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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KakaoTalk_20190227_163839203.jpg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데스크가 내게 취재 일정을 부여하며 던진 한 마디, “내일 2분 분량 정도로 변기를 찍는대… OOO 취재기자 하고 상의해봐”, “네? 변기 촬영만으로’ 2분 리포트를요?” 뒤샹의 <샘>이 한국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 시각을 한 시간여 앞둔 아침의 텅 빈 전시실에서, 변기와 대자적으로 대면한 나. 나와 변기 사이에는 직육면체의 강화유리 한 겹이 단단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부담. 영상 담당 기자로서 ‘변기의 다양한 면을 부각해 보여줘야 한다. 남들은 보지 못 하는 이 레디메이드 도기의 특질을 영상으로 포착해내’… 기는커녕, 당장 몇 컷이나 뽑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긴,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예술로 ‘명명한 그 자체’가 예술적 행위의 완성인데, 정작 변기라는 질료 안에 뭐 대단한 특질이 깃들어 있으려나 싶다. 심지어 1917년의 ‘원작’ 변기는 분실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뒤샹이 새롭게 서명한 17점의 추가 복제품 중 하나에 불과하지 않는가?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8번째 복제품조차 물경 170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아무튼 촬영은 이어진다. 오스모 짐벌을 이용한 달리 샷, 휴대용 조명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변기의 상하좌우를 샅샅이 훑었다. 과연 변기 앞에서 카메라가 이토록 경건해져도 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친애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라는 자전적 소설 일부분이 기억났다. 작가가 젊은 시절 <엑스 리브리스>라는 프랑스의 예술전문 출 판사에서 일하던 때의 일화다.

 

 마르셀 뒤샹이 1947년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전시회를 위해 디자인한 카탈로그-표지 에 고무 가슴이 나오는 그 유명한 카탈로그, <만지시오>라는 말과 함께 브래지어 속에 대는 고무 컵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에 대해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그 카탈로그 는 여러 겹의 투명한 랩으로 겹겹이 싸여 있고, 그것은 다시 두꺼운 갈색 종이에 싸여 있고, 그것은 다시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다.

 

 이렇게 되면 일손을 잠시 멈추고,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만지시오.> 뒤샹의 이 명령문은 프랑스 전역에 나붙어 있는 표지판- <손 대지 마시오>-을 패러디한 익살이 분명하다. 그는 이 경고를 거꾸로 뒤집어, 자기가 만 든 제품을 만지라고 요구한 것이다. …(중략)… 그것을 떠받들지 말라고, 그것을 진지하 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 시시한 활동을 숭배하지 말라고 뒤샹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고는 27년 뒤에 다시 한번 거꾸로 뒤집혀, 드러 난 젖가슴이 랩과 종이와 비닐로 겹겹이 가려진 것이다. 만질 수 있던 것이 도로 만질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낱 장난에 지나지 않았던 뒤샹의 예술은 이제 너무도 진지한 상품으로 바뀌었고, 다시 한번 돈이 최후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뒤샹이 벌인 기념비적 변기 전시 스캔들은 이제 도그마가 되었다. 뒤샹은 비평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한 바 있다.“ -역설적입니다. 거의 정신분열에 가깝습니다. 나는 무척 지적인 활동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더욱더 유물론적 사고로 모든 것들을‘ 탈신 격 화’합니다.”(책 「마르셀 뒤샹」, 2009. 시공아트) 하지만, 혁명의 재귀적 성격이랄까… 신을 파괴했던 뒤샹의 무기, 변기는 혁명을 거쳐 이제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작년에 영국의 예술가 뱅크시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감행한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며 기시감이 인다. 104만 파운드에 낙찰된 자신의 작품, ‘풍선과 소녀’의 액자에 미리 파쇄기를 장치하여 경매장의 대중들 앞에서 분쇄해버린 것. 자본주의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을 담은 그 행위는 도발적이었지만 낙찰자는 찢어진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게 예상 했고, 전문가들은 뱅크시의 작품 값이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 오스터가 쓴 바 그대로, 다시 한번 돈이 최후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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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예술적 가치에 대한 판결은 전복시킬 수 있어도, 그 가치를 지체 없이 숫자로 치환해내 는 자본의 영악함에는 자비가 없다. ‘만지시오’가 다시 ‘손대지 마시오’로 재차 바뀌는 아이러니. 그렇다 해도 이러한 아이러니들은 매력적이다. 끝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또 도발하는 것. 뻔해지지 않는 것. 모든 걸 집어삼키는 자본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더라도 계속 질문을 던지고 타파하는 것. 이른 아침의 전시실에서 홀로 변기의 신을 영접하며 느낀 감상이다. ‘끈임 없이 실패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지선호 / KBS    KakaoTalk_20190227_16193090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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