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대장이 제 2캠프 도착 바로 전에 실족해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산소 부족으로 가뜩이나 머리가 띵-했는데 옆에서 전해오는 본부의 무전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멍해지며 아뜩해졌다. 바로 몇 시간전에 낭가파르밧 정상을 정복하고 우리와 무전 인터뷰까지 했던 고대장이 실족해서 몇 천 미터인지도 모를 산 밑으로 추락했다니...

지난 7월 6일, 김한성 부장과 강재훈 취재기자 나, 지원팀 두 명으로 꾸려진 취재진은 8,000M급 11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 등정에 나선 고미영 대장을 취재하러 출발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부의 칠라스를 거쳐 3일간의 등산과 야영 끝에 도착한 낭가파르밧 4,200M 베이스캠프. 도착한 10일 저녁, 정상 정복에 성공한 고대장은 하산하면서 기상악화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무사히 4캠프(정상에 가장 가까운 캠프)에 도착해 우리와 무전으로 인터뷰를 했다‘. 14좌 완등을 꼭 해내겠다.’,‘박영석 선배를 뛰어넘는 산악인이 되고 싶다.’인터뷰 내내 밝은 목소리로 자신의 목표와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베이스캠프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는데 제2캠프를 조금 남겨놓고 사고를 당해 결국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새벽, 비탄에 잠긴 등반 대원들이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고, 오후에 헬기 수색에 나섰다. 파키스탄 군의 지시를 받는 구조 헬기라 돈을 주고 부른다고 해도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조종사가 헬기에 한 명씩 탈 것을 요구했고, 등반대의 김재수 대장과 내가 한 대씩 나눠 타기로 했다. 내가 헬기에 올랐는데 대원 한 명이 다가와 자기가 타야한다고 했다. 그 대원은 윤치호 대원. 그는 고 대장이 떨어지던 순간 손으로 잡았다가 놓쳤던 대원이다. 가장 가까이서 고 대장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 본 안타까움에 누구보다 간절하게 헬기에 타기를, 자신의 눈으로 고 대장의 시신을 찾기를 원했다. 하지만 조종사가 기록을 위해 카메라맨이 타기를 요구했고 나는 안타까움에 울먹이는 윤 대원을 뒤로한 채 카메라를 준비했다.

헬기는 6,000M 높이를 오르내리며 시신을 찾았다. ‘그래, 이건 관광이 아니다.’나도 카메라기자가 아닌, 대원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시신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기를 20분, 고 대장의 시신을 찾았고 카메라에 담았다. 헬기에서 내려 촬영한 화면을 대원들에게 보여 주며 고 대장임을 확인했고, 그 화면은 주변 지형이 담겨있어 수습방법 논의에 활용되었다. 지금껏 실종된 시신을 찾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 하루 전 실종된 이탈리아 대원도 시신을 못 찾던 상황에서 그건 정말 기적이었다.

취재 대상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사건 속에서 취재를 하고 방송을 했다. 우리가 한 인터뷰가 마지막 육성이 되었고 우리는 얼굴 한 번 못본 채 리포트를 제작했다. 차디찬 얼음눈 위로 추락해 있는 고 대장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며칠 후 우린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왔다. 일정에 쫓겨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보지 못해서, 산을 내려오는 내내 아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국내에 들어와서 고 대장에 대해 더 많이 찾아봤고, 찾아볼수록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분의 도전 정신에 고개 숙여졌다. 또, 그동안 취재 대상에 대해 우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접근하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들었다.

낭가파르밧 정상 정복 후 짧은 인터뷰 중 고 대장이 한 인상적인 말이 있다. 14좌 완등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 대장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포기라는 건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다시 들어보니 이 말장난처럼 보이는 한 마디에 고대장의 강철같은 의지가 부담스럽지 않게 녹아있었다. 11번째 봉우리 낭가파르밧에서 운명을 달리한 故고미영 대장, 삶 자체로 보여준 도전 정신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상하 / KBS 영상취재국
upndown@kbs.co.kr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갔노라, 보았노라, 기록했노라" file 2024.05.08 11
타이완 지진. 언론인으로서의 '선택과 소회' file 2024.05.08 40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류최악의 원전사고, ‘체르노빌원전사고’를 알린 네 명의 영상기자들 file 2023.11.20 63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Inside Russia: Putin’s War at Home)” file 2023.11.20 84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바흐무트 전투(The Battle of Bakhmut)” file 2023.11.20 91
모든 것이 특별했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file 2023.11.15 104
2023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도 광주처럼] file 2023.12.18 107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러시아의 소프트파워 (Russian Soft Power in The CAR)” file 2023.11.20 108
지역에서는 이미 불거진 문제, 아쉬움만 가득한 잼버리 조기퇴영 file 2023.08.31 120
저는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가에 나와 있습니다 file 2023.11.15 134
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file 2023.12.21 165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file 2023.08.31 167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file 2022.11.01 174
"기후위기 시대의 영상기자’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 file 2023.08.31 181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file 2022.12.28 191
“후쿠시마 오염수, 서로 다른 체감온도” file 2023.08.31 198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발표 취재기 file 2023.12.21 203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file 2022.11.01 206
[현장에서] ‘세계적 보편성’ 인정받은 ‘세계의 지역성’ …‘ATF2022’와 다큐멘터리 ‘화엄(華嚴)’ file 2023.03.03 228
[현장에서]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file 2022.07.01 234
외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시각의 전쟁 취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file 2023.12.21 25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