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58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역린-스크린에서 실패한 TV드라마

 사이비(似而非):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 않음.
 사극(史劇):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나 영화

방종혁의 씨네노트.jpg


 이재규 감독의 영화 ‘역린’(逆鱗)을 보는 내내 이 두 단어가, 더 정확히 말해서는 이 두 단어의 그림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재규 감독은 MBC에서 재직할 당시 ‘다모’라는 픽션 사극을 통해 이름을 날렸다. 허구를 바탕으로 액션에 로맨스를 겹친 이야기는 이후 방송가에 판타지 혹은 픽션 사극의 첫걸음이 되었다. ‘선덕여왕’, ‘광개토태왕’, ‘태왕사신기’, ‘주몽’, 최근에는 ‘기황후’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배경이 조금 가미되었을 뿐 TV드라마에서 인물들간의 개연성을 현대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물의 등장 배경까지 재편하는 것은 극의 ‘재미’를 위한 장치로 인식되었다. 영화를 보면 이준익의 ‘평양성’,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추창민의 ‘광해, 왕이된 남자’, 한재림의 ‘관상’에서도 이런 탈역사의 모습이 보여진다.


 사극에 대한 방송사나 영화 관계자들의 이런 태도는 현대극이라고 다르지 않다.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나 ‘마이웨이’, 장훈의 ‘고지전’을 보면 현대사에서 특정한 에피소드나 플롯을 확장 시키면서 액션의 폭이 커진 모양이 조선시대와 그 이전을 다룬 사극들의 플롯들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영화에서 사극이 메인 장르로 올라선 이유는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흥행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흥행이 되는지를 살펴보면 좀 복잡해진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고, 흥행 배우를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준익의 경우 자본과 배우 모두 모험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이를 보편성으로 묶어두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후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은 배우와 시나리오라는 조합이다. ‘광해, 왕이된 남자’와 ‘관상’의 경우 시나리오 보다는 배우가 시종일관 영화 전체 분위기를 압도해가기 때문에 시나리오 상의 약점이 상쇄되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을 찾아가는 관객의 정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역사적인 소재가 흥행이 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대안을 과거에서 찾아보려는 관객의 집단적인 관념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광해...’의 경우와 이준익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흥행 요소라고 볼 수 있지만 ‘26년’을 제외하고는 현대 사극과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런 모든 분석이 무의미해진다면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아야 할까? ‘왕의 남자’의 흥행 요소에서 가장 큰 부분은 ‘이준기’라는 배우였다. 여기에 사당패라는 천민의 시각에서 바라본 절대권력의 허상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이 작품에서 우연적인 요소는 공길이라는 배역에 절묘하게 맞아들어간 배우라고 볼 수 있다. ‘광해...’에서는 가짜왕과 도승지와의 개그코드와 거기에서 비롯된 전복된 관계(왕-신하에서 신하-가짜왕, 다시 가짜왕-신하)가 보여주는 쾌감이 흥행요소였다. ‘관상’에서는 송강호, 김혜수, 백윤식을 압도한 이정재(수양대군)의 매력이 갑작스럽게 부상한 흥행코드였다.
 그렇지만 우연성이 영화 흥행의 가장 큰 요소가 되어버리면 애초부터 영화를 정교하게 만들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이를 위해 영화제작자들은 영화 흥행의 확실한 요소를 상정하고 작업을 추진해나간다. 이 지점에서 다시 위에서 언급된 자본과 배우, 시나리오, 관객의 정서라는 흥행 요소가 등장한다. 결국 영화 제작이라는 환경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우연을 견제하기 위해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공고히 준비한 방어진지가 되어버린다.
 이제 다시 ‘역린’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대체적으로 과유불급이다. 주인공이 될 만한 등장인물들만 하더라도 정조, 정순대비, 상책, 광복, 살수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앞부분 반 이상을 잡아먹어버려서 뒷부분 존현각에서의 대결은 급히 마무리된 느낌이다. 감독의 이런 조급증 때문에 영화 초반 왕과 ‘정순대비(노론)’의 대립이 주던 긴장감은 극이 흘러감에 따라 왕과 ‘아동 인신매매꾼(광백)’의 대립으로 어이없게 바뀌면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극적 긴장감이 사라진 부분은 존현각의 대결이 지닌 에너지로 상쇄시켜야 하는데 감독은 이마저도 영화 도입부에 암살자들이 모두 죽어 널브러진 시퀀스로 날려버리고 마는 편집상의 오류를 범해버린다. 여기에 허술한 고증도 한 몫을 한다. 여성인 대비가 사방이 트인 곳에서 한가롭게 목욕하고, 국상기간 왕이 상복을 입고 있는데 궁궐의 모든 인물들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한다. 아울러 이 영화는 앞선 영화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차용하는데 그것이 새로운 느낌을 주기 보다는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만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정조와 내시 상책과의 관계는 ‘광해...’에서 광해군과 허균을, 정조의 특기인 편전(애깃살) 궁술은 ‘최종병기 활’의 남이(박해일)를 떠올리게 한다. 어설픈 액자 구성과 과도한 플래시백은 결국 이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이 주는 긴장감에 의지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만다.

 


 다시 이 글 첫머리에 등장한 ‘사이비’와 ‘사극’으로 돌아가보자. 감독은 ‘역린’을 사극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서 오는 긴장감을 과도한 액션과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판타지 사극으로 흘러가 버리는 ‘사이비 사극’을 만들고 말았다.


  1. 국제정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舊한말 조선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강대국 틈에서 우왕좌왕하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21세기 현재에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환경에 처해 있다....
    Date2018.01.10 Views83690
    Read More
  2. <CS칼럼> 용모복장은 나의 명함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현대사회 생활에 있어서 복장은 단순한 옷이 아니다. 복장은 기능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영향력있는 메시지전달 수단이 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알리는 명함이다. 상대방의 옷차림만으로도 무엇을 하는 사...
    Date2014.03.21 Views6145
    Read More
  3. <방종혁의 씨네노트> 전쟁 기계가 말하는 제2차 세계대전 - '퓨리'

    전쟁 기계가 말하는 제2차 세계대전-퓨리 전쟁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저마다의 희망사항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간다. 오락을 중시하면 화끈한 전투 장면을, 드라마를 보기 위해 극중 인물에 집중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이나 장비에 대한 관심으로 스크린을 응...
    Date2014.12.30 Views3503
    Read More
  4. <이신변호사 법률상담>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주요내용

    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주요내용 3회에 걸쳐 국민들의 주거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주택임차인에게 특별한 법적 보호를 부여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상가건물의 임대차관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 약자인 상가임차인을...
    Date2013.03.30 Views3436
    Read More
  5. 방종혁의 시네노트 - 흑백으로 되살린 전쟁범죄의 기억-『지슬』

    흑백으로 되살린 전쟁범죄의 기억-『지슬』 영화가 시작되면 마루에 나뒹구는 제기(祭器)들이 보인다. 그 뒤로 방문이 열리면서 군인이 등장하고 카메라가 좀 더 들어가면 이불장에 걸친 여자의 시신이 보인다. 군인은 그 앞에서 동료와 함께 칼로 과일을 나...
    Date2013.06.04 Views3424
    Read More
  6. 방종혁의 씨네노트 - 사극의 두 얼굴, 허구와 실화 '군도-민란의 시대' VS '명량'

    사극의 두 얼굴-허구와 실화 -‘군도-민란의 시대’ vs ‘명량’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와 ‘명량’이 개봉됐다. ‘군도’는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이고 ‘명량’은 이순신이라는 실존 인물과 ‘명량해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실화라고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Date2014.08.14 Views3311
    Read More
  7. 애인처럼 사는 법... 아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 (4)

    최강현(부부행복연구원장. 경찰청 정책자문위원.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 부부 문제와 관련한 임상심리학자인 윈러드 하리 박사는 배우자를 통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남성과 여성이 각각 다르다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조...
    Date2014.03.21 Views3304
    Read More
  8. ★ 좋은 첫인상은 경쟁력이다 ★

    ★ 좋은 첫인상은 경쟁력이다 ★ 첫 인상은 두 번 줄 수 없다. 첫 인상이 좋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없어 지속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좋지 못한 자신의 첫 인상은 상대방에게 곧 마지막 인상이다. 첫인상에서 호감을 준다면 이...
    Date2013.06.04 Views3006
    Read More
  9.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몸짓 언어의 세계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몸짓 언어의 세계 대학에서 인간관계에 관한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주제는 ‘몸짓 언어(body language)’이다. 특정한 몸짓 언어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난다. 딴짓하던 학생들도 고개를 들고 ...
    Date2017.07.20 Views2979
    Read More
  10. <이신 변호사 법률상담> 주택 임대차 보호법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들3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3) 지난번에 임대차가 끝난 후 보증금을 받지 못한 임차인을 위한 임차권등기명령제도를 설명하였고, 임대기간에 대한 특칙을 두어 임차인을 보호하는 조항 및 묵시적 계약갱신조항 등에 대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주...
    Date2012.11.02 Views2867
    Read More
  11. <cs칼럼>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갑질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갑질 기업 교육을 하는 제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직종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일적인 만남이다 보니 상대의 모습만으로는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이 듭니다. 특히 저와 같이 회사에 강사로 초빙되어 그 ...
    Date2014.12.30 Views2847
    Read More
  12. No Image

    <방종혁의 씨네노트>죽도록 고생하기, 이제는 러시아에서...

    죽도록 고생하기, 이제는 러시아에서... -다이하드: good day to die 존 매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는 크리스마스마다 죽도록 고생했었다. 휴가를 내어 근무지 뉴욕에서 대륙의 반대편 LA에 있는 와이프를 보러가는 것은 만만찮은 일인데, 얼굴을 보기 전...
    Date2013.03.30 Views2845
    Read More
  13. <이신 변호사 법률 상담>혼인의 주요 법률관계에 대하여(2)

    이신 변호사 법률 상담 : 혼인의 주요 법률관계에 대하여(2) 외국에서 우리나라 국민 사이에 결혼할 경우 어디에 신고할까요? 이러한 경우 그 외국에 주재하는 대사, 공사 또는 영사에게 신고하면, 그 대사, 공사 또는 영사가 본국의 가족관계등록관서에 송부...
    Date2013.06.04 Views2778
    Read More
  14. <이신 변호사 법률 상담>혼인의 주요 법률관계에 대하여(1)

    혼인의 주요 법률관계에 대하여(1) 우리나라의 혼인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 추세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혼인의 주요 법률관계에 대해 상식적으로 반드시 알...
    Date2013.03.30 Views2773
    Read More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자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정은 무엇일까? 아마도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을 보고 웃어 주면 좋은 사람, 자신을 보고 찡그리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찡그린 사람은 신...
    Date2013.07.30 Views2739
    Read More
  16. 북한이미지의 올바름에 관하여

    북한이미지의 올바름에 관하여 전 세계의 이목이 남북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잡고 가상의 선에 불과한 국경선을 넘나드는 장면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놀랍고도 어지러운 반전’이라고 표현한 뉴욕타임즈의 논평처럼 ...
    Date2018.07.04 Views2608
    Read More
  17. <이신 변호사 칼럼> 면접교섭권 및 재산분할청구권에 대하여

    면접교섭권 및 재산분할청구권에 대하여 지난 지면에서 재판상 이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자녀들에 대한 양육책임과 면접교섭권이 문제되고, 부부사이에서는 재산분할청구권 문제가 발생하며 재판상이혼에 있어서는 위자료청구권도 ...
    Date2014.05.21 Views2599
    Read More
  18. <방종혁의 씨네노트> 스크린에서 실패한 TV드라마 - 역린

    역린-스크린에서 실패한 TV드라마 사이비(似而非):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 않음. 사극(史劇):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나 영화 이재규 감독의 영화 ‘역린’(逆鱗)을 보는 내내 이 두 단어가, 더 정확히 말해서는 이 두 단어의 그림자가 머릿속에서 ...
    Date2014.05.21 Views2581
    Read More
  19. <이신 변호사 법률상담> 이혼에 대하여 (2)

    이혼에 대하여(2) 지난 지면에서 협의상 이혼 및 사실상 이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재판상 이혼에 대한 것입니다.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민법 제840조)에는 ①배우자에게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②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
    Date2014.03.21 Views2390
    Read More
  20. <방종혁의 씨네노트> 혈연 VS 시간(추억), 가족의 조건은?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개인적으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그의 영화를 다 보지는 않았다. 처음 본 영화는 2001년에 개봉한 ‘원더풀 라이프’이고 이후 ‘환상의 빛’(1995), ‘아무도 모른다’(2004), ‘하나’(2005)를 봤다. 그 사이 만...
    Date2014.03.21 Views2379
    Read More
  21. <특별기고> YTN은 촬영 중

    <YTN은 촬영 중> 지난 4월 초 상암동의 신사옥 YTN뉴스퀘어로 이전을 한 후 홍보팀은 적어도 사내에서 만큼은 가장 바쁜 부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물론 YTN이 언론사이다보니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한복판과 같은 보도국과는 비할 바는 못되...
    Date2014.12.30 Views230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