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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스트레스 - 핵안보 정상회의 HB(주관방송)취재
내가 촬영한 영상이 전 세계 뉴스에 방송된다

  HB(Host Broadcaster)는 행사를 개최하는 특정 국가의 주요 방송국이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방송사들의 혼잡과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방송 제작 업무를 대행해서 처리해 주는 제도이다. 국가적인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HB제도가 활용되는데, 이번 핵안보 정상회의 취재는 KBS가 HB를 담당했다. 나는 정상회의장을 취재하는 HB팀의 막내로서 이번에 정상회의 취재라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HB의 취재방식은 기존에 우리가 행하던 취재방식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KBS의 촬영기자가 아니라 행사를 위해 별도로 고용된 ‘국적불명의 촬영기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든 나라의 정상들이 내 조국의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촬영에 임해야 한다. 영상을 제공 받는 나라입장에서는 그 나라의 정상을 중심으로 뉴스가 나갈 것이기 때문에 각 나라의 정상들을 공평하게 촬영해야 한다. 이 때문에 HB팀들은 다른 방송사보다 먼저 행사장에 들어가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물론 의장국을 포함한 주요국 정상들의 비중이 더 큰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내가 맡은 섹터에서 촬영할 수 있는 정상들의 원샷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취재환경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정상회의가 시작 될 때까지 회의장 내의 보좌진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정상들 역시 자신들의 외교를 펼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은 카메라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카메라 앞을 가리기 일쑤였다. 이들을 피해서 순식간에 원하는 포인트를 잡아내어 촬영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는 장난 섞인 제스쳐를 잡아낸 것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서 어렵게 촬영한 영상이다.
  회의가 시작 된다는 장내 멘트가 나오고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하면, 그때부터 뉴스에 사용할 수 있는 정돈된 영상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때 HB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신속, 정확하게 각 나라의 정상들을 일일이 촬영해야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사이즈를 담아내는 것 또한 기본이다. 숨 가쁘게 촬영을 하다보면 어느새 경호팀 사람들이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이제 나가주시죠~’하며 압박을 가한다. 늘 그렇지만 나갈 때는 혹시나 놓친 장면은 없는지, 실수한건 없는지 돌이켜보며 마지못해 아쉬운 발걸음을 떼게 된다.
  이렇게 VIP들이 모이는 행사를 취재하면 경호팀이나 기획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의 취재 때도 사전협의에 문제가 생겨서 취재를 방해받은 일이 있었다. 사전에 기획단과의 회의에서는 각국 전속카메라맨들이 취재를 다 마치고 나가면 HB에게 따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협의가 돼있었는데, 갑자기 경호팀에서 다 나가라고 압박을 가하는 바람에 같이 취재하던 한 선배가 떠밀려서 쫓겨나기도 했다. 사전에 협의가 돼있던 사항인데, 경호팀에서 착각하고 HB촬영기자들까지 나가라고 한 것이다. 물론 강력하게 항의하여 나머지 HB팀들은 마지막까지 취재를 할 수 있었지만 사전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대목이다.
  내가 촬영한 영상이 전 세계 뉴스에 방송된다는 책임감은 국내 뉴스를 취재 할 때와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러한 책임과 무게감이라면 촬영기자로서 한번쯤은 느껴볼 가치가 있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내가 촬영한 영상이 전 세계에 방송된다고?! 촬영기자의 책임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재섭 / KBS 보도영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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