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1 01:57

중계차 줄행랑사건

조회 수 106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동북부 지역 취재를 마치고 영상송출을 위해 영사관이 있는
센다이 시내로 복귀하는 길.
로밍서비스를 통해 휴대폰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다.
“현지 중계차 철수로 송출 불가. 각자 현 위치에서 가능한 인터넷 송출 방법 강구 바람”
일본 전역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의 위험 경고가 반복적으로
방송되던 날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더니 이 무슨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본 결과 영상송출을 담당해 주기로 계약된 일본 현지 중계팀이
비내리는 날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지역에서 멀지 않은 센다이에 머물고 있는 상태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철수해 버렸고 현재 돌아오라는 우리 취재팀의 회유에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 설명을 듣고 보니 결국 목숨이 귀해서 도망갔다는 것인데....
목숨이 귀해 도망갔다는 데에 딱히 뭐라고 비난할 논리도 없는 것 같고, 한편 현지인도
도망간 지역에서 지금 나와 동료들은 뭘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도, 그나저나 통신도
잘 안되는 지역에서 영상송출을 어째야 하는 건가 캄캄하기도 하고, 또 입사 십년차가 되니 중계차가 도망가는 별별 희한한 상황도 다 겪어 보는 구나 싶고.
어쨌든 취재팀들은 각자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어찌어찌 무사히 영상 송출을 마쳤다.
그날밤 동료들과 자판기에서 뽑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중계차 줄행랑 사건은 황당하고 재미있는 안주거리가 되어 술자리에서 회자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후쿠시마 인근을 촬영했던 kbs 카메라 감독이 피폭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니 당시 중계차 줄행랑 사건이 새롭게 다가온다.
위험 지역에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신체를 노출한 채 일과 시간에 쫒기며 냉정한 판단을 보류해야 하는 우리의 취재현실.
후쿠시마 지역 취재팀을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 은근히 느껴지던 불안간과 긴장감.
정확한 현지 상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일단 장비부터 들고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분위기.
정확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만일 당시 일본 현지 중계팀이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한 철수결정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면?
술자리의 우스개 농담과는 별개로
어쩜 그들의 판단이 더 정확하고 용감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설치환 SBS 영상취재팀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스위스취재기> "빅토리녹스, 작지만 커다란 꿈을 만드는 공장" file 2014.11.18 7552
MBN수습취재기 - 종이와 펜을 든 수습촬영기자 2014.11.18 2616
KBS 전문가 파견교육 후기 -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연변에서의 강의 file 2014.11.18 7281
[특별기획-브라질 월드컵] 응원석 태극기가 펼쳐질 때의 뭉클함을 잊을 수 없어 file 2014.08.13 7697
[특별기획-브라질월드컵] 4년 후 승리의 포효를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file 2014.08.13 7430
[특별기획-브라질월드컵] 포르투알레그리에서의 3일 file 2014.08.13 7353
<진도 팽목항 취재후기>치유의 밀물, 우리의 역할이다 file 2014.08.13 7504
<7.30 재보궐선거> 20년 이상 지속되어온 지역구도의 벽 무너져 file 2014.08.13 7629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지방 선거 2014.08.13 1818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취재후기 file 2014.05.21 8567
세월호 침몰 사고가 언론에 준 숙제 file 2014.05.21 8366
모두를 잃어버린 세월호 참사 현장 file 2014.05.21 8128
진도 팽목항 그 곳은... file 2014.05.21 7930
참혹했던 베트남 쓸개즙 관광 file 2014.03.21 10607
초보 카메라기자의 제주 적응기 file 2014.03.21 8732
잠 못 드는 취재 288시간 file 2014.03.21 8907
폭설취재기 -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예요' file 2014.03.21 9317
이산가족 상봉취재기 - 60년만에 허락된 만남 file 2014.03.20 8678
마우나리조트 취재기 - 대형참사 속 배운 소명의식 file 2014.03.20 8327
소치 동계올림픽 취재기 - 온몸으로 즐기던 축제, 그리고 옥의 티 file 2014.03.20 8635
필리핀취재기 -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 file 2013.12.17 10200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