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취재기 Ⅲ>
국보에서 잿더미로...
5일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 야간근무. 요란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 건 저녁 8시 40분경.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회사라 한밤의 사이렌소리는 그다지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날만큼은 대형화재가 났음을 감지할 정도로 요란하고 끊임이 없었다. 곧이어 울리는 전화벨은 남대문에서 연기가 난다는 한통의 전화였다.
장비를 챙겨들고 가면서도 남대문 시장 혹은 남대문 성곽 주변 잔디밭 정도가 탔으려니 했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남대문 누각에서 연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였기에 일단 9시 뉴스에 1보 화면을 쓸 수 있도록 2분가량의 현장스케치를 했고, 과욕을 부린다면 성곽 1층 내부로 접근이 가능한 정도였기에 몇 시간 후 숭례문이 붕괴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시내 전 소방서가 출동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고 불길이 점점 잡혀간다고 생각되었지만 11시경 숭례문 현판이 철거되었고 천장과 기와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아닌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길을 잡기 위해 대형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고 붕괴의 조짐 속에 소방관들 역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일요일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방송을 보고 모여든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현장에서 추위에 떨던 동료 영상기자들도 마찬가지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새벽 1시경 2층 누각의 기왓장이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소방대원들도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한 컷 한 컷 600년의 역사가 사라짐을 취재하는 동안 숭례문의 마지막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얼어버린 발은 감각을 잃어 느낌이 없었고 마지막 붕괴로 1층 누각까지 잿더미로 변해버린 숭례문은 내 가슴마저 무너지게 하였다.
야근이 끝나고 퇴근하는 길에 다시 본 숭례문의 처참함은 취재 당시 치열하게 영상을 담으며 냉정을 잃지 않으려던 나에게 침울함마저 들게 했다. 이후 허술해서 숭례문을 골랐다는 방화범의 말은 그간 하루에도 몇 번씩 숭례문을 보며 생활했던 내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카메라기자로 살아온 5년, 수많은 취재현장에서 항상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숭례문 취재 역시 마음의 평정을 가지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직업을 초월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북받쳐 오는 감정은 막을 길 없었다.
최근 대형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카메라기자들의 눈이 수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진정 카메라기자의 자세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 취재였다.
이승준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