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28 20:54

국보에서 잿더미로...

조회 수 714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No Attached Image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Ⅲ>

국보에서 잿더미로...

 5일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 야간근무. 요란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 건 저녁 8시 40분경.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회사라 한밤의 사이렌소리는 그다지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날만큼은 대형화재가 났음을 감지할 정도로 요란하고 끊임이 없었다. 곧이어 울리는 전화벨은 남대문에서 연기가 난다는 한통의 전화였다.

 장비를 챙겨들고 가면서도 남대문 시장 혹은 남대문 성곽 주변 잔디밭 정도가 탔으려니 했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남대문 누각에서 연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였기에 일단 9시 뉴스에 1보 화면을 쓸 수 있도록 2분가량의 현장스케치를 했고, 과욕을 부린다면 성곽 1층 내부로 접근이 가능한 정도였기에 몇 시간 후 숭례문이 붕괴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시내 전 소방서가 출동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고 불길이 점점 잡혀간다고 생각되었지만 11시경 숭례문 현판이 철거되었고 천장과 기와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아닌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길을 잡기 위해 대형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고 붕괴의 조짐 속에 소방관들 역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일요일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송을 보고 모여든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현장에서 추위에 떨던 동료 영상기자들도 마찬가지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새벽 1시경 2층 누각의 기왓장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소방대원들도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한 컷 한 컷 600년의 역사가 사라짐을 취재하는 동안 숭례문의 마지막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얼어버린 발은 감각을 잃어 느낌이 없었고 마지막 붕괴로 1층 누각까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숭례문은 내 가슴마저 무너지게 하였다.

 야근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 다시 본 숭례문의 처참함은 취재 당시 치열하게 영상을 담으며 냉정을 잃지 않으려던 나에게 침울함마저 들게 했다. 이후 허술해서 숭례문을 골랐다는 방화범의 말은 그간 하루에도 몇 번씩 숭례문을 보며 생활했던 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카메라기자로 살아온 5년, 수많은 취재현장에서 항상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숭례문 취재 역시 마음의 평정을 가지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직업을 초월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북받쳐 오는 감정은 막을 길 없었다.

 최근 대형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카메라기자들의 눈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진정 카메라기자의 자세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 취재였다.

이승준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백야의 잠못드는 밤 코펜하겐” file 2010.01.14 10612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file 2010.01.13 11317
폭설과의 사투, 72시간... file 2010.01.13 11419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file 2010.01.13 13353
쉽게 허락없는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file 2009.12.15 10102
[인도취재기]인도는 지금 변화로 몸살을.. file 2009.12.15 10609
스타 없는 대표팀의 거침없는 질주 2009.11.13 6541
금강산, 눈물과 감동의 2박 3일 file 2009.11.13 9698
경비행기 추락, 다시 있어서는 안될 일 2009.11.13 7276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취재기 - 故 고미영 대장을 추모하며 file 2009.10.16 11922
나로호 발사 순간을 기억하며.. file 2009.10.16 9651
쌍용차 평택 공장 잠입기 file 2009.10.16 10510
인도네시아 다문화가정 취재기 - 엄마의 나라를 찾다 file 2009.10.16 10696
'카메라기자 수난시대’ 쌍용차사측, 기자폭행…경찰은뒷짐 file 2009.10.16 10091
동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 취재기 (Bizhard 사용기) file 2009.07.16 10979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촬영 file 2009.05.18 11496
따뜻한 방에 앉아 ENG로 닭 잡아먹는 삵 찍는 법 file 2009.04.14 11459
WBC 그 '위대한 도전'의 현장을 가다 file 2009.04.14 10368
2009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취재하고``` file 2009.01.15 10594
람사르 총회를 취재하고 2009.01.06 7313
중국 자국(自國)만의 올림픽 2008.09.26 10438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