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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환경! 이제는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1. 유럽에 와 보니

 지난해 10월, 태어나서 처음 독일 땅을 밟고 나서 느낀 첫 인상은 여기 사람들은 대체로 변화에 둔감하고 변화를 꺼리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겪었지만 웬만한 집(공동주택)들은 대개 100년이 넘었다. 다시 말해 한국식 리모델링 없이 옛날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엘리베이터에 표기된 제작년도를 보면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19세기말 출고된 것을 요즘도 그대로 쓰니까.

 방송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진보하지만 기술과 장비를 운용하는 방식은 19세기, 아니 중세, 나아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바뀐 것이 없다. 월드컵 이벤트나 방송사의 야외촬영과 같이 조직이 움직이는 운영시스템을 보면, 10년 전 즐겨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로마군대가 떠오른다. 전투교본 대로 숙영지 터를 닦고 건물을 짓고 망루와 출입구를 내고 배수로를 파고 창고를 만들고 2중 3중으로 보초(현대판 OP)를 세우고 그런 다음 밥을 먹는다.

2. 금강산도 식후경

 삼국지에서 전투에서 이기려면 장군을 보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병참을 보라고 했다. 유럽의 병참운용시스템은 오랜 시행착오를 거듭해 정착시킨 제도라서 우리가 배울만하다. 예를 들면, 뉴스취재팀은 3명(기자, 촬영기자, 전문 엔지니어)으로 구성되고 3명중 1명이 회사차를 직접 운전한다. 뉴스취재팀의 식사나 숙식은 사후 개인적으로 영수증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물론 여기도 1끼 당 집행한도가 있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5~20유로(한국돈 17,000~22,000원)가 넘으면 개인이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ENG취재를 나가면 취재수당을 지급한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꼭 밥 먹는데 쓰는 돈도 아니고 밥을 먹지 않아도 챙겨갈 수 있어 사실상 유사급여화 돼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누구나 최대한 돈을 남기려 할 것이다. 밥값을 제 2의 수당으로 여기는 관행을 사후 정산방식으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래야 품위를 잃지 않는다.

 다음, 집단 급식을 살펴보자. 2000년 영국BBC가 ‘인체의 신비’라는 10부작을 만들어 호평을 받고, KBS도 그것을 번역 방송한 적이 있다. 그 10부작 다큐멘터리 마지막 1시간짜리 테이프는 프로그램 제작과정 2년을 촬영한 Making Film이었다. 돌이 지난 아이부터 100살 노인까지 100여명을 찍는 하루 촬영과정은 유럽방송사의 일반적인 병참운용시스템이다. 촬영장에는 아침 일찍 젊은 AD(유닛 매니저)가 나타난다. 무전기로 급식차량과 이동화장실, 탈의실 컨테이너를 불러 확인하고 설치장소를 잡아준다. 큐시트 순서에 따라 엑스트라를 준비시키면 다음, 전기와 방송장비를 운용하는 팀이 나타나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한다. 시험촬영이 시작될 즈음, 총괄 PD가 나타난다.

 촬영을 마치거나 다음 촬영을 기다리는 스탭이나 배우들은 급식차량에서 그 때 그 때 식사를 해결한다.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유럽의 중계 방송팀들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급식을 해결했다. 하루 4끼와 간식을 공급하는 급식소와 케이터링차량을 어느 경기장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방송사들도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는 수해보도나 스포츠경기, APEC과 같은 이벤트를 취재할 때, 현장방송인들이 아무 걱정 없이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급식업체가 필요하다. 최소한 제대로 된 도시락이라도 제 때 받아먹을 수 있는 병참운용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부 경력 6년, 해마다 심하게 물난리를 겪은 통에 내륙 오지에 여러 번 급파된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가장 난감했던 적이 매끼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취재와 방송, 그 바쁜 와중에도 스탭 식사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무능한 기자 소리를 들었다. 돈이 보도본부에서 나오니 그렇다. 어떤 때는 수재민에게 주는 긴급구호식량을 먹기도 하고 새마을부녀회 신세도 져 봤다. 때로는 근처 주민들에게 통사정해 얻어먹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모두 민망한 얌체 짓이었다.

3. 맺으며 ;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유럽의 시스템에 대해 대충 살펴봤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떤가? 급식시스템이고 뭐고 모두들 ‘먹고 자는 일’에 큰 관심이 없다. 대충 정액 수당으로 주면 그만이다. 굶든지 말든지 돈을 남기든 모자라든 개인 사정일 뿐이다. 병참을 개인의 일에서 조직의 일, 회사의 일로 바꾸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과연 어떻게 하면 될까?

회사는 회사대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지만 예산을 편성하고 담당 조직을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유럽 보다 훨씬 나은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역량은 있다.

 그렇다면 인식전환의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들이다. 아직도 기자들 대부분 국내출장이든 해외출장이든 카드결제 보다 정액 지급을 선호한다. 제 2의 월급이니까 최대한 많이 남겨가려고 한다. 방송 현장에서의 병참제도를 개선하려면 용돈 보다 품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한다.

 제발, 먹고 자는 돈은 그대로 먹고 자는 데 쓰자. 국내든 해외 출장이든 현재 급여 기준 대로 받는 비용을 남기지 않고 먹고 자는 데 100% 집행한다면 지금 보다 품위 있게 일할 수 있다. 병참의 시스템과 방법은 그 다음 문제이다. 서양제도를 굳이 들여오지 않아도 한국현실에 맞는 제도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모두 현행 정액지급제도를 버리고

‘먹고 자는 비용’은 모두 카드결제나 현금영수증으로 사후 정산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말이다.

KBS 독일특파원 취재기자 안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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