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3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noname01.jpg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TV화면으로만 보던 폐허 속에서 제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감이 오지 않아 답답했다. 축적된 경험이 없었기에‘ 현장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 상황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들어가는 일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팔루 공항 사정으로 인해, 이미 체크인까지 끝낸 비행기가 지연-취소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육로를 통해 910km, 장장 21시간의 여정을 거쳐 출발 3일 만에 팔루에 진입하였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가는 동안에도 틈틈이 취재를 하며 ‘마카사르에서 팔루까지 들어가는 여정’ 자체를 하나의 르포로 만들었다.

 

취재 전에 느꼈던 막막함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사라졌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동갈라를 지나 팔루로 들어가며 눈으로 목격한 재난 현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처참하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팔루에 며칠을 머무르는 동안‘ 아비규환’‘, 생지옥’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갈가리 찢어발겨진 도시, 무참히짓밟힌 주민들의 일상. 한 걸음씩 시선을 내딛을 때마다, 허무하게 스러져 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 ‘사람’들이 있었다. 꿈에서 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있는 주민들은 주검이나 짐승이 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몇 시간씩 줄을 서 기름을 구매했고,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챙겼으며, 낯선 취재진에게 미소와 함께 부족한 식량과 물을 기꺼이 내주었다. 저는 그들을 보며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뼈저리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살아남은 그들에게 감사했고, 그들이 끝끝내 인간이기를 기도했다.

 

그림 이전에 사람

 

 이번 출장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한국인 실종자 이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상황을 취재 할 때였다. 당시 저는 로아로아 호텔에 머무르며 이 씨 어머님의 현장 수색 참관을 커버하는 중이었다. 이틀 간 다수의 시신이 실려 나오고 매번 지퍼를 열어 시신의 신원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촬영하는 동안 시취(屍臭)가 옷에 밸 정도였다. 하루 종일 굶은 채 땡볕에 서 있는 것에 지쳐 갈 때쯤, 현장 잔해를 치우던 포클레인에 사람의 다리 하나가 걸리는 것을 포착하고는 이상한 느낌에 그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을 전부 카메라에 담았다.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들고 내려오며“ 꼬레아, 꼬레아!”를 외치는 순간, 그 시신이 한국인 실종자 이 씨임을 직감했다. 온몸에 긴장이 엄습했다. 현장에 한국 언론은 나 혼자이기에 더더욱 그 현장을 제대로 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 씨 어머니는, 이미 심하게 부패하여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아들의 주검 앞에서 혼절 직전까지 오열하였다. 통화조차 어려운 열악한 통신 환경 속에서 겨우겨우 취재 영상을 송출한 뒤에야 숨을 고르며 그림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오열하는 어머니의 영상 속에서 ‘그림’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40년 가까운 삶을 살을 부비고 애정을 나누며 함께 했을 저 두 분은 지금껏 서로 어떤 추억을 가슴 속에 담아왔을까, 오늘 저 만남이 마지막 기억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시신들을 보며 느꼈던‘, 죽음’이란 선택지를 받아든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슬픔이었다. 그들은 그림 이전에 사람이었다. 그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새삼스레 상기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은 채, 끊임없이 나오는 시신 가방과 붕괴 현장 위로 야속할 만큼 평화롭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영상기자로 사는 것’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직업인지,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카메라로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가짐을 그 석양 속에 아로새겼다.

 

 팔루를 떠나 서울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매일 문득문득, 또는 석양을 볼 때면 그 어머니가, 아들이, 팔루의 주민들이 떠오른다. 첫 출장의 강렬한 기억을, 사람임을, 그 날의 배움을, 오래오래 잊지 않을 것이다.

 

 

 

김동세 / MBC    MBC 김동세 증명사진.jpeg


  1.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독도 고유 식물 취재기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독도 고유 식물 취재기 섬기린초, 섬초롱꽃, 섬괴불나무. 처음듣는 생소한 식물. 그러나 이름에서 느낌이 오듯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식물이다. 다시말해 일본에서는 볼 수 없고,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식...
    Date2013.07.30 Views11579
    Read More
  2. 원희룡 광복절 축사 논란... 현장취재 뒷이야기

    원희룡 광복절 축사 논란... 현장취재 뒷이야기 ▲ 지난 8월 15일일 제주 조천읍 조천체육관에서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다. 광복회 제주지부장이 대독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듣고 있는 원희룡 지사(사진 왼쪽), 이날 행사에 참석한 독립유공자...
    Date2020.09.11 Views419
    Read More
  3. No Image

    유비무환 (有備無患), 위험지역 취재 문제없다!!

    유비무환 (有備無患), 위험지역 취재 문제없다!! KBS 위험지역 취재·제작 연수를 다녀와서 “임마! 일하러 나가면 항상 몸 조심하구! 알았지?” 부모님께 안부전화 드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듣는 말이다. 걱정 마시라며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편...
    Date2011.11.17 Views4248
    Read More
  4. 의견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공존-보수 단체 집회 취재기

    의견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공존-보수 단체 집회 취재기 지난 토요일(12월17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보수단체의 집회 인원이 많은 날이었다. 안국역에서 경복궁 오른쪽을 돌아 다시 안국역으로 돌아오는 행진 인원들은 거짓말 안 보태고 10만 명은 되어 보였...
    Date2017.04.21 Views1917
    Read More
  5.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평양 공연를 취재하고 “이념의 벽을 넘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르릉” “평양 좀 다녀와라.” ...“네...” 말끝을 흐리며 전화를 끊는 순간 3년 전 평양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설렘과 약간의 긴장, 같은 민족 간의 동질성과 이...
    Date2008.04.28 Views7572
    Read More
  6. 이산가족 상봉 취재... 어떻게 해야 하나?

    이산가족 상봉 취재... 어떻게 해야 하나? 2006년 3월 23일. 제 1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공동취재단은 결국 철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공동취재단의 이러한 결정은 50여년 만에 혈육의 정을 나누는 뜻 깊은 이산가족 행사를 국민들에게 상세히 취재 및 ...
    Date2006.04.18 Views7659
    Read More
  7. 이산가족 상봉취재기 - 60년만에 허락된 만남

    11년 만이다. 다시 금강산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2003년, 우연치 않은 기회로 금강산을 다녀 올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 되고 경색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언제 한번 다시 금강산을 가보나 했다. 그런데 11년 만에 기회는 찾아왔다...
    Date2014.03.20 Views8678
    Read More
  8. 이집트 출장 지원자를 받습니다.

    이집트 출장 지원자를 받습니다. 여느날과 다름없는 일상의 아침은 짧은 문자와 함께 요동쳤다. 무라바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그 시점이었다. 기자로서 이런 역사적 순간에 국제적 수준에서 취재할 수 있다는 것...
    Date2011.03.26 Views11986
    Read More
  9. 익숙함, 설렘

    익숙함, 설렘 ▲보신각 앞에서 취재하는 필자 2021년, 조용한 새해가 밝았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해가 바뀌는 그 순간, 보신각 제야의 종은 울리지 않았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지난 1953년부터 한 차례 중단 없이 계속 이어져 왔지만, 이번에는 ...
    Date2021.03.11 Views416
    Read More
  10. No Image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인도 캘커타의 ‘소나가치’라는 홍등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도 규 만 | (에센스21 PD)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은 도규만 PD가 모 일간지의 외신란에 난 기사를 보고 기획했다. 촬영장소는 소나가치였는데 이곳은 한국의 미아리, ...
    Date2003.07.08 Views8727
    Read More
  11. 인도네시아 다문화가정 취재기 - 엄마의 나라를 찾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인도네시아 여행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그러나 서점 어디에도 인도네시아 여행에 관련된 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휴양지인 발리에 관한 책만 몇 권 있을 뿐이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도시국가...
    Date2009.10.16 Views10696
    Read More
  12.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Date2018.12.19 Views331
    Read More
  13.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 우리는 행복한 곳에서 산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2011년 3월11일 15시30분쯤,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 “지금 인터뷰하러 서강대에.....” “너 지금 일본가야 하니깐 그냥 빨리 들어와...
    Date2011.05.21 Views11220
    Read More
  14. No Image

    일본러브호텔

    일본 러브호텔을 돌아보고 ( 2000년 10월 ) -------------------------------------------------------------------------------- KBS 영상 취재부 유민철 기자 지금 고양시에서는 러브호텔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시에서는 화들짝 놀라 이미 내 준 허가를 ...
    Date2003.02.24 Views9030
    Read More
  15. No Image

    잊혀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 장달웅/EBS 촬영감독 나른한 토요일 오후, 주말이면 늘 텅비어 있는 편집실에 앉아 프롤로그 몇 컷트만 붙히다, 더 이상 머릴 짜 내어봐도 진전이 없어, 잠시 휴식을 취해보기로 한다. 그 사이 비가 왔나보다. 때늦은 비는 애꿎은 꽃잎만 ...
    Date2003.02.24 Views7258
    Read More
  16.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 대구카톨릭대학병원에서 확진자 병동 촬영 준비 중인 필자 (MBN 김형성 기자) 어느새 코로나와 맞는 두 번째 봄. 여전히 하루 300~400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KF94 마스크를 쓴 채이지만 기나긴 겨울을 견...
    Date2021.05.06 Views471
    Read More
  17. 작전중인 군과 취재진은 협력관계 유지해야

    지난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감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의 도발소식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퍼진 이후 온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고, 이를 취재하고 방송하는 기자들은 그들만의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했다. 어렵사리 연평도에 올라...
    Date2010.12.16 Views12157
    Read More
  18. 잠 못 드는 취재 288시간

    수습 취재기자 동기들과 함께 서울지역 경찰서로 투입된 지 3일차, 나는 강남라인 배치 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시간마다 라인 선배에게 특이사항과 경찰서를 돌며 알아낸 정보를 보고한다. 혼자서 ‘형님’이라 불리는 취재원 경찰들과 부딪치며 하루 1...
    Date2014.03.21 Views8906
    Read More
  19. 재난현장의 슈퍼맨

    재난현장의 슈퍼맨 ▲ 포항의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푯말 <사진>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을 구하기 위해 슈퍼맨이 출동한다. 슈퍼맨.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지만 행성이 위험에 빠졌을 땐 언제 어디에서든지 빨간색 망토...
    Date2020.11.18 Views346
    Read More
  20. 저곳이다! 황장엽안가를찾다

    제목 없음 저곳이다! 황장엽안가를찾다 사건 캡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 황장엽씨가 사망했고 안가를 찾아 취재를 해야 한다. 주소는 논현1동!”번지수 없는 논현1동 하나로 보안 속에 둘러싸인 황장엽씨 안가를 무작정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
    Date2010.11.16 Views10890
    Read More
  21. 저는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가에 나와 있습니다

    [현장에서] 저는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가에 나와 있습니다  “진짜 가는 것, 맞아?” 짐을 싸던 아내가 몇 번을 물었다. 서둘러 옷가지를 챙기고 나서,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을 때쯤이었을까. 말없이 짐을 같이 챙겨준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에 고인 눈...
    Date2023.11.15 Views14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