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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찬바람이 낙엽을 쓴다. 어느새, 그리고 또다시 겨울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다. 짧아진 가을 때문인지 무더웠던 여름의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찬바람이 물려오는 듯하다. 그 여름의 흔적을 생각하니 차가운 겨울바람도 나름 반갑다.

        그러나 막상 겨울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따듯한 온풍기가 나오는 실내와 대중교통 덕분에 겨울의 찬바람은 빗겨가기 일쑤다. 이렇게 따듯한 공기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랜만에 찾아온 겨울의 찬바람은 “어후~ 추워“란 말로 불청객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겨울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따듯한 히터가 나오는 승용차 안이었다.    

        성에다. 승용차 유리창에 끼는 성에가 겨울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차 내부의 따듯한 공기와 외부의 찬 공기가 만나 유리창에 성에를 만든다. 차 내부의 따듯한 공기는 히터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내 몸에서 발산되는 체열도 한 몫 했으리라. 어쩌면 히터로 달궈진 몸에선 생각보다 많은 열이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에가 유리창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가장자리에서 시작된 성에는 그 세력을 점점 넓혀간다. 그리고 기어이 앞 유리를 맹렬히 점령했다. 덕분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에 나타나는 성에는 차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지워버렸다. 방법은 있다. 차가운 유리에 따듯한 공기를 주입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앞이 보이겠지.

        겨울이 불러온 성에에서 우리의 방송환경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우리 방송의 지난 세월은 탄압이 심화된 시간이었다. 공정방송을 외친 수많은 언론인이 해직되었고 부당한 인사이동도 빈번했다. 하지만 언론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공정성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극에 달했다. 그들의 뜨거운 열망은 차 안에서 체열을 내뿜었던 나의 체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차가운 겨울바람 같다. 해직된 언론인들은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프로그램 진행자를 일방적으로 바꾸는 일도 있었다. 이 차가운 현실은 카메라기자에게도 빗겨가지 않았다. 영상취재 부서가 사라지고 리포트에서 카메라기자의 네임수퍼까지 사라졌다. 언론공정성이라는 뜨거운 열망은 차갑고 냉엄한 현실에 부딪쳐 성에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점점 세력을 넓혀가 공영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지워버린 듯하다.

        지난겨울, 그 뜨거웠던 선거의 현장에선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 자율성 보장’ 으로 공정성을 실현하겠다는 대선공약이 그것이다. 방송공정성이라는 온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언론인들은 이 온풍이 공정한 방송환경을 조성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겨울이 가고 다시 찾아온 겨울이 된 지금, 현실은 여전히 그리고 어쩌면 더 맹렬히 칼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공약에 대한 논의는 논의기간이 끝나가지만 결과가 지지부진하다. 언론인들의 뜨거운 열망은 커져만 가는데 현실은 차갑기만 하니 성에가 기승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차가운 유리에 따듯한 공기를 주입해 성에를 없애는 것처럼 이 차가운 현실에 방송 공정성이라는 온풍을 주입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감시자 또는 역사의 기록자로서 언론, 방송이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정방송의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형준 / 명예카메라기자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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