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8 09:12

봉하마을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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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전대통령)의 소환에 날짜가 다가오자 봉하마을의 취재 열기는 뜨거워졌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수장이었던 한 사람의 비리 의혹과 진실에 대해 궁금했고 이에 부응해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을 맞춰 머리기사로 다뤘다. 마당을 산책하면서 찍힌 사진은 ‘수심이 가득한 전 대통령’이라는 꼬리말을 달고 대중에 공개되기도 하였다.

4월의 봄기운이 가득한 어느 날, 기약 없는 출장을 떠났다. 노전대통령이 소환되는 날까지 봉하마을을 지키기로 하였다. 출장의 가장 큰 목적은 노전대통령의 수심 가득한(?) 얼굴 표정을 담는 것이었다. 벌써 몇 일째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있었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안에만 있는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노전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주민들에게 언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내에서의 취재 협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전 대통령 집 정문이 보이는 곳에 진을 치고 있는 취재진들을 트랙터로 쫓기까지 하였다. 주민들의 행동이 못 마땅하게 보였지만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높은 곳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사저 뒤쪽 봉하산 꼭대기의 사자바위와 정면으로 보이는 과수원 중턱이 그 대표적인 취재 장소가 되었다.

봉하산 꼭대기는 봉하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노전대통령 집을 훤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두 번 정도 언론에 공개된 후 커튼 등으로 완벽하게 가려져 집안은 볼 수 없었다. 아침에 올라가서 망원을 장착하고 마치 저격수인양 엄폐한 상태에서 뷰파인더를 보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노전대통령의 그림자는 얼씬 거리지도 않았고 그러기를 며칠 동안 반복하였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선놀음을 하는 듯싶었으나 그 무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서울보다 남쪽에 있어서 일까? 태양과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일까? 4월의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따가운 햇빛과 무더운 날씨였다. 서울과 다르게 가로등이 없는 이곳 시골마을은 해가 반대 산 너머로 사라지면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에 하산을 해야만 하고 그 시간이 곧 퇴근 시간이 되었다.

며칠이 지난 뒤 그날도 어김없이 산위에서 뻗치기를 할 때였다. 다른 때와 다름없이 무료하게 퇴근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전화를 통해서 노전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최근 심경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기자들이 산위에서 까지 지키고 있어 사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그런 본인의 집을 감옥에 비유하기 까지 하였다. 기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산 정상에서 철수하고 내려가서 다른 기자들과 토론을 시작했다. 취재의 목적, 정당성, 인권침해 등등... 취재과정에서 과열 양상이 벌어지면서 취재 대상이 되었던 노전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피해자 아닌 피해자가 된 것이다. 각 언론사의 이해관계도 있으니 각자 이 상황을 회사에 보고하고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토의 결과를 노전대통령 측과 마을 주민에게 통보해주었다. 김경수 비서관을 통해서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답신이 돌아왔고 대신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을에서 취재하는데 큰 제약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합의했다.

개인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엄연히 인권침해이다. 인권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역지사지’이다. ‘내가 싫은 것은 남들도 싫을 것이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면서 주관적 생각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사생활이 존중 받고 싶은 만큼 남도 생각해주자는 ‘역지사지’의 방법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홍종수 기자 smilingho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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