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1 15:28

익숙함,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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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설렘

 

 

(사진 1) 익숙함과 설레2.jpg

▲보신각 앞에서 취재하는 필자

 

 

 2021년, 조용한 새해가 밝았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해가 바뀌는 그 순간, 보신각 제야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지난 1953년부터 한 차례 중단 없이 계속 이어져 왔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여파로 69년 만에 중단되었다. 예년 같았으면 사람에 치여 발 디딜 틈 없었을 텐데 집합 금지 조치로 보신각 주변이 썰렁하다. 한참 일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전화다.

 

 ‘새해구나....’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새해라는 설렘도 전혀 없이 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 매년 마지막 날 밤엔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보신각 타종 행사를 지켜봤다. 그 시각 또 한 살 먹는다는 설렘이 있었다. 곧 바뀌게 될 학년과 새롭게 만날 친구들을 생각하며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곤 했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데 익숙함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설렘이 사라져 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때의 설렘은 과연 지금도 남아있는가?

 

 카메라는 익숙하지만 취재 현장은 여전히 낯설다 ? 언제나 그렇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현장은 저마다 전부 다른 조건이다. 다양한 취재 환경에서, 내가 촬영한 영상이 편집 과정을 거쳐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생각해보면 설렘이 일어난다.

 

 이 직업을 갖게된 후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여러 설렘의 순간들이 있다. 

 

 지난해 6월, 남북관계에서 긴장의 끈이 가장 팽팽했던 순간 연평도로 향했을 때. 남쪽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 옹진반도의 해안포문이 열린 장면을 포착해야 했다. 첫 출장의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자 위험한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여든아홉의 내 할머니는 괜히 기자를 해서 위험한 곳을 찾아다닌다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에게 연평도는 설레는 기회의 땅이었다.

 

 처음으로 다뤄본 망원렌즈로 연평 앞바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북한 땅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설랬는지 모른다. 이 직업을 갖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해무가 짙은 탓에 몇 날을 기다려 북한의 해안 포문을 카메라에 포착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순간. 그때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익숙함과 매너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일것이다. 비록 해가 바뀌는 것이 설레지 않은 나이이지만 그저 매일 주어지는 보통의 하루가 나는 설레고 또 설렌다.

 

 

김현우/ MBN (사진) MBN 김현우 증명사진.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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