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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취재기>
우당탕탕 Jakarta
 
MBC 구본원4.jpg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는 필자

 

 

인도네시안 타임
 
 도착하자마자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아시안게임 델리게이트 레인으로 입국심사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끝났지만, 위탁 수하물을 찾을 때부터 ‘인도네시아 타임’은 적용됐다. 30년 전, 코리안 타임처럼 인도네시아에선 어떤 일이든 기다려야 하는 이른바 인도네시안 타임이란 게 있다고 했다.
 
수하물 벨트 앞에서만 1시간 10여 분. 공항을 나서니 교통정체가 이어졌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번엔 예약돼 있어야 할 부킹 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다. 현지로 넘겨준 부킹 리스트를 호텔에서 잘못 옮겨 놔둔 것. 이튿날, 축구 예선전 취재를 위해 반둥시로 이동했다. 갈 때는 3시간 남짓이었지만, 돌아올 땐 7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인도네시안 타임이 몸으로 스며드는데 닷새 정도가 걸렸다. 열흘이 지난 이젠 웬만큼 기다리는 것, 차가 밀리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기다림의 짜증은 어느 정도 느긋함으로 변해있었다.
 
 
경기장에서
 
 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4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 때보다 4종목 늘어난 40개 종목에 45개국 11,300명의 선수들이 참여한다. 자원봉사자가 15,000여 명, 취재 인원도 6,500여 명으로 집계됐다.
 
규모가 커지고 종목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경기장에서의 취재 여건은 열악해진다. 경기장 내 ENG포지션과 Mixed zone에서 각국 취재진들의 자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취재진과 중계 카메라, 중계석 등을 관리하는 베뉴 매니저들의 신경도 따라 예민해진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미 이 매니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영상기자들과 술래잡기와 실랑이하는 모습을 많이 봤던 터, 자카르타에 도착하기 전부터 취재 여건에 관해서는 긴장을 바짝 한 채로 각 종목 경기장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인도네시안 타임과 같은 허술함이 어느 정도 적용되는 듯했다. 포지션과 촬영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올림픽에 비하면 매니저들도 융통성을 갖고 취재진들을 대하는 듯하다. 덕분에 중계로 잡히지 않는 그림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고, 뉴스 제작에도 상당 부분 활용할 수 있었다. 더이상 베뉴 매니저들과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메달의 색깔은?
 
 종합경기 취재에는 늘 딜레마가 따라온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대한민국 선수들이 선전하고 많은 메달을 따길 바라지만, 우리 선수들이 잘 할수록 우리가 할 일은 늘어난다. 잘 하면 좋은데 바쁘고 피곤해진다. 물론, 즐거운 피로다. (정말 그렇습니다. 부장님!) 축구, 야구 등을 제외하면 믹스트존에서 우리 선수들을 만나는 경우는 보통 4강 경기나 결승 경기 이후, 동메달을 땄거나, 금, 은메달을 땄을 때. 그동안 고생하고 땀 흘렸을 걸 생각하면 선수들을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하지만, 이 친구들 자꾸만 금메달 못 따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먹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선수들 인터뷰가 끝나면 우리는 잘했어요! 고생했어요! 하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는듯해 더 안 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색깔에 상관없이 메달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과 달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아쉬움에 죄송하다고까지 말하는 우리 선수들 모습에 쓸쓸한 기분이 자꾸만 든다.
 
아시안게임도 중반에 접어들었고, 이제 열흘 정도의 일정이 남았다. 취재 중간중간 KBS, SBS, YTN 등의 선후배들과 마주쳐보면 다들 아직은 여유와 체력이 남아 보여 다행스럽다. 메달의 색깔과 상관 없이, 시청률과 열독률에 상관없이,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과 임원단, 우리를 포함한 모든 취재진들이 아무 부상이나 사고 없이 잘 귀국하면 이번 아시안게임은 다 성공적으로 봐도 되지 않겠나 싶다.
 
구본원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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