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매겨진 'MBC 블랙리스트' 카메라기자들
카메라기자협회 성명서 발표....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MBC노조와 영상기자회, 검찰에 고소
최근 MBC는 카메라 기자 65명에 대해 등급을 매겨 인사평가와 인력배치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블랙리스트’ 문서가 공개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와 <요주의인물 성향>이라는 제목의 문서 파일에는 기자들을 정치적 성향, 회사 정책에 대한 충성도, 노조와의 관계 등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MBC본부는 “문서 메타데이터에는 작성자가 MBC노동조합(제3노조) 소속 카메라기자로 되어 있다”며 “작성 시점은 2013년 7월 6일, 최종 수정 시점은 2014년 2월이다”고 밝혔다.
MBC본부는 카메라기자에 대한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최초 작성자가 있고 이후 여러 사람이 문서 작업에 참여했다고 보고 있다.
이 문서에는 카메라기자들의 개인별 성향과 170일 파업 가담 여부, 노동조합과의 관계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에는 문서 작성 당시 재직 중이던 MBC 카메라기자 65명을 입사연도에 따라 기수별로 나눈 뒤, 각각 4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분류 기준
☆☆ : 회사의 정책에 충성도를 갖고 있고 향후 보도영상구조 개선과 관련(영 상취재 PD 등 구조 관련) 합리적 개선안 관련 마인드를 갖고 있는 이 들
○ : 회사의 정책에 순응도는 높지만 기존의 카메라기자 시스템의 고수만을 내세우는 등 구체적 마인드를 갖고 있지 못한 이들
△ : 언론노조 영향력에 있는 회색분자들
✕ : 지난 파업의 주동계층으로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
이 표의 분류에는 회사의 정책에 충성도를 갖고 있거나 가장 순응적인 ☆☆ 등급은 6명, ○ 등급은 19명, △ 등급은 28명, 회사의 가장 비판적인 X 등급은 12명이었다.
<요주의인물 성향> 문서에는 X, △, ○의 각 등급별 기자들에 대한 특성이 나와 있다. 주로 회사에 대한 충성도, 노조와의 관계,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게으른 인물, 영향력 제로, 무능과 태만, 존재감 없음 등의 표현도 있다.
회사에 가장 비판적인 최하위 X등급의 인물에 대해서는 회사 파업에 적극 가담자, 노조와 영상기자회의 집행부를 맡았던 기자들이다. 특히, X등급 인물에게는 ‘노조의 강경책을 구성원들에 전파’, ‘최근 국정원 방송사건 성명서 작성에도 후배직원들을 적극 독려하는 등 조직 운영에 악영향’, ‘조직 붕괴 이후 노조원들의 정신적 중심’ 등의 평가를 적어놓았다. 또 ‘현 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들’ 이며 ‘격리 필요’, ‘보도국 외로 방출 필요’, ‘주요관찰대상’ 등의 표현도 있다.
△부류의 인물에 대해서는 ‘기존 노조의 영향력 하에 있는 회색분자’, ‘강성노조 성향’, ‘요주의 인물’이라고 분류하고 ‘이용가치가 있는 인물’, ‘언제든 회유 가능’ 등의 표현도 있다.
MBC본부는 ‘블랙리스트’가 카메라기자들의 인사평가와 승진 등의 자료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MBC본부는 다양한 직종 가운데 카메라기자가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들이 2012년 170일 파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측은 파업이 끝난 직후인 2012년 8월 카메라기자들이 소속돼 있던 영상취재 1·2부, 시사영상부, 스포츠영상부 등 영상취재부문 조직을 해체하고 영상취재 PD(35명) 등을 채용했다.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은 “현재 드러난 것은 카메라기자를 대상으로 작성된 문서뿐이지만, 아나운서·PD·촬영감독·취재기자·경영·엔지니어·그래픽 디자이너 등 MBC 내 모든 부문에 걸쳐 실행됐다”고 밝혔다.
"우리는 소고기가 아니다… 감시와 사찰의 명백한 증거"
권혁용 MBC영상기자회장은 “우리는 등급을 매기는 소고기가 아니다.”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충분히 누려야 할 인격권에 대한 침해이자 명백한 노동탄압”이라고 강조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는 X등급으로 분류된 22년차 나준영 기자와 양동암 기자가 참석해 2012년 파업 이후로 받은 불이익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권혁용 MBC 영상기자회장이 블랙리스트 문건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동암 기자는 “파업 끝나고 올라온 지 한 달 만에 영상부문 해체가 이루어졌다.”며 “업무효율성을 위해서라면 왜 MBC만 영상부문이 없는 유일한 방송사로 남아있는가"라고 지적했다.
MBC 영상기자회는 MBC영상기자 블랙리스트 비대위로 전환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MBC 카메라기자들은 기자회견 후 사옥 앞 광장에서 65명에 대해 4개등급으로 분류하여 성향을 분석해 불이익을 준 것에 대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석한 카메라기자들은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관계자 처벌을 요구했다.
MBC 영상기자 블랙리스트 비대위는 “MBC 블랙리스트는 일방적으로 자행된 보도영상조직 해체의 부당성을 반증한다”며 “영상기자들에 대한 감시와 차별이 정치적으로 기획된 탄압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밝혔다.
지난 8일 MBC 앞에서 카메라기자들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블랙리스트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의 처벌을 촉구했다.
또 MBC영상기자 블랙리스트 비상대책위원회의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MBC본부의 소송을 전담하는 신인수 변호사는 "블랙리스트는 헌법 제33조 1호 노동3권 침해이자 노동조합법 제81조에서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이며, 자신의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했기에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에도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MBC본부는 “진상조사단을 가동해 모든 직종의 블랙리스트 관련 증거를 수집하여 위법 행위가 드러난 경영진과 간부들에 대해서는 모두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MBC는 기자회견 직전 보도자료를 통해 블랙리스트 문건에 대해 “회사의 경영진은 물론 보도본부 간부 그 누구도 본 적도 없는 문건이다”며 “해당 문건을 가지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킨 보도 매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밝혔다.
MBC본부와 MBC 영상기자회는 지난 9일 “블랙리스트의 해당 문건을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한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정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