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8 09:12

봉하마을 취재기

조회 수 458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수정 삭제



“저희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전대통령)의 소환에 날짜가 다가오자 봉하마을의 취재 열기는 뜨거워졌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수장이었던 한 사람의 비리 의혹과 진실에 대해 궁금했고 이에 부응해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을 맞춰 머리기사로 다뤘다. 마당을 산책하면서 찍힌 사진은 ‘수심이 가득한 전 대통령’이라는 꼬리말을 달고 대중에 공개되기도 하였다.

4월의 봄기운이 가득한 어느 날, 기약 없는 출장을 떠났다. 노전대통령이 소환되는 날까지 봉하마을을 지키기로 하였다. 출장의 가장 큰 목적은 노전대통령의 수심 가득한(?) 얼굴 표정을 담는 것이었다. 벌써 몇 일째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있었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안에만 있는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노전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주민들에게 언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내에서의 취재 협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전 대통령 집 정문이 보이는 곳에 진을 치고 있는 취재진들을 트랙터로 쫓기까지 하였다. 주민들의 행동이 못 마땅하게 보였지만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높은 곳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사저 뒤쪽 봉하산 꼭대기의 사자바위와 정면으로 보이는 과수원 중턱이 그 대표적인 취재 장소가 되었다.

봉하산 꼭대기는 봉하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노전대통령 집을 훤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한두 번 정도 언론에 공개된 후 커튼 등으로 완벽하게 가려져 집안은 볼 수 없었다. 아침에 올라가서 망원을 장착하고 마치 저격수인양 엄폐한 상태에서 뷰파인더를 보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노전대통령의 그림자는 얼씬 거리지도 않았고 그러기를 며칠 동안 반복하였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선놀음을 하는 듯싶었으나 그 무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서울보다 남쪽에 있어서 일까? 태양과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일까? 4월의 봄이라고 하기엔 너무 따가운 햇빛과 무더운 날씨였다. 서울과 다르게 가로등이 없는 이곳 시골마을은 해가 반대 산 너머로 사라지면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에 하산을 해야만 하고 그 시간이 곧 퇴근 시간이 되었다.

며칠이 지난 뒤 그날도 어김없이 산위에서 뻗치기를 할 때였다. 다른 때와 다름없이 무료하게 퇴근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전화를 통해서 노전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최근 심경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기자들이 산위에서 까지 지키고 있어 사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그런 본인의 집을 감옥에 비유하기 까지 하였다. 기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산 정상에서 철수하고 내려가서 다른 기자들과 토론을 시작했다. 취재의 목적, 정당성, 인권침해 등등... 취재과정에서 과열 양상이 벌어지면서 취재 대상이 되었던 노전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피해자 아닌 피해자가 된 것이다. 각 언론사의 이해관계도 있으니 각자 이 상황을 회사에 보고하고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토의 결과를 노전대통령 측과 마을 주민에게 통보해주었다. 김경수 비서관을 통해서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답신이 돌아왔고 대신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을에서 취재하는데 큰 제약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합의했다.

개인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엄연히 인권침해이다. 인권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역지사지’이다. ‘내가 싫은 것은 남들도 싫을 것이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면서 주관적 생각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사생활이 존중 받고 싶은 만큼 남도 생각해주자는 ‘역지사지’의 방법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홍종수 기자 smilinghong@sbs.co.kr




  1. 서울 영상기자에게 지역 뉴스 제작 경험이 필요한 이유 - <MBC 김준형 / MBC 서울-지역영상기자 교류 프로그램 참가기>

    27Jun
    by
    2024/06/27 Views 21 
  2. YTN, 결국 민영화되나… 유진그룹, 한전KDN·마사회 지분 3199억에 낙찰

    15Nov
    by
    2023/11/15 Views 158 
  3. 공영방송 구조개선법은 거부하고 방통위원장 자리엔 선배 검사 지명

    21Dec
    by
    2023/12/21 Views 162 
  4. 사진으로 보는 2023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

    21Dec
    by
    2023/12/21 Views 163 
  5. No Image

    한국영상기자협회·5.18재단, 시상식 전후로 다양한 특별 행사 개최

    20Nov
    by
    2023/11/20 Views 166 
  6. 아소의 망언과 실언

    15Nov
    by
    2023/11/15 Views 182 
  7. No Image

    ‘이태원 참사’ 취재로 트라우마 겪고 있다면?

    28Dec
    by
    2022/12/28 Views 186 
  8. “언론이 작고 위태로운 성냥일지라도 그것이 없다면 어둠은 훨씬 커질 것”

    29Jun
    by
    2023/06/29 Views 189 
  9. 아소 가계, 1000년의 조선 국유림을 왜 파괴했는가

    31Aug
    by
    2023/08/31 Views 189 
  10. No Image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스라엘-하마스전쟁 평화, 안전, 환경의 위험 높았던 2023년

    21Dec
    by
    2023/12/21 Views 190 
  11. No Image

    법사위에서 잠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법안

    28Dec
    by
    2022/12/28 Views 193 
  12. No Image

    이동관 방통위원장 공영방송 “가짜뉴스확산, 국론분열시켜와” 대대적 구조개편 예고

    31Aug
    by
    2023/08/31 Views 195 
  13. 전쟁 취재하면 형사처벌?

    28Jun
    by
    2023/06/28 Views 197 
  14. 전쟁, 인권, 언론자유 기자정신을 깨우다

    20Nov
    by
    2023/11/20 Views 202 
  15. 윤 대통령, 금명간 이동관 방통위원장 지명할 듯

    29Jun
    by
    2023/06/29 Views 205 
  16. No Image

    윤 대통령, 도어스테핑 중단·신년 기자회견 보류, 공식일정 취재 ‘제한’ 늘어나

    28Dec
    by
    2022/12/28 Views 206 
  17. 수상자들, 김진표 국회의장 격려간담회, 5.18민주묘역 헌화행사

    02Nov
    by
    2022/11/02 Views 210 
  18. JTBC, 11월 5일까지 희망퇴직 접수… “적자 책임 직원에게 돌리나” 구성원 강력 반발

    15Nov
    by
    2023/11/15 Views 211 
  19. ‘올해의 힌츠페터’는 누구? - ‘2023힌츠페터국제보도상’ 경쟁부문 심사 완료

    31Aug
    by
    2023/08/31 Views 213 
  20. 일본과 독일의 정치 지도자의 역사인식

    21Dec
    by
    2023/12/21 Views 21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