장소 옮길 때마다 취재기자, 오디오맨, 운전기사와 습관적으로 담배 한 가치씩 피우기도 했는데 이제는 담배 권하는 취재원도 거의 없고, 금연에 동참하는 동료들도 많아져서 담배 끊기위한 환경은 훨씬 좋아졌습니다. 더구나 이주일씨 암투병과 KBS News에서 몇 달간 펼친 금연 캠페인 때문인지 저희 영상취재부 기자들도 절반 넘게 담배를 끊었습니다. 사무실에서 금연은 물론이고 복도에서도 담배피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담배를 많이 피우시는 분은 휴일에 가까운 산에 한번 올라 시간을 정하고 등산해 보는 것은 어떨지요. 담배로 인해 몸이 상당히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져서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자녀 출산, 회사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 결과, 좋지 않은 몸상태 등 조그마한 계기라도 확대 해석해서 자의적으로 '결정적 계기'를 만드는 것이 담배를 끊는 지름길이라 감히 조언드립니다.

많이들어서 지겹겠지만 이말은 진리입니다.

'금연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입니다.'

* P. S. : 나중에 알고 보니 취재 당시 제가 뛰던 반대 방향으로 80M 정도만 가면 바로 민속관 입구가 나오더군요. 금연 뿐 아니라 사전 취재의 중요성까지도 일깨워준 잊지 못할 취재였습니다.

자료출처: 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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