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5 00:11

러시아 월드컵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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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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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향하여


 어린 시절, 러시아는 공산주의 붉은 장막에 가려 있었다. 또 동시에 소비에트 깃발의 낫과 망치,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얼굴 등 섬뜩하고 무시무 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러시 아 영토 안에 진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 던 시절이었다. 20세기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 는 체제 대결, 냉전시대는 1980년대 말 고르바초 프에 의해 막을 내렸다. 그런 러시아로 향했다.

북미정상회담에 나라 안팎의 이목이 쏠려 러시아 월드컵은 시종일관 무관심 속에 놓여 있었다.

활주 로를 이륙해 서해와 베이징 쪽으로 방향을 튼 비행 기는 몽골 울란바토르, 바이칼 호수 서안 상공을 날 아 비행했다. 작은 비행기 창문을 열 때마다 눈부신 태양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기내 TV 화면상의 서 울은 점점 암흑으로 덮여가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광활한 땅은 여전히 환했다. 나는 어둠으로부터 쫓 기며 서쪽의 태양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듯했다.

약 9시간 만에 러시아 서쪽 모스크바에 내렸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SVO)은 약간 흐리고 쌀쌀 했다.

첫날, 숙소는 공항 근처‘ 홀리데인 인’이었다.


 늦은 밤이 되자 호텔 방 창밖으로 묽은 천연색의 노을이 만개했다.

백야다. 침엽수 교목들의 숲 너머 로 광활한 하늘 전체가 묽은 주황색 루즈로 쓱쓱 칠한 것 같다. 공항 주변의 고독하고 황량한 대지 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겔렌지크의 흑해


 스웨덴 대표팀이 묵게 될 호텔은 겔렌지크에 있었 다. 나는 스웨덴 팔로우여서 모스크바에서 겔렌지 크로 날아갔다.

겔렌지크는 모스크바로부터 남쪽 으로 약 12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작은 휴양지다.

드문드문 풀이 나 있는 황량한 활주로에 비행 기가 내려앉자 기내에 있는 러시아인 승객들이 안 도감에 젖은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낯선 장면이었 다“.

구소련 개방 초기에 비행기 사고가 몇 차례 있 어서 무사히 착륙하면 이렇게 박수를 칩니다. 지금 은 많이 줄긴 했는데 여전하네요.” 가이드가 멋쩍 은 표정을 지으며 설명한다.


 다음날 오후 2시쯤, 우리 일행이 스웨덴 대표팀 이 묵을 켐펜스키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전통의상을 입은 공연단 과 호텔 관계자들이 가장 먼저 온 한국 취재진과 함께 로비에 있었다.

외신 기자들은 한 명도 보이 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가 스웨덴 팀이 공항을 출 발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직후 FIFA 관계자라는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붉은색의 피파 단복(소 매 없는 폴로 티셔츠)을 입고 무전기를 들고 있었 는데 전체적으로 경험이 없고 어리숙해 보였다.


 짧은 머리에 약간 겁먹은 듯한 큰 두 눈이 풍기는 무 언가 즉흥적인 느낌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이 와 도 잘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 만 오산이었다.

사내는 우리에게 다가와 취재 신청 명단을 보여주며‘ 당신들은 이 신청자 명단 안에 없으므로 나가야 해’라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물론 우리는 항의했다.

그러나 어설퍼 보였던 그의 얼굴이 이내 단호해지더니 곧바로 호텔의 건장한 시큐리티 요원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분위기 가 험악해졌다.

결국 한국 취재진(신문이든 방송이 든)은 전부 쫓겨나다시피 호텔 로비를 나와야 했다.

그날 저녁 7시부터 스웨덴 대표팀의 공개훈련이 예정돼 있었다.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은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있었다.


 스타디움 입구 에는 구경하려는 현지인들이 제법 긴 줄을 서 있었다.

선수들은 스타디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1시간 훈련을 마칠 때까지 객석을 완전히 채운 1,000 여 명 현지인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흑해 연안 에 외떨어진 휴양지 마을 주민들에게는 스웨덴 대 표팀 공개 훈련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큰 이벤트 가 된 모양이었다. 훈련 후 저녁 8시경 스웨덴 감독과 주장 선수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방송카메라는 한국과 외신(대 부분 스웨덴일 것으로 추측)이 각각 절반씩이었다.

뒤쪽에 방송카메라를 위해 마련된 작은 단상은 얇 은 나무판자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바닥이 불안정 하고 흔들렸다. 누군가 한 발짝만 걸어도 카메라가 흔들렸다. 초반 몇 분 정도만 영어 질의응답이 오 갔을 뿐 그 이후부터는 스웨덴어 잔치였다. 스웨덴 기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었지 만 아무래도 그들 자국의 취재 열기가 우리들보단 뜨거워 보였다.


 송출은 대부분 미디어센터에서 했다.(러시아는 영 토가 워낙 넓어 호텔 내 전송 속도는 제각각이다.) 미디어센터의 전송 속도는 나쁘지 않았다.

출발 전 부터 웹하드가 아닌 구글 드라이브를 이용하기로 정리가 돼 있었다. 최대한 필요한 부분만 작게 잘라 작은 덩어리로 나눠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밤 11시가 되도록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이들은 전부 한국 기자들이었다. 어딜 가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한국인들의 근성(?)이란. 다음 날 역 시도 미디어센터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대부분 한 국 기자들이었다. 나 역시 다섯 번째 이내로 미디 어센터에 도착했다.


 미디어센터 내에는 (스웨덴 측 에서 마련한) 음식들이 비교적 풍족했다. 연어 샌 드위치와 소고기 샌드위치, 조각 케이크, 캡슐커 피, 탄산수와 탄산음료 등이 항시 준비돼 있었다.

특히 커피가 나를 흡족하게 했다. 나는 미디어센터 에 머물며 하루에 적어도 6개 이상의 캡슐 커피를 마시고 점심도 샌드위치로 때웠지만 만족스러웠다.

니즈니로 이동하기 전날 밤, 포르투갈과 스페인 의 경기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내 호텔 방에 모여 송출을 걸어놓고(속도가 엄청 느렸다) TV로 경기 를 봤다. 나의 동기는 기사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고 나 역시 영상클립 전송을 살펴보며 짐을 챙겼다. 그 와중에 호날두가 해트트릭을 해 포르투갈은 스 페인과 비겼다.


 잠들기 직전 동기와 나는 호텔 방 아래 펼쳐진 황 홀한 빛의 흑해 물을 바라보았다. 바닷물은 말이 없이 잔잔했다.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요란한 음악들 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호텔 발코니로 모여들었다.

해변 백사장과 앙상한 나무들이 있는 인도 위로 사 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내 옆에서 발코니 난 간에 팔꿈치를 대고 서 있는 가이드가 말한다.“ 겔 렌지크는 소치, 상트와 함께 러시아 3대 여행지에 속해요. 러시아 사람들은 평소에 바다를 구경하기 힘들기 때문에 겔렌지크를 많이 찾는 거예요.”


스웨덴과의 1차전, 니즈니


 비행기는 오후 5시경 니즈니 공항에 내렸다. 모 스크바도, 니즈니도 산 없이 드넓은 평원 지대였 다. 니즈니는 한때 구소련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중공업이 번성했던 지역. 건물들은 대부분 5층 미만 높이에 낡고 오래된 것들이었다. 구도심 에는 아직도 전기선을 이용한 트램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구소련 시절 자동차인‘ 라다’도 시내 여기 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궁 성벽 뒤쪽 아래로 볼가강이 장대하게 흐르고 그 뒤로 아득한 평원이 펼쳐져 있다. 성벽이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니즈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언덕 위에서 볼가강변에 위치한 노브고르드 경기장도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우리와 스웨덴의 1차전이 열리기로 돼 있는 곳이다. 드디어 스웨덴과 1차전 당일. 예상은 했지만 FIFA 측의 통제와 관리는 삼엄하고 촘촘했다. 촬 영은 경기장 상단 플랫폼, 피치 위 골대 뒤쪽, 이렇 게 두 군데만 허용됐다. 미리 수령한 비표는 플랫 폼용과 피치용, 믹스드존 용이 모두 구분돼 있었 다.

피치 위에는 카메라기자 한 명만 허용될 뿐 그 이외의 사람은 즉각 내보냈다.


 우리 가이드도 곧바 로 쫓겨났다. 전반, 후반 내내 담당자가 그렇게 계 속 검문하고 확인했다.

주파수 혼선 방지 때문에 와이어리스도 미리 허가받지 않은 경우는 쓸 수 없 었다. 경기 당일, 미디어센터 출입구부터 와이어리 스 장비를 통제했다.

우리의 경우, 혹시 모를 상황 을 대비해 가지고는 들어갔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의 취재 방식도 과거에서 벗어나 공동 의 취재 규칙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기 2시간 전 리허설 때 미리 가면 양 팀의 진영 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는 한국팀 이 어느 쪽인지 확인했고 경기 시작 전에 한국이 공격하는 방향(스웨덴 골대)에 미리 가 있을 수 있었다.

하프타임 때는 반대편 골대로 이동했다.

경기 후 믹스드존 구역도 역시 검색이 삼엄했다.

비표가 위조인지 등을 치밀하게 확인하고 소지한 비표는 주최 측이 회수해 감으로써 하나의 비표를 두세 명의 기자들이 돌려쓰지 못하도록 했다.

믹스 드존에서는 지상파 기자들끼리 두 그룹으로 나눠, 동시에 두 명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짰다.


상트


 2차전인 멕시코전이 열리기 며칠 전, 대표팀의 베 이스캠프인 상트로 이동했다.

니즈니에는 소나기 가 내렸다. 러시아에 온 뒤 처음 내리는 비였다.

상트의 우리 대표팀 훈련 캠프는 스웨덴 캠프보 다 훨씬 더 검문이 까다로웠다.

긴 줄을 섰고 검색 대를 통과하기까지 1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게다가 미디어센터 시설도, 인터넷 시설도 열악했다. (스웨 덴 측이 제공했던 간식도 없었다.)

기자회견장으로 마련된 작은 가건물이 미디어센터로 같이 활용됐다.

테이블 없이 의자뿐인 회견장 여기저기에 취재진이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껴안고 작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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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자들, 어디에든 가장 많다.


 취재 열기가 가장 높은 것은 언제나 한국 취재진 이었다. 스웨덴 첫 공개 훈련 때는 스웨덴 취재진, 외신들, 카메라 취재진 등이 많이 보였고 현장(훈 련장)에서의 생방송 시도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가 다였다.

심지어 스웨덴 독일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 장에는 기자들이 가득 찼지만, 카메라는 4대뿐이 었는데 1대는 HBO였고 나머지 두 대가 한국이었다. (나머지 한 군데는 모르겠다.)


 종합해 보면 우리는 전략이나 강약이 없다. 현재 우리의 뉴스 방식은 지나치게 영상이 전체를 커버 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방식은 카메라기자들의 비효율적인 노동이 투입되어야 한다.


 노동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노동은 효율적이어야 한다. 난사되 고 광범위하게 접근하는 방식에서 타깃형, 목표추 구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종합 편집형 리포트가 지 속되는 한 카메라기자들의 과도한 노동 부담은 덜 어질 방법이 없을 것이다. 온 마이크 촬영도 지나 치게 많다. 경기장 내에서 온 마이크를 잡으려고 보안과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것은 우리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볼 문제다.


분투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6월 28일 대한민국 월드컵의 여정은 끝이 났다. 우리 대표팀은 독일과 경기해서 이겼으나 3위에 그쳐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렇지만 나는 대표 팀의 험난한 도전을 바로 곁에서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악조건 속에서 무언가 이뤄내고자 분투하 는 선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전율을 느끼게 해주 는 것이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삶 속 에서 단지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으리라. 인간에게는 승리하고 쟁취하고 가장 맨 꼭대기에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축구도 그 렇고 인간사도 그렇고 또 우리 언론도 그렇다.  취재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이 고 싶다. 우리 언론도 지난 10년 동안 실패와 역경 을 경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포기나 체념이 언론을 지배하지는 못하도록 지금도 우리는 분투하고 있 다.

어쩌면 16강 도전에 실패한 선수들이나 또 우 리 언론이나 모두 실패를 맛보며 어딘가를 향해 계 속해서 전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대한민국 축 구의 미래에, 또 우리 한국 언론의 미래에도 선전을 기원한다.


김정은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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