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1 15:25

관성을 경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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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을 경계할 때

 

 

(사진1)관성을 경계할 때.jpg

▲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장 취재진 풍경 <사진/권준용>

 

 

 

 

 금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밤사이 뉴스를 검색했다. 실종된 박원순 시장이 돌아왔는지, 혹은 어디에선가 시신이 발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7월 10일 금요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나는 검은색 계열 옷을 찾아 입고 서둘러 출근했다, 물론 취재를 위해서였다. 좁은 장례식장 입구부터 취재진과 중계진으로 가득했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었다. 조문객을 상대로 취재하는 기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조문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뉴스 재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번 성추행 피소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유력 정치인, 유명인이 조문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취재진이 달라붙었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 그들 중 일부는 인터뷰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기자들이 그 말을 곧 이듣는가? 무리를 이룬 일부 취재진은 병원 밖까지 쫓아가면서 질문했다. 타사와 취재 경쟁이 붙고 의도하지 않은 몸싸움도 일어났다. 쳐다보고 있기 힘든 장면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다. 이런 소란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취재진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피해자를 지지한다.... 그 말 이외에 어떤 말을 기대한 걸까? 장례식장에서 시민들이 다 보는 가운데 조문객을 쫓아다니는 풍경은 볼썽사나웠다. 그런가 하면 언론에 크게 다뤄진 해프닝도 있었다. 이해찬 대표가 조문 왔을 때, 한 기자가 이번 사건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물은 것이다. 이 대표는 예의가 아니라며 발끈했고, 이 장면을 대부분의 언론사가 주요 뉴스로 다뤘다. 취재가 오히려 새로운 이슈를 만드는 모양새였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성추행 피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박 전 시장의 재임 기간 공을 기억하며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 이다. ‘빈소 취재’는 이 둘 모두와 무관해 보인다. 죽음의 공간에서 취재란 ‘최소한’으로 이뤄져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날 언론 보도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보도는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무슨 말은 했는지 등이 주를 이뤘다. 소란스럽기만 할 뿐 정작 진상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서울시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는 지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 깊이가 없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인권위원회가 직권 조사단을 구성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서울시의 방조 혐의 등이 철저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한 시민이 취재진을 향해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구석에 있던 일부 취재진이 웃고 떠들던 것을 박 전 시장 지지자가 본 모양이었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스스로 그런 현장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반성도 했다. 관성을 경계해야 할 때다.

 

 

 

 

권준용 / KBS (사진) 권준용 증명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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