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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기고>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내용을 채우는

낮방송이 되길 바라며

한 상 희 (경실련 미디어워치 팀장)

 내 어릴 적 기억에 의하면 TV는 항상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기는 존재였다. 아침시간이나 낮 시간 동안 방송을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오후 5-6시쯤에 시작하는 어린이 프로와 일요일 아침에 하는 ‘캔디’나 ‘미래소년 코난’과 같은 만화영화에 대한 기다림은 무척 컸었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우리나라도 미국방송(당시 AFKN을 아이들은 이렇게 불렀다)처럼 하루 종일 TV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2005년 12월1일 드디어 지상파 낮방송이 시작되었다. 이는  방송시간운용의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 및 독립성을 보장하고 현재 종일방송을 하고 있는 케이블이나 위성과 같은 타 매체와의 형평성유지, 그리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 제작으로 외국 방송과의 경쟁력 강화라는 큰 틀 안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낮방송 시간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방송시간운용의 자율성, 방송편성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언론의 역사 속에서 방송에 대한 권력의 숱한 개입을 보아왔고 더 이상 명분 없는 규제는 풀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더욱이 수준 높은 프로그램 제작이나 실험적인 콘텐츠 제작으로 DMB 본 방송에 대비한다는 취지 역시 매력적이다.

지금의 낮 방송, 콘텐츠 확충 없는 시간 늘리기

 그러나 지난 1월 9일~13일까지 지상파 방송3사 4개 채널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방송시간의 제한이 단지 방송민주화를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였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유형을 분석해 본 결과 방송사별로 KBS1은 신규프로그램 3편과 재방송 4편, KBS2는 신규프로그램 1편과 재방송 7편, 시간대를 변경한 프로그램 1편, MBC는 신규제작 4편, 재방송 3편, 시간 변경된 프로그램 1편, SBS는 신규 제작 2편, 재방송 2편, 재활용 3편, 그리고 시간 변경된 프로그램 1편으로 분석되었다.

 신규 프로그램이 가장 많이 제작된 방송사는 MBC이며 재방송이 가장 많은 방송사는 KBS2로 총 7편의 프로그램이 재방송 프로그램이다. 또한 SBS의 경우 그 제목은 조금 다르지만 기존 프로그램의 한 코너 정도를 새로이 편집한 재활용 프로그램이 3편으로 재방송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모두 5편이 재방송이나 재활용에 포함되며 방송3사를 모두 합하여 신규제작 프로그램은 10편, 기존 방송의 시간대변경이나 재방송 혹은 재활용 프로그램이 22편으로 나타났다.

 재방송도 역시 방송이 수행해야 할 서비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제목과 편집만을 살짝 바꾸어 새로운 프로그램인양 편성하고 각 방송사의 자회사인 케이블TV에서도 매일같이 접하고 있는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상황을 전파낭비로 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본래 낮방송 확대의 취지 중 하나였던 지상파DMB 본방송 대비를 위한 실험적이고 과감한 콘텐츠 제작이나 프로그램 제작기회의 증가에 따른 외주제작의 활성화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요원하기만하다.

재탕 삼탕, 맛 없는 낮 방송

 또 하나,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접근권의 확대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자막, 해설 방송이 기존의 드라마나 오락프로의 재방송에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은 참 씁쓸하다. 과연 소외계층의 방송접근권이라는 것이 이렇게 좁은 의미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물론 MBC의 경우 낮 시간에 ‘1%의 나눔...’이나 ‘희망채널’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의미를 조금은 살리고 있지만 이 역시 혹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낮 시간대에 전면 배치함으로써 시청률이 높은 저녁시간대에서는 아예 이런 프로그램들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을 함께 안겨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는 낮방송 시간 연장 자체에 대한 긍정성과 부정성이 아니다. 이미 규제는 풀어졌고 남은 것은 이 시간들을 어떻게 방송의 발전과 시청자의 권익 신장으로 이어갈 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과감하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의 제작’이라는 매력적인 제안이 단지 시간 연장을 얻어내기 위한 감언이설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길은 약속을 지키는 길 뿐일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생각했던 ‘하루 종일 TV가 나온다면...’이라는 소망은 결코 그 좋아했던 ‘캔디’와 ‘미래소년 코난’의 재탕 삼탕을 계속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다면 난 지금 그 만화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간직하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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