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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카메라기자마당>

변화를 통해 얻은 수확

 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 한다더라” 등의 순수한 마음을 실은 이야기보따리들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즐거운 화제였고, 학교 앞 슈퍼의 불량식품만큼이나 달콤한 추억들을 만들어냈다. 어렸을 때 나는 그런 이야기보따리들을 누구보다 먼저 친구들에게 풀어놓고 싶은 욕심이 유난히 많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친구들에게 새로운 소식, 재밌는 이야기들을 전하며 함께 웃었던 추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교내 방송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학교의 여러 소식을 전교생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 운동장은 아침조회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일사 분란한 움직임 속에 아이들은 각 학년별로 줄을 맞춰 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그런 부산함도 없이, 교실 맨 앞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스피커를 통해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어야 했다. 실내 훈시가 있는 날이면 마이크 하나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운동장 조회보다 준비가 간단했음에도, 왠지 그날이면 유난히 더 긴장이 되었다. 교장선생님의 음성이 잘 나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조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초조하게 서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방송부로 활동했던 시기는 막 1990년대의 문이 열린 시기였다. 그 당시 초등학교의 교내 방송은 오디오 방송이 전부였다. 하지만 교실 맨 앞에는 우측에는 스피커가 그리고 좌측에는 텔레비전 모니터가 언제나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볼록한 검은 브라운관 안에는 마치 거울에 반사되는 것처럼 학급 아이들의 모습이 동그랗게 비춰지고 있었다. 나는 방과 후 빈 교실에 서서 텔레비전 모니터를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막상 텔레비전의 전원을 누르면 “지지-직”하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전원을 다시 끄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방송부였던 나에게도 마이크와 스피커는 익숙한 기계였지만 텔레비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존재였다. 매일 스피커로 교내 모든 일정을 전달하던 그 시절 텔레비전 모니터는 그저 하나의 교실 내 장식품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용 8mm 캠코더 한 대가 방송부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처음 보는 비디오카메라를 다들 신기하게 바라봤고,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부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던 중, 비가 오는 날 아침조회 때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만 전달 할 것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얼굴까지 보여주면 어떨까하는 의견이 나왔다. 지금처럼 교내에서도 영상 방송이 보편화된 시점에서는 별 일 아닐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비디오를 통해 전교생들에게 실시간으로 교장선생님의 말씀과 표정을 함께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전교생에게 교장선생님의 음성과 영상을 함께 전달한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시도였고, 첫 시도에 대한 긴장감 또한 몰려왔다. 우리는 방송부 담당 선생님께 말씀 드린 후 선생님의 승낙을 받았고, 한대의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각 교실에 영상이 나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후, 나와 방송부 친구들은 비가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비가 내리는 어느 월요일, 드디어 처음으로 비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평소 조회 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TV 모니터를 통해 뚜렷이 보였고, 브라운관을 통해 바라보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듯,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시끌벅적 했던 실외 조회 때보다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시청을 하게 되니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비가 오는 첫 조회 때 텔레비전을 통한 조회방송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비디오카메라’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하여 이루어낸 새로운 시도는 우리에게 오디오 방송에서 얻지 못했던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당시 아침조회 때 사용된 카메라는 단지 고정된 상태에서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비록 초등학교 아침조회 방송에 지나지 않지만, 어린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첫 번째 생방송이었고, 나의 첫 보도영상이었다. 요즘과 같이 편집이 중요시 되던 때와는 달리 그 당시에는 편집이란 개념 자체를 생각치도 못했고 뚜렷한 개념정립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방송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순수한 방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 되어 졸업을 앞둔 지금, 진실 된 보도영상을 추구하는 예비 언론인을 꿈꾸며, 초등학교 방송부 시절의 초심을 되새겨 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과 끊임없는 호기심, 그리고 가슴 설렜던 첫 시도. 그 때를 떠올리며 정해년 새해를 맞아 박약했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시 쓰고자 한다.

제2기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 정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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