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후 자가격리기(記)
코로나를 뚫고 해외 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목적지는 미국. 코로나 공포가 한창이던 5월 초였다. 항상 붐비던 인천공항은 고요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코로나 19와 무관하다는 검역당국의 확인증 발급.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코로나 19와 무관하다는 증명서를 작성한 뒤에야 출국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우리나라가 얼마나 방역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미국에 입국할 때에는 출입국 사무소에서 체온 측정 한번 한 것이 전부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체온 측정과 설문지 작성뿐만 아니라 실제 거주 할 곳의 주소 기입, 자가격리 안심 어플 설치 등을 필수적으로 실시해야 했다. 물론 입국 절차를 거치며 거주지 주소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적으며 이 주소를 왜 이렇게 반복해서 적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방역을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 공무원과 관계자들을 위해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보건소에 들러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본격적인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도저히 격리시설에서 2주간 머무를 자신이 없어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출장 장비 소독이었다. 사실 보통 출장을 다녀오면 장비를 회사에 반납하고 파일 인제스트를 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비 어딘가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어있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배터리 접촉 부분 등 전기가 닿는 부분과 렌즈 부분을 제외하고 집에서 방역 도구를 이용하여 1차로 소독을 마쳤다. 외장하드와 노트북에도 이중으로 백업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뒤에 회사에 연락하여 장비를 반납하고 파일을 넘겼다. 장비를 가지러 집으로 찾아온 촬영보조친구의 다소 겁먹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촬영보조 일을 하는 친구에게 회사에 도착하는대로 다시 한번 소독을 하고 난 뒤에 장비 반납을 하라고 일러두었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집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2주 내내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입국 다음 날 구청 보건소에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외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집 밖에 나선 즉시 휴대폰에서 자가격리 위반 알림이 울렸고 이내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느 날은 초인종이 울리길래 ‘집에 올 사람이 없는데..’ 생각 하고 문을 열어보니 관할 구청 공무원이 집으로 찾아왔다. 자가 격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불시에 방문을 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 사진과 나의 얼굴을 몇 차례 번갈아보며 응시하고는 떠났다. 휴대폰에 자가격리자 안심 어플을 설치할 때 허용 권한으로 위치정보, 통화내역, 문자메시지 등을 열람할 수 있다고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문제가 생긴 경우에 살펴보기 위해서였겠지만, 2주 내내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거라 생각 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통화를 하고 있는 것도 듣진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며칠 뒤에 구청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심리지원을 시행하고 있다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자가격리 기간동안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는 사람들의 기사를 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고 산책이라도 다녀오는 게 집에서 가만히 있다가 미쳐버리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온 나라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나도 조금만 힘내서 버티자 다짐하며 하루하루 마음을 굳게 먹고 버텨나갔다.
5월 22일 0시 0분, 드디어 자가격리가 해제되었다. 그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에 집에서 나왔다. 3시간 일찍 출근해서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샐러드와 커피를 마시며 바깥 공기와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절절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는 자가격리를 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다짐했다. 회사에 돌아오자 반갑게 맞아주는 동료들의 인사가 고맙고 반가웠다. ‘재현 씨는 집에 있는 것 원래 좋아하니까 잘 지냈 지?’라는 질문에 자가격리의 어려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자유의 소중함과 외출의 즐거움. 자가격리를 통해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김재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