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4 20:04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조회 수 735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중국 쓰촨성 지진 취재기>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중국 지진 취재를 가서 여러 날을 머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칭촨현에서 머물었던 하룻밤이다.

 지난달 21일, 중국에 도착한 지 나흘째, 우리는 지진 피해로 고립되었던 칭촨현으로 떠났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칭촨현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가 이제야 길이 뚫렸던 것이다. 칭촨현은 청두시에서 아침 7시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3시간여를 달린 후 험난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가는 길에 공안들의 검색은 없었다. 그러나 도로가 문제였다. 좁고 굴곡진 산길을 달리기도 아찔한데 바위를 피하고 절반이 날아간 도로를 달리려니 과격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던 현지 운전기사인 장 씨도 등골이 싸늘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징촨현 약 40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산사태로 인해 길이 통제되었다. 이때 장 씨가 조심스럽게 취재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만 돌아가는 게 어때?”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다행히 기다린 지 30분 만에 도로는 뚫렸다. 굽이진 산길을 달리고 달려 저 앞에 파란색 천막 행렬이 보였다. 처참히 부서진 가옥들, 공동 급수대에서 설거지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 눈앞의 광경은 처참했다. ‘여기가 우리가 취재해야 할 곳이구나.’

 현지 농민의 안내로 언색호와 갈라진 산을 찾아갔다.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천막을 세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너무나 외진 곳이라 이제야 천막이 지원된 것이다. 비포장 산길을 오르다 산사태가 일어난 길 앞에 차가 멈춰 섰다. 흙더미 너머로 언색호가 있다는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를 넘어 왼쪽으로 틀자마자 긴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맑은 물 아래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야채들이 보였다. 좁은 실개천이 산사태로 막히면서 물이 차올라 개천 양쪽의 밭을 삼켜버린 것이다. 호수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호수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계곡이 끝나는 곳이 호수의 끝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언색호 촬영을 마친 시간이 오후 5시. 지금부터 산의 갈라진 틈을 찾아가야한다.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현지 농민이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카메라(PD-150)도 가벼운데 왜이래 힘들지……?’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를 안내하는 농민의 발걸음이 무지 빨랐던 것이다. 허름한 천운동화를 신었는데도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오르던지……. 게다가 숨소리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이들의 일상인 듯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니 건너편 산의 산사태와 갈라진 틈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레코드버튼을 눌렀다. 내 거친 숨소리가 녹음될 정도로 액정 화면은 위아래로 쉼 없이 움직였다. ‘젠장, 줌은 전혀 쓰지도 못하겠는데…….’ 산을 1시간 정도 오르자 발아래로 갈라진 틈이 나타난다. 팔뚝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폭에 수 미터 길이의 틈이 반복적으로 길을 따라 나있다. 여진이 있을 경우 바로 산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산을 내려갈 때까지 여진이 없기를…….’

 칭촨으로 내려오는 길에 해가 저문다. 취재진은 이곳 주민들의 저녁 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서 받은 느낌은 여유와 인심이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의 대부분이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카메라를 보고 모여든 주민들이 건네는 말에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한궈(한국의 중국발음)’뿐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오~ 한궈!’ 하며 신기한 듯, 반가운 듯 마냥 웃는다. 천막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네 식구의 어머니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죽을 퍼 담는다. 취재진에게 권하는 것이다. 네 식구 먹기에도 넉넉하지 않을 식사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외국인에게 그들의 밥을 나눠준다. ‘역시 시골인심인가?’

 이 외진 시골마을에서도 휴대폰은 필수품인 듯하다. 전기가 끊긴 이곳에 유일하게 전기가 지원되는 곳은 휴대폰 충전소이다. 수십 개의 휴대폰 충전기가 멀티탭에 꽂혀있다. 주민들은 도로가 끊여 갈 수 없는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안부를 전했다.

 오늘의 취재를 마치고 취재진의 저녁시간. 칭촨에서의 하룻밤은 이곳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민간구조대와 함께 묵게 되었다. 구조대가 마련하준 식사는 중국에 있는 열흘 동안 먹은 식사 중에 최고의 밥상이었다. 흰쌀밥에 김치, 구운 김, 꽁치찌개 등 너무 맛이 있어 밥 두 그릇에 누룽지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어버렸다. 운전사 장 씨도 꽁치찌개가 맛있었는지 무엇으로 만든 거냐며 묻는다. 텐트에서 자는 동안 두 번의 여진을 느꼈으나 너무 피곤해서인지 꿈속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했다. 이렇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칭촨현에서의 하룻밤이 저물었다.

곽영주 기자 kwakyj@ytn.co.kr


  1. No Image

    구천을 맴도는 금정굴 영혼

    제목 없음 취재팀은 서울대학병원 법의학센터로 향했다. 오늘 취재는 6.25전쟁 중 발생한 유골이 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10년째 서울대 병원에 방치되어있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었다. 법의학센터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제일 처음 본 것은 부검 실 팻말이었...
    Date2008.09.19 Views7915
    Read More
  2. 6자 회담 취재, 이렇게 했습니다. "mpeg2 파일로 송출"

    “4개 사의 합의 통해 mpeg2 파일로 송출” 지난달 9일부터 13일까지 4박5일간 중국 북경에서 6자회담이 열렸다. 이번6자회담에서는 KBS, MBC, SBS, YTN 4개사가 HD카메라를 이용한 풀 취재를 하였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취재와 인...
    Date2008.09.01 Views9115
    Read More
  3. 생방송으로 전해진 우리의 땅 독도

    “생방송으로 전해진 우리의 땅 독도” 캡 : “태현아, 이번 주에 특별한 일 있냐?” 태현 : “아니요.” 캡 : “그래? 그럼, 독도 구경 다녀와라.” 태현 : “네, 알겠습니다.” 캡과 이 짧은 대화 후,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교과서에 자국영토로 명시함으로 인해 ...
    Date2008.08.30 Views8455
    Read More
  4. 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 독도를 다녀와서 - 독도로 가는 길은 예상외로 험했다. 동해의 묵호항이나 경북 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들른 다음 거기서 다시 세 시간 뱃길이다. 기상도 종잡을 수 없는데다 일반 항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접...
    Date2008.08.30 Views8236
    Read More
  5. 공정 보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좋은 경험

    제목 없음 “상상 이상의 취재 거부와 방해” 공정보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좋은 경험 5월3일, 처음으로 촛불집회 취재를 나갔다. 아직은 야간 취재에 익숙하지 않을 때라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당시에 촛불집회 취재가 어려웠던 이유는 야간 취재인데...
    Date2008.08.22 Views8351
    Read More
  6. No Image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목 없음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설 때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옆집 아이가 유치원 가방을 메고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참이다. 그들을 보고 나는 자연스럽게 ‘안녕’이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남자 유치원생의 머리카락은 무스를 발라 아침...
    Date2008.07.15 Views7906
    Read More
  7. 5.12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 '8'의 저주

    5.12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 '8'의 저주 “극도의 불안감과 압박감 엄습…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 취재진 전용기 - 14일 밤 중국 '청두(成都)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 출국 장소에서부터 비행기 탑승하기까지 현장에서 마주...
    Date2008.07.04 Views8003
    Read More
  8.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중국 지진 취재를 가서 여러 날을 머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칭촨현에서 머물었던 하룻밤이다. 지난달 21일, 중국에 도착한 지 나흘째, 우리는 지진 피해로 고립되었던 칭촨현으로 떠났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칭촨현으로 가는 길...
    Date2008.07.04 Views7359
    Read More
  9.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 취재기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싸이클론이 휩쓸고 간 미얀마. 외신을 통해 전해오는 미얀마 피해는 수 만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국제적 관심이 모아졌다. 5월 6일 갑작스런 미얀마 출장 지시를 받았다. 다음날 ...
    Date2008.06.26 Views7473
    Read More
  10. 한국 최초 우주인을 취재하고

    한국 최초 우주인을 취재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긴박한 러시아어 몇 마디가 흘러나오자 잠시 후 로켓은 그 몸체를 둘러 싸고 있던 지지대를 떨쳐버리고 불을 뿜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땅을 울리는 듯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
    Date2008.06.25 Views7950
    Read More
  11.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를 취재하고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르릉” “평양 좀 다녀와라.” ...“네...” 말끝을 흐리며 전화를 끊는 순간 3년 전 평양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설렘과 약간의 긴장, 같은 민족 간의 동질성과 이...
    Date2008.04.28 Views7570
    Read More
  12. 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Ⅰ> 숭례문의 마지막을 지키며 우리가 하는 일,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어야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대형 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현장에서도, 또 사건 유가족 취재와 같은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
    Date2008.04.28 Views7741
    Read More
  13. 사라진 숭례문, 우리 지성의 현주소를 보여줘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Ⅱ> 사라진 숭례문, 우리 지성의 현주소를 보여줘 2008년 2월 10일 밤 8시 50분경. 국보 1호가 불에 타기 시작했다. 내가 숭례문 현장에 도착한 것은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2-3분 간격으로 걸려오는 전화 속...
    Date2008.04.28 Views7850
    Read More
  14. No Image

    국보에서 잿더미로...

    <숭례문 화재 취재기 Ⅲ> 국보에서 잿더미로... 5일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 야간근무. 요란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린 건 저녁 8시 40분경.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회사라 한밤의 사이렌소리는 그다지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날만큼은 대...
    Date2008.04.28 Views7139
    Read More
  15. No Image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참사 -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이천화재 취재기 Ⅰ>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참사 이천 물류창고 화재 ‘이천에 있는 물류창고 화재. 10여명 부상 30여명 대피’ 무조건 이천으로 출발하라는 데스크의 지시와 함께 내가 들은 정보는 이게 전부였다. 화재가 발생한지 이미 수시간이 흘렀고 서...
    Date2008.02.18 Views8335
    Read More
  16. No Image

    그들이 정당한 보상을 바라는 이유

    제목 없음 <이천화재 취재기 Ⅱ> 그들이 정당한 보상을 바라는 이유 새벽 5시 30분. 차에 타고 나서야 취재를 시작한다. 조간을 뒤지고 6시 라디오 뉴스의 볼륨을 높이고. 사망자 수를 확인한다. ‘30여명이라.’ 머릿속으로 현장을 그린다. 창고, 비상구, 용접,...
    Date2008.02.18 Views6887
    Read More
  17. No Image

    대선 취재가 남긴 숙제들...

    제17대 대통령 선거 취재를 마치고 대선취재가 남긴 숙제들… 17대 대선이 끝났다. 이는 우선 각 캠프별 일정이나 브리핑 메일, 문자메시지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 것에서 우실감할 수 있었다. 당선된 쪽에서는 축제분위기가, 낙선된 쪽에서...
    Date2008.02.13 Views6829
    Read More
  18. No Image

    국내 최대 원유 유출 사고 그 10일 간의 기록

    제목 없음 <태안 기름 유출 사태 취재기 Ⅰ> 국내 최대 원유 유출사고 그 10일간의 기록! 12월 7일 오전 7시 50분 취재기자 선배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항해 중이던 홍콩선적 14만6천t급 유조선이 삼성중공업 ...
    Date2008.02.13 Views6914
    Read More
  19. No Image

    절망의 태안 바다에서 희망의 햇살을 보다

    <태안 기름 유출 사태 취재기 Ⅱ> 절망의 태안 바다에서 희망의 햇살을 보다 3주 만에 달콤한 휴식을 맛보고 있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푸른 녹차밭과 깨끗한 강이 보이는 시골 찻집.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 날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가 이어지다 화...
    Date2008.02.13 Views6815
    Read More
  20. No Image

    최초보고, 일본 자위대 이렇게 만들어진다

    <취재기> 최초보고, 일본 자위대 이렇게 만들어진다 군대 아닌 군대, 자위대 자위대! 군대가 아니면서 최신 이지스함과 잠수함 그리고 최첨단 비행기로 무장한 군대 아닌 군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로 상징되며 동북아시아 긴장을 고조시키는 두려운 조직! 우...
    Date2008.02.05 Views7047
    Read More
  21. No Image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 그 중심에 내가 서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 그 중심에 내가 서있다 만세 ~~ 만세~~ 평양 시민들의 함성소리가 시작되었고, 북한의 심장 평양에 내가 서 있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4.25 문화회관 앞 수십만의 군중과 검은색 세단에서 내린 김정...
    Date2008.01.12 Views653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