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4 20:04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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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지진 취재기>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중국 지진 취재를 가서 여러 날을 머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칭촨현에서 머물었던 하룻밤이다.

 지난달 21일, 중국에 도착한 지 나흘째, 우리는 지진 피해로 고립되었던 칭촨현으로 떠났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칭촨현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가 이제야 길이 뚫렸던 것이다. 칭촨현은 청두시에서 아침 7시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3시간여를 달린 후 험난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가는 길에 공안들의 검색은 없었다. 그러나 도로가 문제였다. 좁고 굴곡진 산길을 달리기도 아찔한데 바위를 피하고 절반이 날아간 도로를 달리려니 과격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던 현지 운전기사인 장 씨도 등골이 싸늘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징촨현 약 40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산사태로 인해 길이 통제되었다. 이때 장 씨가 조심스럽게 취재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만 돌아가는 게 어때?”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다행히 기다린 지 30분 만에 도로는 뚫렸다. 굽이진 산길을 달리고 달려 저 앞에 파란색 천막 행렬이 보였다. 처참히 부서진 가옥들, 공동 급수대에서 설거지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 눈앞의 광경은 처참했다. ‘여기가 우리가 취재해야 할 곳이구나.’

 현지 농민의 안내로 언색호와 갈라진 산을 찾아갔다.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천막을 세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너무나 외진 곳이라 이제야 천막이 지원된 것이다. 비포장 산길을 오르다 산사태가 일어난 길 앞에 차가 멈춰 섰다. 흙더미 너머로 언색호가 있다는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를 넘어 왼쪽으로 틀자마자 긴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맑은 물 아래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야채들이 보였다. 좁은 실개천이 산사태로 막히면서 물이 차올라 개천 양쪽의 밭을 삼켜버린 것이다. 호수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호수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계곡이 끝나는 곳이 호수의 끝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언색호 촬영을 마친 시간이 오후 5시. 지금부터 산의 갈라진 틈을 찾아가야한다.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현지 농민이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카메라(PD-150)도 가벼운데 왜이래 힘들지……?’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를 안내하는 농민의 발걸음이 무지 빨랐던 것이다. 허름한 천운동화를 신었는데도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오르던지……. 게다가 숨소리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이들의 일상인 듯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니 건너편 산의 산사태와 갈라진 틈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레코드버튼을 눌렀다. 내 거친 숨소리가 녹음될 정도로 액정 화면은 위아래로 쉼 없이 움직였다. ‘젠장, 줌은 전혀 쓰지도 못하겠는데…….’ 산을 1시간 정도 오르자 발아래로 갈라진 틈이 나타난다. 팔뚝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폭에 수 미터 길이의 틈이 반복적으로 길을 따라 나있다. 여진이 있을 경우 바로 산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산을 내려갈 때까지 여진이 없기를…….’

 칭촨으로 내려오는 길에 해가 저문다. 취재진은 이곳 주민들의 저녁 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서 받은 느낌은 여유와 인심이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의 대부분이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카메라를 보고 모여든 주민들이 건네는 말에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한궈(한국의 중국발음)’뿐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오~ 한궈!’ 하며 신기한 듯, 반가운 듯 마냥 웃는다. 천막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네 식구의 어머니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죽을 퍼 담는다. 취재진에게 권하는 것이다. 네 식구 먹기에도 넉넉하지 않을 식사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외국인에게 그들의 밥을 나눠준다. ‘역시 시골인심인가?’

 이 외진 시골마을에서도 휴대폰은 필수품인 듯하다. 전기가 끊긴 이곳에 유일하게 전기가 지원되는 곳은 휴대폰 충전소이다. 수십 개의 휴대폰 충전기가 멀티탭에 꽂혀있다. 주민들은 도로가 끊여 갈 수 없는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안부를 전했다.

 오늘의 취재를 마치고 취재진의 저녁시간. 칭촨에서의 하룻밤은 이곳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민간구조대와 함께 묵게 되었다. 구조대가 마련하준 식사는 중국에 있는 열흘 동안 먹은 식사 중에 최고의 밥상이었다. 흰쌀밥에 김치, 구운 김, 꽁치찌개 등 너무 맛이 있어 밥 두 그릇에 누룽지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어버렸다. 운전사 장 씨도 꽁치찌개가 맛있었는지 무엇으로 만든 거냐며 묻는다. 텐트에서 자는 동안 두 번의 여진을 느꼈으나 너무 피곤해서인지 꿈속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했다. 이렇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칭촨현에서의 하룻밤이 저물었다.

곽영주 기자 kwakyj@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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