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8 16:24

재난현장의 슈퍼맨

조회 수 34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재난현장의 슈퍼맨

 

재난현장의 슈퍼맨.png

▲ 포항의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푯말 <사진>

 

 

 멸망 위기에 처한 크립톤 행성을 구하기 위해 슈퍼맨이 출동한다. 슈퍼맨.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지만 행성이 위험에 빠졌을 땐 언제 어디에서든지 빨간색 망토를 휘날리며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악당을 퇴치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은 사건 현장에서도 슈퍼맨을 볼 수 있다. 결국 두 팔 벌려 하늘을 날았던 슈퍼맨은 임무를 완수하고 크립톤 행성을 지켜낸다.


 면접장에서, 매번 카메라를 짊어진 슈퍼맨이 되겠다고 나는 말했었다.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의 중심에 서고 싶었고 어떤 현장이든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건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슈퍼맨 영상기자다.
 

 입사 후, 주로 사건사고 현장 한가운데 있었던 내 모습은 슈퍼맨은 아니었다. 특히 태풍과 같은 재난 현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거센 바람이 온몸을 강타할 때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을 꿈꿨지만, 현장에서는 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빨간 망토도 없었다.
 

 영상기자에게 때때로 안전과 영상의 퀄리티는 반비례하기도 한다. 안전보다는 영상에 치우쳐지기 마련이다. 현장은 마냥 영상기자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현장의 상황을 신속하게 영상으로 담아내야만 한다. 재난 현장의 위험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위험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지난 9월, 태풍 마이삭 현장. 이른바 ‘태풍 추적조’, 즉 태풍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피해 상황을 취재하는 임무를 맡았다. 태풍 동선을 쫓아 피해 현장을 촬영하다 보니 어느 순간엔 취재진이 태풍보다 앞서 도착해서 태풍을 기다리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동 중 고속도로에서 널브러져 있는 커다란 나무판자를 피하려다 옆 차량과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고 거센 바람에 날아든 각목이 취재차량 앞 유리를 강타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위험하고 아찔한 상황이었다. 동시에 태풍 상황을 잘 보여주는, 소위 그림 되는 것들이기도 했다. 이 영상은 모두 당일 메인 뉴스에 방송되었다.
 

 영상기자가 재난 취재 현장으로 나가기 전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몸 조심해라.”
 

 “안전이 우선이다.”
 

 “욕심내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라.”
 

 현실은 어떤가? 안전모 하나를 생명의 끈처럼 생각하며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이것은 모든 영상기자의 숙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취재진의 안전이 화두가 되기도 한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중계현장에서 안전 문제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건물 안쪽으로 몸을 피해 다시 중계를 이어가겠다고 한 경우도 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거나 웅장한 뉴스를 원하지 않는다. 단조롭더라도 현장의 사실성이나 진실이 담백하게 담겨 있는 영상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태풍 현장에서 항상 기자 중계나 리포트를 보고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인다는 시청자들의 지적과 댓글이 이를 보여준다.
 

 영상기자는 재난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 현장에서 슈퍼맨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안전도 지켜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현장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신속한 송출과 MNG 중계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현장의 책임은 점점 녹록하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재난 현장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을 달려왔다. 우리가 현장에 가는 목적은 현장과 진실을 알리려는 데 있다. 이것은 취재진의 안전이 뒷받침된 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취재진의 안전이 없다면 시청자의 안전을 위한 정보 제공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양현철 / SBS (사진) 양현철 증명사진.jpg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file 2024.05.08 14
타이완 지진. 언론인으로서의 '선택과 소회' file 2024.05.08 43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류최악의 원전사고, ‘체르노빌원전사고’를 알린 네 명의 영상기자들 file 2023.11.20 63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Inside Russia: Putin’s War at Home)” file 2023.11.20 84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바흐무트 전투(The Battle of Bakhmut)” file 2023.11.20 91
모든 것이 특별했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file 2023.11.15 104
2023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도 광주처럼] file 2023.12.18 107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러시아의 소프트파워 (Russian Soft Power in The CAR)” file 2023.11.20 108
지역에서는 이미 불거진 문제, 아쉬움만 가득한 잼버리 조기퇴영 file 2023.08.31 120
저는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가에 나와 있습니다 file 2023.11.15 134
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file 2023.12.21 165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file 2023.08.31 167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file 2022.11.01 174
"기후위기 시대의 영상기자’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 file 2023.08.31 182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file 2022.12.28 191
“후쿠시마 오염수, 서로 다른 체감온도” file 2023.08.31 199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발표 취재기 file 2023.12.21 204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file 2022.11.01 206
[현장에서] ‘세계적 보편성’ 인정받은 ‘세계의 지역성’ …‘ATF2022’와 다큐멘터리 ‘화엄(華嚴)’ file 2023.03.03 229
[현장에서]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file 2022.07.01 234
외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시각의 전쟁 취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file 2023.12.21 25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