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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기자와 “취재지원선진화”


거점(據點) 기능 상실, 접근권 제약에 문제  


 이 칼럼을 준비하면서 정부가 제안한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한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5층에 있는 교육부 기자실을 방문했다. 마치 70년대 독서실을 연상시키는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수북하게 쌓인 서류 속에서 기자들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방문자가 보기에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기자실도 “취재 선진화 방안”에 따라 곧 사라질 전망이다.  앞으로 새롭게 단장한 통합 브리핑 실에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은 통합적으로 북새통 취재를 해야 될 처지에 놓인 것 같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신속한 기동성이 요구되는 카메라기자에 대한 배려는 “취재 선진화 방안” 어느 곳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부처에 설치되어 있었던 37곳의 기자실이 폐쇄되면서 카메라기자 입장에서 큰 타격은 해당 지역을 근거로 한 광범위한 취재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거점(post)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통합브리핑룸 조치의 일환으로 “편히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기자실이 폐쇄되고 서울 2곳과 지방 1곳으로 통폐합됨에 따라, 카메라기자는 방송국 본사에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사건이 발생하면 한국의 혹독한 교통지옥을 뚫고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해야만 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취재환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카메라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정부의 통폐합 조치와 접근권 제한은 단순한 취재 시스템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접근권이 제약받는 문제로 귀착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부 기자실이 폐쇄된다고 할 때 그간 카메라 기자는 국방부 정례 브리핑 취재도 했지만 수시로 용산지역의 사건 현장 취재를 맡아서 필요할 때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용산지역의 시급한 현장 영상취재는 자칫하면 해당관청이나 일반인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거친 화면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같은 정부의 언론통제를 위한 무리수 속에서 현대 한국 언론사의 대특종 가운데 하나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면서 취재원과 기자의 상시적인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1987년 1월 서울 검찰청 화장실,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검찰 관계자와 우연히 만나 아래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검찰관계자: “헛 참! 대학생이라지~ 참 안됐어, 단지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는데...”


신기자: “아 그래요, 참 안되었죠 그런데 어느 대학 학생이래요?”


검찰관계자: “아마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이라지,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이와 같이 이어진 지극히 일상적인 화장실 대화를 단서로 신기자는 남영전철역 근처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 분실 509호에서 순진한 청년을 향해 여러 명의 경관들이 무자비한 물고문을 자행하였고 이로 인해 박종철 군은 물고문에 의한 쇼크사를 당하였다는 “우연한” 대특종을 낚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노무현 정부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여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우연한 만남을 차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조치를 감행한 이유가 “국민들에게 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언론에게는 보다 효율적인 취재지원을 하며, 정부는 보다 투명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시대적 요청이다.”라고 변명하고 있다.  카메라 기자 입장에서 신속한 사건대응을 위해서 요소요소 취재 거점이 필요한 시점에서 정부가 주장하는 “기관마다 분산 운영 중인 브리핑 실을 통합, 취재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보화 환경에 맞는 취재 지원서비스를 강화하는 시스템”이라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같은 활발한 브리핑 제도와 정보 청구권이 보장되지 않고 공무원들의 폐쇄성이 큰 우리 현실에서 기자들의 취재접근만 봉쇄할 경우 언론의 ‘감시견(Watch Dog)’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바로 정부 정책의 불투명성으로 연결돼 밀실주의와 부패 등 부정적 관료문화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대는 네트워크 사회이다. 갈수록 현장 접근이 점차 어려워지는 취재환경 속에서 모든 것이 통폐합 되면 그만큼 접근권이 힘들어지고 궁극적으로 알권리의 침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정보접근의 제한과 알권리의 침해는 비단 우리나라 언론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미국 피닉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30차 전 세계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 연례 총회에서도 미국정부의 교묘한 정보접근 제한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취재 시스템이 선진화 되어 있고 언론자유가 상당히 보장된 미국에서조차 정보접근에 관한 문제와 알권리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고 논란이 되는 이슈인 것만은 틀림없다.


 정부는 취재 선진화를 핑계로 모든 시스템을 통조림화 하려고 한다.  취재의 기본은 현장성이다. 현장성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카메라기자는 정제되고 계획된 깡통에 담긴 화면 보다, 생생하게 현장이 살아 있는 화면을 시청자에게 제공함으로 보도의 진실성과 신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카메라기자의 핵심적인 의무를 다른 주체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연말이 다가오면 한해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하듯, 몇 개월 안남은 정권 말기를 맞아 기자실 통폐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귀중한 국세를 낭비하는 노무현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민규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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