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OVER THE TOP, OVER THE VIDEO JOURNALIST
WAVVE 탐사보도프로그램 ‘악인취재기’의 취재기
1분 30초, 그 너머를 보다 : RT 50분 10부작
진흙밭을 구르더라도 좀 더 자유롭고 직관적인 취재를 하고 싶은 욕망, 영상기자라면 누구나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을 것이다. OTT 플랫폼으로 방영되는 탐사프로그램 제작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가슴이 뛰었다. ‘보도국 소속 영상기자 최초 OTT 제작 참여’라는 타이틀보다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방송이라는 틀 안에 갇혀 할 수 없었던 직관적인 취재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악인취재기 1편 정유정 편은 확보된 영상이라고는 정유정 공판 출석 장면, 변호사 인터뷰, 사건현장 스케치가 전부였다. 어떻게 50분짜리 탐사프로그램 두 편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고심 끝에 네 가지 큰 줄기를 정했다.
첫 번째, 정유정 가족, 특히 정유정의 아버지를 무조건 만나서 인터뷰한다.
두 번째, 살해 및 유기장면, 사건동선 등 존재하지 않는 영상은 재연으로 제작한다.
세 번째, 인서트 영상을 다양한 장비와 구도로 최대한 많이 촬영한다.
네 번째, 기자와 전문가 인터뷰는 장비와 구도를 정형화 시켜 10부작 악인취재기만의 독창적이면서 통일성을 갖춘 영상을 구현한다.
한 달 보름동안 거처를 부산으로 옮기고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심정으로 곳곳을 찾아 다녔다. 영상기자라면 누구나 잘할 수밖에 없는 그것, ‘뻗치기’의 무한 반복 끝에 정유정의 아빠를 만날 수 있었고 인터뷰도 성공했다.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아버지 본인의 범죄 사실과 정유정의 유년시절, 가족 간의 사연) 을 통해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가며 퍼즐을 맞추듯 영상을 구현해 갔다. 필요한 인서트 영상들은 차트를 업데이트하며 차곡차곡 데이터베이스를 채웠다. 드론, 고프로, 360카메라 등의 인서트 영상이 편집단계에서 많이 활용됐다. 남은 퍼즐 한 조각 ‘재연’. 재연은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연출의 영역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영상을 구현해 내야 하는 과정에서 비보도국 PD와 보도국 영상기자가 서로의 관점 차이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이 있었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과 정유정의 동선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지만 일정 부분은 ‘이렇게 했을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등의 추측을 영상으로 구현해야 했다. 이런 제작방식이 자칫 보도윤리에 벗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과 고민에 휩싸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협회에서 배포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장취재 시 촬영장비는 기본 ENG를 비롯해 드론, 고프로, 360카메라, 필요에 따라서는 휴대폰으로도 촬영을 했다. 스튜디오 인터뷰들과 재연촬영은 SONY FX3, CANON 5D MARK-4에 시네마렌즈를 주로 사용했다. 부수장비로는 짐벌, 숄더마운트+팔로우포커스, 틸트집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조명도 직접 운용했다.
세상은 넓고 악인은 많다
영상기자 입장에서 악인취재기의 백미는 브라질 현장취재였다. 악인취재기 4, 5편 ‘돌나라 오아시스’ 편은 영상기자가 PD 역할까지 병행했다. 막중한 임무를 갖고 국내에서 성범죄를 저지르고 브라질로 도주한 교주를 찾아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돌나라 오아시스라는 사이비 종교 교주 박명호가 숨어들어 간 곳은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고속도로를 12시간 달리고 비포장도로를 4시간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었다. 돌나라 신도들은 계속 우리 취재진을 위협했다. 몸싸움과 욕설은 예삿일이었고 손에 집히는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신변의 위협을 가하며 취재를 방해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터운 철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지만 드론을 이용해 박명호 교주가 숨어든 내부 시설과 광활한 농장을 촬영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돌나라에서 일어난 어린아이 5명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브라질 현지 경찰, 검찰, 법원 관계자들을 만났고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착취, 아동문제, 성범죄 등의 실상이 제대로 수사되고 있는지 취재했다.
주 브라질 한국 대사관과 교민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브라질 검찰에서 돌나라 오아시스의 여러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 벌금부과 및 국외 추방을 위해 자산을 동결했다는 사실과 관련 자료를 단독 입수! 영상기자의 프로듀싱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지 않도록 악착같이 취재한 성과였다.
NEXT LEVEL
영상기자는 촬영기자인 동시에 연출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연출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취재동선을 설정하고 취재기자와 스태프를 이끌며 날씨, 배경, 조명, 바람, 햇빛 등 아주 디테일한 하나하나까지 우리는 그 누구의 컨펌 없이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 각 방송국 내 그 누구보다 탁월한 현장 연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을 제작에 활용하면 영상기자 그 너머의 NEXT LEVEL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방송 뉴스가 플랫폼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메인 뉴스는 쪼개고 쪼개져 숏폼과 짤들로 최대한 짧고 빠르게 전달되는 한편, 반대로 그 짤들을 모으고 모으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 사람들이 봐주길 애원한다. 나에겐 ‘악인취재기’가 그랬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능력들로는 모자라 영혼까지 쥐어짜 취재하고 촬영하고 제작했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셋톱박스 너머의 세상을 보듯, 영상기자 너머의 광야를 달려보자.
P.S. ‘악인취재기’는 지금 WAVVE에서 절찬리 방영 중이며 여전히 영혼까지 끌어모아 시즌2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JTBC 김영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